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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나의 연약함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사무엘하 24:1-1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12.11 23:02
▲ 다윗과 아히멜렉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하나님으로부터 성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즉각적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평안입니다.

평안을 선택하십시오. 불완전한 것을 취하기 위해 애쓰지 마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 무엇보다 먼저 평안을 구하고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오셨지만, 온전히 영접하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오실 그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대림절 절기는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도록 삶과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특별하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삶을 돌이켜 예수님이 오실 길을 닦고, 마음을 지키고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써 예수님이 머무실 처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성도가 거룩한 삶을 향하고자 하면, 예수님 닮기를 원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면 성령님은 성도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안내하십니다. 신앙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특히나 우리가 외면하고 살았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수면 위로 올려놓으십니다. 우리의 위선, 더러움, 억울하게 느꼈던 기억과 감정, 피해자 의식 등을 마주할 수 있도록 안내하십니다. 이 과정을 통과한다면 성도 본인의 삶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찌꺼기를 제거함으로써 마음을 깨끗이 할 때 예수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갈등을 통해 어떤 사건을 촉발함으로써 문제점을 파악하고 정화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의 칼을 주러 왔다는 말씀입니다. 

“34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35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37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39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복음 10:34-39)

내 목숨을 챙길 것이냐,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것이냐의 선택에 서게 만드십니다. 어떤 상황들 가운데 아버지와 맞서야 하고, 어머니와 맞서야 하고, 자녀들과 맞서야 할 때를 만드십니다. 이렇게 맞서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감정과 의견과 선택의 충돌 속에서 스스로가 안고 있는 욕망, 죄, 그릇된 목적을 깨닫게 하셔서 회개함으로 삶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참 생명을 얻고 누리게 하시려는 목적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1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까닭은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만하고, 연약한 이들을 짓밟고, 거짓과 불의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삶입니다.

이런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시기 위해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격동시키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을 격동시켜서 해서는 안 되는 인구조사를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인구를 조사하는 민수기와 출애굽기 본문들을 살펴보면 인구조사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쟁터에 나갈 군사를 징집할 목적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돈을 걷도록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즉 다윗의 마음에는 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마음과 동시에 군대와 돈으로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다윗의 이런 욕망이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도록 하셨음을 오늘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없던 마음이 아닙니다. 늘 갈등했던, 인간이기에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이 마음의 갈등을 폭발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이냐 군대냐!”, “하나님이냐 돈이냐!”를 선택하게 하셨습니다. 인구조사가 잘 못 되었음을 다윗의 부하인 요압이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2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2 그래서 왕은 데리고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지시하였다. "어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두루 다니며 인구를 조사하여서, 이 백성의 수를 나에게 알려 주시오." 3 그러나 요압이 왕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의 주 하나님이 이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 불어나게 하여 주셔서, 높으신 임금님께서 친히 그것을 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높으신 임금님께서, 어찌하여 감히 이런 일을 하시고자 하십니까?"”

오늘 본문은 이다음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4절입니다. “4 그러나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이 더 이상 왕을 설득시킬 수 없었으므로,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이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 앞에서 떠나갔다.” 다윗에게 있는 그릇된 욕망, 죄를 대면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다윗을 부추기셨습니다. 주위의 어떤 설득과 만류도 소용없을 정도로 다윗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도 잘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습니까? 잘 보입니다. ‘아, 저 사람 말을 들어야 할 텐데.’ 이런 생각 한 번쯤 해보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듣지 않습니다. 자신의 고집, 욕망, 목적에 사로잡힌 채 시야가 좁아져 다른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돌이키지 않습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다윗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오늘 8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8 그들은 온 땅을 두루 다니고,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드디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9 요압이 왕에게 백성의 수를 보고하였다. 칼을 빼서 다룰 수 있는 용사가, 이스라엘에는 팔십만이 있고, 유다에는 오십만이 있었다. 10 다윗은 이렇게 인구를 조사하고 난 다음에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래서 다윗이 주님께 자백하였다. ‘내가 이러한 일을 해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이 종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빕니다. 참으로 내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을 하였습니다.’”

