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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밟을까 말까(잠언 16:1-9)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2.12.13 00:24
▲ 후미에(일본어: 踏み絵)란 일본의 에도 시대에 에도 막부가 금지령을 내렸던 기독교 신자(기리시탄이라고 함)을 색출해내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 또는 거기에 사용했던 목조판 또는 금속제의 판을 말한다. ⓒWkipedia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1.

잠언의 말씀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들이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라는 구분이 있고, 지혜와 어리석음이라는 구분이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하나님의 말씀일까?’ 싶게 신앙과 상관없는 ‘세상살이의 지혜’들로 채워져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그 경외함의 방법이 지혜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지혜로운 행동의 결과가, 우리가 익히 예수님의 삶과 말씀 속에서 배워왔던 복음의 내용과는 조금 다르다. 지혜롭게 행동해서 재물을 많이 벌어야 하고, 수치를 당하지 않고 존경받는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내 원수를 어떻게 하면 한 방 먹일 수 있고 … 등등.

잠언의 말씀들은 율법이라고 말해지는 외적인 행위들을 준수함으로써 얻어지는 세상에서의 유익들을 말한다. 또 신앙과 상관없는 사람들도 익히 말하는 소위 윤리도덕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면 잠언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냥 누구라도 말할 수 있는 세상적인 지혜들 아닌가?

그러나 이런 세상살이의 지혜 속에는, 사실 깊은 신앙이 숨어 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지혜자는 말한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해라. 내 삶의 걸음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 그러면 네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진다.”

이 말씀은 내 계획과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의 도구로, 하나님을 이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 목적이 우선이라면 미아리 점집에서 굿하고 빌어도 그만이다. 잠언은 하나님을 그런 신으로 깎아내리는 말씀이 아니다. 잠언의 말씀을 그렇게 오해하면 안 된다. 이 말씀의 핵심은 ‘내 계획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꿰뚫어 보신다’는 것이다.

지혜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나 결과가 아니라, 그 행위와 결과를 위해 애쓰고 있는 마음이 뭐냐를 묻고 있다. 그 마음이 어떠한지를 하나님이 보신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로 다스려야 하는 것은, 열심을 다해 힘써야 하는 것은, 그 마음을 굳게 지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 마음 깊은 곳을 꿰뚫어 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잠언의 지혜의 진실이다.

우리에게는 항상 결과가 중요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중요하다. 소원이 이루어졌느냐 이루어지지 않았느냐가 중요하다. 시험을 봤으면, 합격했느냐? 떨어졌느냐가 중요하다. 건강이 문제라면, 나았느냐 낫지 못했느냐가 중요하다. 성공했느냐? 성공하지 못했느냐? 이루어졌느냐? 이루어지지 않았느냐?

과연 그럴까? ‘하나님 나라가 이루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자!’ 하는 것이 이런 일인가?

2.

바울은 온 세상을 다니며 선교사업을 했다. 사도행전에 나온 이야기만 봐도 엄청난 일들을 겪었는데, 그게 다일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얼마나 겪었을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런 나라 저런 나라, 이런 문화 저런 문화, 이런 종교 저런 종교, 이런 법 저런 법, 바울은 수많은 세상을 다니면서, 수많은 경우, 수많은 사건을 겪었다. 그 안에서 바울은 복음을 어떻게 전했을까?

고린도전서 9장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유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고전9:19-22)

왜 그렇게 했나? 바울이 제멋대로 한 것일까? 아무런 규칙도 없고 자기 규율도 없이 이랬다, 저랬다, 줏대 없는 사람인가? 아니다. 바울은 명확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고전9:23)

율법을 지켜야 하나? 지키지 않아도 되나? 아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율법준수보다 하나님을 믿는 일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산다.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것이 옳다’ 혹은, ‘저렇게 살면 안 된다’ 한다. 그런데 바울은 달랐다. “이렇게 살아도 되고, 저렇게 살아도 된다. 단,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 이게 옳다고 사람들이 아무리 말해도 그 삶 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그건 아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사람들이 아무리 말해도,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있다면 올바른 삶이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무리 올바른 일이어도, 마음속에 하나님 없이 율법 지켜봐야 헛일이다. 율법을 안 지켜도, 마음 속에 하나님을 품고 살면 아름다운 삶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 마음의 깊은 속을 보고 계신다.”

3.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샤쿠가 『침묵』이라는 소설을 썼다. 배경은 17세기 일본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본에 온 포르투갈 선교사가 몰래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붙잡혔다. 겨우 겨우 하나님을 믿게 된 선교의 결실들이 하나 둘 배교한다. 하나님을 안 믿겠다고 맹세하고 풀려난다. 이제 마지막 순서, 신부님이 끌려 나온다. 역시 배교를 강요당한다.

배교는 그냥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말로만 예수를 안 믿겠다고 하고 풀려난 뒤에 다시 예수를 믿으면 그만이다. 예수를 안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그러는지 아니면 살기 위해서 가짜로 말만 그러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후미에(踏み絵)라는 것이다. ‘밟는 그림’이다. 넓은 판에다가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의 얼굴을 그려놓고서는 묻는다. ‘너 진짜로 예수를 안 믿는다면, 자 이 예수의 얼굴을 네 발로 밟아라!’

로드리고 신부는 이 후미에 앞에서 일생일대의 고민을 한다. ‘예수의 얼굴을 밟고 생명을 부지하고 살아서, 나가서 또 전도사업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예수의 얼굴을 밟지 않고 순교하는 것이 옳으냐?’

어떻게 해야 할까? 뭐가 옳은 일일까? 로드리고 신부는 어떻게 했을까? 소설을 한 번씩 읽어 보기를 권한다. 제목은 ‘침묵’이다.

신부는 후미에 앞에서, 예수의 얼굴 앞에서, 과연 어떤 결정을 했을까? 신부의 행동이 중요할까? 그 행동을 하게 된 마음 중심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 행동을 하게 된 그 마음! 하나님은 바로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다. 잠언이 가르치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행동이냐가 아니라, 그 행동을 하게 하는 마음이 뭐냐는 것이다.

그렇게 그 마음을 보시고, 그 마음이 가야 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 잠언의 말씀입니다. 밟느냐 밟지 않느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해 주실 것이다. 나는 다만, 내 마음을 명확하게 하면 된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믿는 신앙대로 사는 게 뭔지, 나의 지식과 나의 가치관과 나의 포부와 나의 신념과 나의 능력과... 그런 모든 것을 한데 모아서 내 마음을, 진실한 마음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갈길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

이렇게 하면 나에게 어떤 이익이 올까?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그런 고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뭘까를 고민하는 고민이 내 삶의 진짜 고민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도 살 수 있고, 저렇게도 살 수 있다. 그 삶의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삶을 지탱하고 있는 내 마음이 중요하다. 그 마음을 제대로 지키고만 있으면, 그 발걸음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어디일까 고민하지 말자. 우리에게 즐거운 길일 수도 있고, 슬픈 길이기도 할 것이다. 아픈 길이기도 하고, 손가락질당하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이다. 그러기에 내 마음이 제대로 서 있으면, 어떤 길을 가든지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이 사람들 보기에 항상 아름답고 훌륭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만 그런 감사가 우리의 삶에 가득하길 소망하자.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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