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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련, 새로운 삶십자가의 길(민수기 21,4-9; 고린도전서 1,18-25)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12.01 15:31
▲ Anthony Van Dyck, 「The Brass Serpents」 (c. 1618-120) ⓒGetty Image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오랜 광야 생활 끝에 가나안 땅으로 이동을 시작한 직후 큰 난관에 봉착합니다. 그들은 비참했던 이집트 노예살이를 망각하고 옛 시절을 아름답게 여기며, 현재를 경멸하고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약속의 땅으로부터 눈길을 돌려 과거를 바라보며 불만을 쏟아냅니다.

물론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닙니다. 광야 생활 동안 이스라엘은 어려움이나 위기를 만날 때마다 번번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 하나님을 경험했음에도, 광야 시대를 마감하고 새 국면을 여는 이 시점에조차 이스라엘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기이하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절망의 표현이었을까요? 하나님은 이전과 같이 이스라엘의 불만을 해결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대신 진노를 내리시고 불뱀을 보내 죽음으로 그들을 응징하십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낯선 하나님이었기 때문일까요? 하나님의 습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부상을 당한 뒤에야 잘못을 깨달은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중재 기도를 부탁하고, 이는 받아들여집니다. 모세가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은 기다리셨던 듯 이스라엘에게 살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구리로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도록 명하시고, 그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살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죽이고 부상을 입힌 뱀이, 생명의 상징이 아닌 죽음의 상징이 구원의 징표로 세워집니다. 구리뱀을 쳐다보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이지만, 이스라엘의 현재 진행 중인 경험은 그것을 어렵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내신 죄책과 형벌과 죽음의 징표 앞에 두려움으로 도망치지 않고, 이 진노와 심판 속에서 그들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만이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되찾는 길이었습니다. 너무 가혹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죽음을 가져오시고, 생명이 이 죽음을 통해 옵니다. 하나님께서 이 죽음 속에 계신 때문입니다.

심판 속에 계신 하나님, 죽음 속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광야 시대를 마감하고 가나안 땅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그들의 몫이었을까요? 장차 가나안 정착 생활에서 이스라엘은 새로운 사회 관계나 국제 정세 속에서 광야 생활과 비교할 수 없는 여러 다양한 위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때로 낯설고 두려운 그 모습 속에서도 이스라엘을 살리시고 인애와 평화의 나라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이스라엘을 준비시키신 것일까요?

심판과 형벌과 죽음 속에 계신 하나님, 거기서 우리는 참혹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봅니다. 저주의 상징이며, 무능과 실패 자체인 십자가를 하나님은 구원의 길로 선택하십니다. 지혜로운 자들에게, 힘 있는 자들에게 그것은 어리석음이고 걸림돌이고 무능과 약함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이고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때부터 시작된 권력의 그리스도 제거 계획은 끝내 십자가에서 성공을 거두고, 하나님의 질서가 세상의 질서에 부딪혀 좌초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선택하신 구원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일 말고는 그리스도에게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 죽음은 권력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폭로하고, 그러나 부활은 그 권력 자체를 부정하고 폐기합니다. 지혜롭고 힘 있는 자들은 십자가에서 실패와 고난과 죽음만을 볼 뿐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하나님은 생명과 희망을 잉태하시고 그 십자가를 역사의 중심으로, 역사의 변곡점으로 삼으십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질서에 대항하는 세상의 질서는 공고해 보이고 여전히 무죄한 이들의 고난과 죽음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 질서는 이미 근본적으로 부정되었으며 그 안에서 그들의 고난과 죽음도 무의미한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약함과 두려움을 넘어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 계속되고 그 평화의 나라의 도래가 임박했음을 볼 수 있을지요. 권력의 횡포 앞에 두려움을 이기고 체념하지 않고 고난받고 죽임당한 자들과 연대하기를 결단할 수 있을지요.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빕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길이 생명과 진리와 평화의 길이듯이, 그 희망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위로와 기쁨이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여시고 그 십자가에서 역사의 희망을, 새로운 세상의 길을 볼 수 있게 하시길 간절히 빕니다.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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