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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은 아무나 하나, 남자(와 여자)가 하지(성)소수자와 그리스도교 12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 승인 2022.12.09 16:00

1.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 중에 “동성애자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하지만 동성애는 반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만 아마 최대한 선의로 해석해 보면 이런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잘린다’, 이러는 건 안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는 성경에 어긋나는 짓이다’, 뭐 이런 이야기 아닐까 하는 겁니다.

‘성경에 어긋나는 짓이니까 반대다.’ 이런 이야기야 이 연재칼럼에서도 여러 번 비판을 했고 앞으로도 비판할 거니까 그러려니 한다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잘린다, 이러는 건 안 된다’라는 말에 대해선 이렇게 반문하고 싶네요. ‘그걸로 다 될까요.’

2.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희정 저 [서울: 오월의 봄, 2019])는 책을 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게 면접 이야기입니다. 여성 면접자라면 결/남/출에 관한 질문을 꼭 받는 답니다. 결혼/남자친구/출산계획이라나요. 여성 면접자도 남성 면접자도 애인 있냐는 가벼운(?) 질문을 받는 경우도 많구요.

이런 질문을 받은 사람이 성소수자라면 대답을 하기가 상당히 난감하겠죠. 정도가 어떻든 간에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거짓말 스트레스까지 겪게 된다고 하네요. 이성애자라고 해도 저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그렇게 답할 수만 있다면 답하고 싶은 모범답안이라도 존재할 텐데 성소수자라면 그렇지도 않을 테구요..

더군다나 결/남/출이나 애인 있냐는 등등의 질문은 그 질문의 주제(?)에 대한 확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의 저자 희정 님의 견해로는 이 질문에 대해 남성 면접자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둘의 미래를 위해 성실히 취업 준비를 해 왔습니다.”일 거랍니다. ‘가장’로서의 능력과 책임감에 대한 어필인 거죠.

반면 여성 면접자라면, 결혼/출산계획이 있다고 하면 직장과 가정일을 어떻게 병행할 거냐는 질문을 들을 테고, 없다고 하면 이기적이지 않냐는 말을 들을 거라는 거죠. 결국 이런 질문들은 면접자들, 노동의 관문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지금 이 세계에서 굴러가는 성별화된, 즉 ‘정상 남자’와 ‘정상 여자’의 역할이 구분된 노동 양식을 준수하며 살아가라는 압력인 셈입니다.

이런 질문 때문에 성소수자가 정도가 어떻든 간에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이런 질문이 현재를 고수하려는 압력에 불과하다는 것을 폭로하는 대표 케이스인 셈일 겁니다. 성소수자가 아니라고 해도 그런 압력을 받긴 마찬가지인데, 그런 압력이 더 강하게, 더 집중되어서, 스트레스로까지 드러나는 자리가 성소수자의 자리라는 의미에서 말이죠.

3.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가 그 다음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꾸밈노동입니다. 여성이라고 패싱(passing)되는, 즉 여성일 거라고 남들이 인식하는 사람이 ‘여성’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 또는 남성이라고 패싱되는 사람이 ‘남성’다운 모습을 보이지 안을 때, 직장이라는 곳에서 어떤 압력을 받게 될 지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실 겁니다. 책 중에는 아이러니한 사례가 하나 나옵니다. ‘트랜스 남성’(지정 성별은 여성이나 성적 정체성은 남성인 사람)인데 직장에 가면 여성으로 패싱되고 길거리에서는 남성으로 패싱된다고 합니다. 직장에서나 길거리에서나 입는 옷은 셔츠와 면바지인데 말이죠.

앞에서 이야기한 거짓말 스트레스에 이런 꾸밈노동 압력까지 겹쳤을 때, 그걸 견디지 못하면 성소수자가 갈 수 있는 일자리는 상당히 많이 없어지는 셈입니다. 사실 꾸밈노동 압력이라는 것도 거짓말 스트레스의 또다른, 그리고 심화된 버전이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이런 스트레스와 압력을 피해서 꾸밈노동을 안 해도 되는 직장을 찾아간다면? 그런 직장에서 특히 여성이 꾸밈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꾸밈노동에서 상상하는 ‘여성성’을 요구하지도 않는 직장이라서 그렇다고 희정님은 지적합니다. 그래서 그런 직장엔 성소수자뿐만이 아니라 흔히 ‘아줌마’라고 지칭되기 십상인 기혼 여성들이 많고 여성 장애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여성성’이라는 것 자체가 여성들에게 작용하는 위계와 차별의 기제가 되는 거죠.

4.

이 글에서 많이 이야기 했던, 그리고 아마도 다음달 칼럼에서도 이야기하게 될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라는 책을 두고 지금까지 쭉 이야기를 해 오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퀴어”가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사실은 그 ‘당신’으로 지칭되는 우리 모두가 언제든지 ‘퀴어’ 비슷한 취급을 당할 수가 있다는 걸 집중해서 보여주는 존재가 ‘퀴어’라고 말입니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는 책 제목은 그렇게 해석되어야 하겠다 싶네요.

서두에 “그걸로 다 될까요”라고 물었었죠. 그 질문을 받은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뭐라고 할까요.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불행하게도.

“아따, 먹고 살려면 그런 게 대수여? 아직 배가 덜 고파 봐서 그래.”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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