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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지도 영향력도 없던 분세례 요한과 예수님(요한복음 1:23-27)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12.11 04:05
▲ Pieter Bruegel the Elder, 「The Preaching of St. John the Baptist」 (1566) ⓒWikipedia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들어가는 말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지, 하나님의 어떤 역사하심을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하시면서, 새로운 한 해에 우리는 어떤 신앙을 품고 신앙생활을 해 나갈지 결단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대림절이나 성탄절에 요한복음의 말씀을 사용하기는 애매하게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반대로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스토리를 전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예수님의 신성 혹은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전하기에는 공관복음서보다 더 적절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는 마가복음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고 이야기하면서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1장 1-18절은 요한복음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말씀(지혜)=빛=생명’이라는 기본 개념 위에서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종종 요한복음에 나타난 몇몇 구절들이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긴 합니다만, 요한복음은 삼위일체라는 사상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또는 지혜 그 자체이시고 그 분의 빛이 우리의 어둠을 비추시며,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신다는 점입니다.

오늘 저희는 이러한 요한복음에 나타난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에 관해 생각해보고,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역사를 이루셨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세례 요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관계는 네 개의 복음서에 모두 나타납니다. 공관복음서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만남 또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세례 요한의 출생 기사까지 추가하면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사촌 형제였다고 말합니다.

세례 요한이 활동하던 시기에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만났던 사건은 분명히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만약 세례 요한이 자신의 활동 기간 중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식했다면, 마태복음 11장과 누가복음 7장에 나타난 세례 요한의 옥중 질문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만약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세례를 베풀었을 때가 아니라 옥중에서 예수님의 활동을 전해들었던 시기였을 것입니다.

실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어떤 관계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모두 에세네파와 관련이 있었다는 혹은 에세네파의 세례 의식을 알고 있었다는 학설이나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 중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학설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헤롯 왕, 정확히는 헤롯 안타파스가 위협을 느낄 정도로 당시에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 중에 세례 요한 제자 출신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일지라도 세례 요한의 이름을 들어봤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의 선포와 예수님의 선포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공관복음서는 당시에 유명했던 세례 요한을 예수님 공생애의 첫 장면에 첨가하면서 둘의 관계를 엘리야와 메시아, 더 나아가 사촌 형제로 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공관복음서는 세례 요한을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엘리야로 묘사합니다. 마태복음 17장은 변화산 사건을 기록하면서 예수님께서 엘리야에 대해 하신 말씀이 세례 요한을 가리키는 이야기라고 명시합니다. 이는 말라기 4장 5절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비록 누가복음이 명시적으로 세례 요한을 엘리야와 동일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마태복음과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이 메시아가 오시기 바로 직전에 예비된 인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조금 다릅니다. 요한복음은 세례 요한을 딱히 메시아 직전에 예비된 선지자 혹은 예언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에 있어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이미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시간 속에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뒤에 등장하셨지만, 세례 요한보다 앞서 존재하신 분임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도 공관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이사야 40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는 실제로 세례 요한이 자신을 설명했던 말일 수도 있습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는 구절이 뒤따르면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앞서 그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오늘 저희가 읽은 요한복음의 본문에서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는 표현만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 자신은 그저 ‘소리’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공관복음서의 방식으로 봤을 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존재입니다. 메시아의 등장에 앞서 필수적인 인물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런 장치가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시고, 이 땅에 빛을 비추어 생명을 일깨우시기 위해 지금 이곳에 오셨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메시아 도래를 위해 필수적인 인물이 아니라, 메시아를 가리키며 전하는 하나의 소리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영향력 있는 인물

예수님 시대에 세례 요한은 실제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공관복음서를 기록한 이들이 세례 요한을 말라기에 나타난 엘리야로 그리고 있는 점이나, 더 나아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형제 관계로 만드는 일은 세례 요한이라는 인물을 통해 예수님을 더욱 부각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살았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도 세례 요한에 관한 기록을 남깁니다. 그의 책 유대 고대사에는 헤롯의 군대가 패배한 이유를 적고 있는데, 일부 유대인들이 그 이유를 세례 요한 처형에 돌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러면서 세례 요한은 의로운 인물이었고, 그의 세례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전합니다.

요세푸스가 세례 요한에 관해 적고 있는 부분은 복음서에 나타난 이야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헤롯이 헤로디아와의 관계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세례 요한을 가두었고, 헤로디아의 지시로 세례 요한을 처형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마도 요세푸스의 기록대로 세례 요한을 두려워하여 처형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롯이 세례 요한이 돌아왔다며 두려워하는 점을 본다면, 세례 요한을 따르는 이들이 많아지자 반란을 걱정하여 세례 요한을 처형한 것이 맞는 듯 합니다.

당대의 유명인이자 영향력 있던 세례 요한에 비해, 동시대 사람 중에 예수님에 관한 기록을 남긴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에 예수님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이 기록은 후대의 누군가가 첨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세푸스는 예수님에 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가 처형된 사실은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한때 예수님에 관한 동시대의 기록이 없다는 점을 들어서 예수님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오긴 했습니다만, 성경 이외에 동시대의 기록이 없다고 해서 예수님의 실존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요세푸스의 책에 예수님에 관한 기록을 살짝 첨가해 놓은 누군가의 마음도 이해는 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신앙의 근간이고 중요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 활동을 하셨을 때, 동시대의 사람들도 예수님을 엄청나게 대단한 분이라고 여기길 바라는 맘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는 영화에서 예수님의 선포가 당시 사람들에게 별 영향을 못 미치는 장면이 나왔을 때 불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 예수님에 관한 동시대의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거나 못마땅해 합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사람들이 구름 때처럼 몰려와서 그 말씀을 들었길 바라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영웅적인 모습의 예수님을 기대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식으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에 엄청나게 영향력 있고 유명한 인물이었을지 몰라도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워낙 짧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당시에 영향력 있고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이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조용하게, 그리고 크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그 말씀에 따르는 삶을 보이셨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대단하신 분이길 원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에 대해 더 부풀리고 과장하며 엄청나신 분으로 말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신앙 역시도 과장되고 부풀려진 신앙을 추구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신앙을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신앙을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다. 조용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은 대단한 자를 들어 쓰지 않으십니다. 약할 때 강함 주시며 약한 자를 통해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어쩌면 요한복음이 기록하고 있는 세례 요한 이야기가 그나마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단한 인물인 세례 요한보다 더 대단한 예수님을 그리지 않고 그저 하나의 소리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고 전달합니다. 우리가 어둠에 쌓여 살아갈 땐 볼 수 없는 그 빛을 가리키고 있으니 이제 그 빛을 보자고 말합니다.

대림절을 보내는 가운데 신적 권위를 가지고 탄생하신 예수님 이야기, 세례 요한이라는 인물이 길을 예비한 메시아 이야기보다는 조용한 가운데 복음을 가르치신 예수님을 보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수님의 참 빛을 바라보게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어둠이 예수님의 빛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고, 우리 안에 참된 생명이 깨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또 우리가 과장되고 부풀려진 신앙이 아니라 묵묵한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힘과 능력을 채워주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일꾼으로 쓰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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