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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의 성숙만이막스 베버와 젤렌스키 (4)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 승인 2022.12.10 15:41
▲ 시민사회에서 시민의 성숙만이 독재와 자유방임을 막을 수 있다. ⓒGetty Image

베버와 미국 헌법의 문제

베버는 근대 국가의 지배에 대한 사법적 정당성을 고려할 때, 이전 종교적인 계시나 권위에 기초된 자연법이 해체되고, 이 자리에 대신하여 인간의 이성과 실정법 안으로 들어온다고 본다. 예를 들어 존 로크(1632-1704)는 보수 정치이론가인 로버트 필머(1588-1653)를 비판하면서 기독교의 창조 교리를 가부장과 군주제로 정당화하는 필머의 시도를 거절했다. 오히려 하나님의 형상론을 양도할 수 없는 천부의 권리인 개인과 인권 그리고 소유권의 기초로 파악했다.

자유와 인권, 그리고 소유권과 개인의 행복추구는 그의 영향을 받은 토마스 제퍼슨의 독립 선언문의 골자를 이룬다. 그리고 미국의 헌법전문에서 공공선과 경제적 분배정의는 민주주의와 시민복지의 가치로 설정된다. 국민적 승인과 주권 그리고 공공선에 기초된 사회계약론의 입장은 미국 공화제 민주주의의 비판적 원류로 작용한다.

베버의 미국헌법에 대한 논의에서 사회계약론과 자유방임주의라는 두 가지 다른 전통이 이해 충돌로 나타나는 것이 간파된다. 시민은 더 이상 신하가 아니라 일반의지로 구현되는 국가 의 헌법에 복종하는 정치주체가 된다. 왜냐하면 국가의 행정부는 국민적인 승인과 이들을 대변 하는 의회의 동의없이 삶, 자유, 사유재산 등에 함부로 개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진단은 이미 전 세대인 프랑스 정치 철학자 알렉시스 토크빌(1805-1859)이 미국을 방문하고 출간한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에서 잘 읽을 수 있다. 미국 민주주의 특징은 루소의 일반의지와 지역정부의 자율성 그리고 사법적 평등함에 있다. 삼권 분리의 원칙이 제왕적 대통령이나 독재정부에 쐐기를 박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인디언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미국사회의 진통으로 남을 것이고, 치유와 배상의 정의를 필요로 한다. 루소가 식민주의와 노예제도의 강력한 비판가였다면, 미국의 정치사회는 여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 방임주의와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으로 나갔고 세계 제국주의와 경찰국가로 등극했다. 미국정치의 비극은 여기서 배태되고 수많은 전쟁을 역사적으로 치르면서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민낯을 드러낸다.

공공 지성인의 역할—파레시아

입법의 기능은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이며,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곳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낯설다. 행정부가 국민적 승인과 의회를 통해 지배되는 방식이 민주주의이며,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나 수상이 지나친 관료체제로 치달을 때 파국은 이미 예견된다. 그것은 파시즘으로 가든지 아니면 국민투표에 의한 권력 물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사법적 정당성이 국가기제를 통한 관료지배와 연관되어 있고, 전문가를 키워내는 교육이 중심 자리로 들어온다. 효율적인 행정을 위해 전문적인 훈련 이나 전문 학위증서가 없는 아마추어에게 관료의 역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도덕적으로 함양된 인간이 아니라, 전문교육을 받은 신분 그룹이 민주주의와 더불어 시민사회의 성격을 규정한다.

즉 시민사회는 합리화되고 기능적으로 전문화되며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되면서 전문적인 사회로 진입된다. 여기에 발맞추어 도덕의 진보가 공론장의 문법이 된다. 책임, 신뢰, 신중한 판단과 같은 윤리적 가치가 없는 정치는 시민들부터 외면 당한다.