다윗은 회개합니다. 자신에게 어떤 욕망이 있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군대와 돈으로 성을 쌓으려고 했던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읽은 다음에 나오는 본문의 내용은 더 지독하게 다윗을 몰아붙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훑으셔서 다윗 자신이 어떠한 인간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 마음에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샅샅이 청소하시려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3 갓이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말하여 알렸다. ‘임금님의 나라에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임금님께서 왕의 목숨을 노리고 쫓아다니는 원수들을 피하여 석 달 동안 도망을 다니시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임금님의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지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제 임금님께서는, 저를 임금님께 보내신 분에게 제가 무엇이라고 보고하면 좋을지, 잘 생각하여 보시고,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백성을 생각한다면, 스스로가 원수들을 피해 석 달 동안 도망 다니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선택은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선택대로 전염병이 퍼지게 하셨고, 결국 칠만 명의 백성이 다윗의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죽어가는 백성들을 보며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외칩니다. “17 그 때에 다윗이 백성을 쳐죽이는 천사를 보고, 주님께 아뢰었다. ‘바로 내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바로 내가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백성은 양 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

인구조사를 한 뒤에 다윗은 하나님께 분명히 회개했습니다. “내가 이러한 일을 해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이 종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빕니다. 참으로 내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진노를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마음에, 그 삶에 온전히 하나님만이 남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길 만이 나라와 다윗과 사람이 참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성도님들 코미디언 박수홍씨 아시나요? 박수홍씨가 평생 번 돈을 가족들이 빼돌리는 바람에 재산상의 큰 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형제, 부모와 법적 싸움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다 지쳐있었지만 근래에는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서 한 TV프로그램에 나와 박수홍씨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 편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이 어려울 때 정작 도움을 준 사람들은 내 편이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아니었고 오히려 내 편이 아닐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편이 되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박수홍씨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는 이유는 이 박수홍씨의 말이 새벽기도 시간에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내 편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이 말이 제 마음에 떠오르면서 바로 제 사촌들이 생각났습니다.

동시에 원망의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들은 얼마든지 도움을 줄 형편이 됨에도 나를 외면했을까?’ 화재 났을 때도, 지붕이 날아갔을 때도 왜 내 사촌들은 자기들 놀러 다니는 사진, 즐기는 사진들을 공유하면서 모르지 않았을 나의 사정을 외면했을까?

처음엔 원망의 감정이 올라오더니 다음엔 서러움의 감정도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뒤이어 ‘내가 사촌들에게 해 준 것이 뭐가 있기에 이런 생각을 가지나?’라는 물음이 들면서 부끄러워지게 되었습니다.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한 것도 아닌데, 당연히 도와주어야 할 것처럼 여긴 것도 부끄러워졌습니다.

사촌들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기도 중에 ‘아, 사실은 내가 사촌들을 원망하고 있었구나.’, ‘피해자 의식이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원망과 피해자 의식을 위해 정화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네 안에 이런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대면하게 하셔서, 마음의 찌꺼기를 깨끗이 하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런 고백을 성도님들께 한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제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 보여주신 하나님께 더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과 감정을 위해 기도를 하게 된 당일 오전에 그러니까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사촌 누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저번 화재 때 도와주지도 못하고 미안했는데, 이번에 교회에 헌금 하고 싶어서 연락했어.”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아니 어떻게 이런 타이밍에 새벽에 원망했던 사촌에게서 연락을 받게 하시냐는 겁니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사촌 누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누나가 준 연락은 하나님의 사인이자 선물과도 같았어. 감사하고 또 감사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마련하겠다는 목적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이 내 안을 청소할 수 있도록 찌꺼기들을 불러일으키십니다. 물을 마구 헤집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밑에 깔려있던 더러운 것들이 물 위로 올라올 수 있도록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딱 거기까지 하십니다. 물 위로 올라온 것을 걷어내는 역할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오늘 다윗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드러내시기 위해 다윗의 마음을 충동하셨습니다. 문제를 대면하게 하셨고,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마음을 깨끗이 하시기 위해 문제를 일으키십니다. 갈등이 폭발하도록 오히려 만드십니다.

이런 기회 속에서 마음의 찌꺼기를 제거하실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하며 거하실 처소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있는 어두움, 죄, 욕망의 찌꺼기를 깨끗이 청소해야 합니다.

성도로서 거룩함을 지향한다면 분명히 하나님은 이런 수많은 기회를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마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깨닫고, 청소하며 감사하실 수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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