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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계약으로서의 성찬식(출애굽기 24,1-11; 누가복음 22,14-20)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12.07 22:58
▲ Valentin de Boulogne, 「The Last Supper」 (1632) ⓒGetty Image

예수의 마지막 만찬에서 유래된 성찬식이 교회마다 다르게 행해지지만, 그 형식과 상관없이 그것은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의미가 충분히 인식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평신도는 떡을 떼는 일에만 참여하고, 잔을 나누는 일은 사제들에게만 허용됩니다.

종교개혁자 얀 후쓰의 개혁조치 가운데 하나가 이런 가톨릭 전통에 반하여 평신도에게도 잔을 나누자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주장은 개신교에서 실현되어 오늘 우리는 누구나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찬식을 이해하는데 바울의 고전 11,23-26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거기에는 떡을 떼는 일과 잔을 나누는 일 다음에 기억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특별히 예수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때문에 성찬식은 주로 주의 죽음을 기억하는 장치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찬식의 의미를 온전히 살려내지 못합니다. 바울은 예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도 그렇게 말함으로써 예수의 말씀을 축소시킨 셈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잘못 받아들인 것일까요? 여하튼 성찬식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거행하는지요?

구약에는 이와 비교될 수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9-24장의 계약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얼개는 이렇습니다. 출애굽기 19장이 하나님의 계약 제안과 이스라엘의 수락을 다루고 있습니다. 20-23장에는 십계명과 계약문서가 수록되어 있고, 24,1-11에 계약체결식이 나옵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로 하고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과 계약법전을 받습니다. 그것을 살펴보고 받아들인 이스라엘에게는 이제부터 그것을 지키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책임이 생깁니다. 하지만 법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계약 절차가 다 끝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계약의 경우 문서에 도장을 찍어야 계약이 효력을 발휘하듯 여기에도 그러한 절차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4장 본문은 순서가 약간 복잡하게 되어 있습니다. 계약은 두 단계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계약을 맺기 위해 모세는 말씀을 기록하고 제단을 쌓고 돌기둥을 세웁니다. 말씀을 낭독하고 백성이 지키기로 맹세합니다. 이어서 모세가 제물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말합니다.

이것은 야훼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해 너희와 맺는 계약의 피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계약에 피로 날인하셨습니다. 그만큼 계약의 무게가 무겁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목숨을 걸고 계약을 맺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계약과 그 내용들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시고 끝까지 지키실 것입니다.

그런데 계약에 참여하는 이스라엘은 사실상 지키겠다고 맹세하는 것이 전부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말로 하면비대칭적 계약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훗날의 역사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의 무수한 계약위반에도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에게 돌아오도록 그토록 애쓰시는 이유를 여기에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계약을 맺은 후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서 식사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벌이는 잔치요 축제입니다. 이것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뵙는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는데, 이 잔치는 생명의 잔치가 되었습니다.

계약사건이 하나님께 그토록 기쁜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죽음을 넘어 생명을 약속하는 상징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자기를 제한하고 사람과 더불어 즐거움을 나누십니다. 이것이 계약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계약에 끝까지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계약에 따라 욕심을 절제하고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가 사람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인간에게 절망하지 않으시고 오랜동안 새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내려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분을 맞이하고 이스라엘과 다른 길을 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그분을 기다립니다.

주님, 오소서. 이 땅을 새롭게 하소서. 파멸의 순간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일깨우시고 우리를 새피조물로 만드소서. 생명의 미래를 맞이하게 하소서. 우리는 이렇게 간구하며 그분을 기다립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유월절을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들이 그와 함께 걸어온 길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저 계약사건에서와 달리 유월절 식사를 먼저 하십니다. 이 식사에서 하나님의 해방을 기억하고 해방의 사건을 기다립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떡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나눠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해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계약이다.

저 산에서는 제물의 피로 계약이 세워졌던 것과 달리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과 피로 새계약을 세우려고 하십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은총입니다. 새계약에 참여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그 계약에 참여하는 것은 그를 믿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말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주를 믿습니다’라는 말이 아니라 새계약에 담긴 주의 말씀을 지키겠다고 하는 맹세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이고 해야 할 것은 그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만찬에서 그 실천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제자들이 만찬석에 앉아 먹고 마실 수 있게 그들을 시중드셨습니다(22,27). 작은 자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시중드는 것이 그의 말씀을 실천하는 계약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의 피로 세워진 이 계약은 그의 부활로 확증되었습니다.

성찬식은 예수께서 죽음으로 세우고 부활로 확인한 바로 이 계약사건을 되새기며 갱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우리와 잔을 다시 나눌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찬식은 기다림입니다. 그래서 성찬식은 기다림의 축제입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거행하며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억하고 다시오심을 기다리며 주의 말씀을 지켜 사랑으로 살 것을 다시 맹세합니다. 주님의 나라가 오기를 소망하며 주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며 살 것을 다짐합니다. 나눔과 섬김의 생명 잔치가 이 땅에서 계속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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