이 지점에서 공공지성인의 역할이 있다. 공공지성인이 정치에 기웃거리면서 엘리트 관료주의를 표방하던 시대는 이제 설자리가 없어져야 한다. 70년대 독일에서 시민사회운동과 평화운동에 헌신한 헬무트 골비처는 공공신학의 대표적인 실례에 속한다. 여기서 정치 주체로서 시민과 교회 그리고 하위계급의 연대정치는 독일 통일을 이끌어내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노암 촘스키는 아버지의 나라 우크라이나의 파괴를 보면서 마음이 참담하다. 그의 탁월한 지성과 비판적 민주주의의 태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시민과 교회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 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그는 공공지성인으로서 정치 엘리트 관료주의가 아니라 시민사회와 생활세계에 속하는 파레시아의 모범이다.)

공론장에서 소통을 끊어버리고 소위 ‘내로남불’이라는 관료중심적 멘탈리티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떤 민주주의가 장착되고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하는가에 달려 있다. 자본주의든지 사회 주의든지 권력을 둘러싼 관료지배는 엄연한 현실이다. 바람직한 사회는 인종이나 계급이나 또는 거대 담론을 통해 진영의 대립으로 갈라쳐서 만들어가는 이데올로기적 지배사회가 아니다.

시민사회 안에서 국가가 기초되고, 국민적 승인과 건전한 민족의 문화적인 가치와 정치적 공동 경험, 더 나아가 연대와 공공선 그리고 경제의 분배적 정의가 관건이 된다. 관료제를 비판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시민사회를 위한 생활세계와 공공교육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계약론과 비판적 자유주의는 노동을 경제의 제일 원인으로 규정하는 사회주의 이론과 비판적 대화에 열려 있다. 마르크스가 경제의 문제를 생산력과 노동에서 본다면, 베버는 경제의 문제를 교류와 분배 즉 생산관계와 사회의 합리화 과정에서 파악하기 때문이다.

독재와 관료제의 집중은 피해가야 한다

베버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개념의 허구와 더불어 비스마르크의 관료정치에 적대자였다. 근대의 조건에서 국가권력이란 베버에 의하면 서로 공유되는 문화가치와 민족유대에 기초된다.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전문가들이 양산되고, 민족주의적-문화적인 토대와 사법적 지배는 근대의 연방국가를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 사법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적인 가치와 전문교육, 더 나아가 정치주체로서 시민권리가 결합되면서 이전의 제국이나 인종 군주제로부터 벗어난다.

선동담론은 이러한 시민사회 안에서 발을 붙이기 어려워진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제국으로 일탈하고 고립을 추구하는 것을 단지 미국과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리버럴 세계질서의 국제정치의 일부로 파악하기가 어려워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미어샤 이머와 같이 국제정치 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엄정한 힘의 논리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정치경험과 운명을 재단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사회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에서 근대국가와 민족이념 그리고 여기에 상응하는 문화적 가치(생활세계)와 도덕적 연대감이 어떻게 시민사회의 (교육을 통한) 문화적 기여와 더불어, 균형있는 민주주의 (국민적 승인, 공공선, 사회복지를 향한 경제의 분배적 정의)가 작동되는가에 있다. 더 나아가 갑질의 특권이나 정치 독점 카르텔을 철폐 해나가는 공공교육과 개혁운동 그리고 전문가의 효율적인 국가봉사를 증진하는데서 찾아진다.

더 이상 국가는 일부 엘리트 그룹이 리스트를 작성해서 만들 수 있는 장난감 같은 것이 아니다. 특정계급의 도구나 권력 나눠먹기 식의 관료제로 전락할 수도 없는 매우 복합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국가 기제들의 기능이 있다. 또한 국가는 시민 종교적 차원인 애국주의를 가지고있다.

만일 러시아와 협상이 타결된다면, 복구과정에서 젤렌스키의 과제는 관료지배를 넘어서서 어떻게 참여 민주주의와 사회 계약론 전통에 기초한 시민 민족주의를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러시아의 침략전에서 희생당한 군인들과 시민들에 대한 기억과 연대의 정치를 문화적인 도덕가치와 공동경험으로 고양시키는 것이 중차대해질 것이다.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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