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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진실한 순간절절한 그리움(아가 2:8~13)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 승인 2022.12.06 22:35

이 땅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하여 기다리는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그 대림절 둘째 주일인 오늘 우리는 다시 아가의 본문말씀을 마주합니다. 몇 주 전 처음으로 아가 본문말씀의 의미를 나눈 후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설교자로서는 처음 아가 본문말씀의 의미를 나눌 때 밑천을 다 드러냈는데,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마주하게 되어 난감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어떤 말씀이든 그 의미를 파고들어 해석하는 것이 설교자의 본분이니 본문말씀을 붙잡고 그 의미에 접근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강단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알고 겸허히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서 성서에서 가장 경이로운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떤 신학적 해석이 가해지기 이전 그야말로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는 사랑의 찬가라고 할 것입니다. 나의 전존재를 상대에게 드러내고 동시에 상대를 받아들이며, 그러기에 나의 전존재를 한순간에 허무하게 만들기도 하고 한순간에 충만하게도 하는 사랑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책입니다. 그 사랑의 위대함을 모르고서는 인간 삶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책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마침내 얼굴을 마주하기를 기대하며 절절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맞장구치며 곧 만나게 될 가슴 벅찬 순간을 노래합니다.

[여자] “아, 사랑하는 임의 목소리! 저기 오는구나. 산을 넘고 언덕을 넘어서 달려오는구나. 사랑하는 나의 임은 노루처럼, 어린 사슴처럼 빠르구나. 벌써 우리 집 담 밖에 서서 창 틈으로 기웃거리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아,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속삭이네.”(2:8~10a)

[남자] “나의 사랑 그대, 일어나오. 나의 어여쁜 그대, 어서 나오오. 겨울은 지나고, 비도 그치고, 비구름도 걷혔소. 꽃 피고 새들 노래하는 계절이 이 땅에 돌아왔소. 비둘기 우는 소리, 우리 땅에 들리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무화과가 열려 있고, 포도나무에는 활짝 핀 꽃이 향기를 내뿜고 있소. 일어나 나오오. 사랑하는 임이여! 나의 귀여운 그대, 어서 나오오.”(2:10b~13)

날쌘 사슴처럼 저 멀리 산을 넘고 언덕을 넘어 달려와 창문 밖에서 바라보며 속삭이는 연인을 반기는 여인, 그렇게 바싹 다가와 꽃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화창한 봄날을 반기며 사랑을 나누자고 속삭이는 연인의 노래입니다. 그 절절한 심정을 노래하는 것을 두고 어떤 해설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요? 노래 자체를 음미하는 것으로 충분히 그 절절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가슴이 뛰는 순간일까요?

그 절절함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우리의 노래를 환기하면 조금 더 실감할 수 있을까요? 노래로 부르기에 가장 적절한 시 가운데 첫 번째로 꼽히는 미당 서정주의 “푸르른 날”입니다. 시인의 삶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는 별개로 가장 아름다운 시어를 구사하여, 애송되고 있는 시입니다. 가수 송창식의 노래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이에 대해서도 어설픈 해설을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새삼 음미하며 그 절절한 그리움을 스스로 느껴보기를 바랍니다.

인간에게 그 절절한 그리움이 없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하고 따분할까요? 그 그리움이 특정한 사람을 향한 것만은 아니고 다른 어떤 것을 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옛 고향에 대한 그리움 또는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어떤 꿈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향한 그리움만큼 강렬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연인을 사모하는 마음, 또는 먼저 떠난 자식이나 부모 등 가족을 향한 그리움은, 지켜보는 사람의 시선에서 몇 마디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게와 절절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 힘 때문에 사람은 저마다 삶을 지탱하고, 나아가 서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공감하는 인간의 문명 또한 지속하게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퇴행적이거나 낯부끄러운 어떤 감정이 아니고 인간으로서 당연한 감정입니다. 저마다 어떤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지 스스로 되돌아볼 일입니다. 가슴에 품고 있는 그리움의 감정 없이 살아간다면 스스로 얼마나 삭막하고 따분한 삶을 사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 Marc Chagall, 「Song of Songs IV」 (1958) ⓒWikiArt

오늘 이것으로 말씀나누기를 마치면 아마도 크게 환영받겠지요? 사실 이것으로 마치고 싶습니다. 인간 삶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그 자체로 음미하지 못하고, 어떤 교리적 관념을 전제하고 나서야 비로소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신앙인의 태도가 오히려 삶과 신앙을 편협하게 만드는 효과를 생각하면 여기서 마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 굳이 이 말씀이 제시된 까닭, 굳이 예배 중에 이 말씀의 의미를 나누는 까닭을 생각하는 것으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몇 주 전 아가 본문말씀을 처음으로 마주할 때 이야기하였듯이 유대인들이 이 아가를 민족의 해방절인 유월절에 낭송하였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말씀의 대목이 그 빌미가 되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맞이하는 화창한 봄날, 바로 유월절이 그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지 그 때문일까요?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는 희열이 바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희열로서 사랑의 기쁨과 다르지 않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림절 둘째 주일, 사랑하는 임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본문말씀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심정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환기해 주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의 바탕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임을 그리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이렇게 하면 어떨지 저렇게 하면 어떨지 마음이 요동칩니다. 그래서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철저하게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이를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 순간 철저하게 이타적이 됩니다.

사랑하는 임을 만나는 순간만이 아닙니다. 내가 존중하는 어떤 사람을 만날 때도 다르지 않습니다. 엎치락뒤치락 마음이 요동치는 가운데 심사숙고하지 않습니까?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상대에게 초점이 맞춰집니다. 그런 마음이 안 든다면, 상대가 너무 편하게 느껴져서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상대를 무시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대림절에 읽는 아가 본문말씀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마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사랑하는 임을 만날 기대로 가득 찬 것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환기해 줍니다. 사랑하는 임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은 철저하게 상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나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그 마음은 성가셔서 회피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진실을 우리는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뿐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진정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모두가 기쁨을 느끼는 세상을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chm189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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