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cart Bernard, 「King Zedekiah burns the prophet Jeremiah's book & protesting against the King's evil deeds」 (c. 17th) ⓒThe New York Public Library Digital Collection

들어가는 말

대림절 넷째 주일이자 성탄을 한 주 남겨둔 주일입니다. 지난 대림절 세 주간 동안 우리에게 오시는 구세주는 어떤 분이신지,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해드리면서 느끼게 되는 점은 결국 우리가 어떤 구세주를 요구하고 있었는지, 어떤 하나님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는지의 문제였습니다. 성경이 전하고 있는 바가 아님에도 내가 원하는 모습을 예수님과 하나님께 투영하며 믿음을 이어오고 있진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예레미야의 말씀을 통해서 바벨론 포로기 전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서로 다투었는지를 살펴보고, 지금 대림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의 신앙은 어떤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본문의 의미

아마도 오늘 본문이 대림절 기간 본문으로 선정된 이유는 이 본문이 메시아에 관한 예언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 중 한 사람을 일으켜 왕으로 세우실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에게는 잠시 독립적인 시기도 있었겠지만, 기원전 4세기 이후로는 다시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으로 인해 마케도니아의 속국이 됩니다. 그 후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류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됩니다.

잦은 강대국의 침략과 그들에게 속국이 되는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상이 짙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는 과거 예언자들의 선포와 마찬가지로 다윗의 자손 중에 누군가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믿어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로마의 지배하에 놓이기 전에 이스라엘에서는 마카베오 혁명이라 부르는 독립 전쟁이 일어났고, 이를 통해 하스몬 왕조가 세워져 약 8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외경으로 알려진 마카베오서를 보면, 이 시기 이스라엘의 독립을 쟁취한 하스몬 왕조를 메시아로 받아들인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윗 왕조에서 나타난 메시아를 기다린 사람들도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하스몬 왕조는 결국 로마에 의해 끝을 맞이하게 되었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그들은 메시아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 시대에는 다윗의 족속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져 있던 듯 합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합니다. 마가복음에서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는 일은 있지만, 예수님께서 다윗의 계보에 속해있다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오히려 예수님은 갈릴리 출신인데 어떻게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고 반문합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다윗의 자손이신지, 실제 태어나신 곳이 갈릴리인지 베들레헴인지는 오늘 저희가 살펴볼 내용은 아닙니다. 적어도 두 개의 복음서가 예수님께서 과거 예언자들의 예언에 따른 다윗의 자손이라고 보도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예레미야의 본문은 예수님의 오심을 선포한 메시아 예언으로 읽혀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가 선포한 다윗의 가지는 약 600년 뒤에 나타나실 누군가에 관한 선포는 아니었습니다. 또 이 예언의 문구 자체는 회복의 선포 같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심판의 선포입니다.

예레미야는 21장 11절부터 23장 8절까지 유다 왕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애굽 왕 바로 느고에게 죽임당한 요시야 이후의 왕들을 정확한 이름까지 부르면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여기에 속하는 왕은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들이 정의와 공의를 버렸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신들의 안위와 부귀만을 추구했다고 꾸짖습니다. 심지어 애굽으로 끌려간 여호아하스와 바벨론에 끌려간 여호야긴에 대해서는 끌려간 그 땅에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유다 왕들에 대한 마지막 선포가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23장 1-8절의 말씀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본문이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를 향한 선포임에 동의합니다. 그 시점에 있어서 시드기야 즉위 전인지 후인지에 관해서는 논쟁이 있지만, 이 선포는 시드기야를 향한 선포로 봅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6절에 나타난 ‘여호와 우리의 공의(יהוה צדקנו, 야훼 찌드케누)’라는 호칭이 시드기야(צדקיהו, 찌드키야후)라는 이름과 발음이나 의미상에서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예레미야가 ‘다윗에게서 날 한 의로운 가지’가 시드기야 왕이라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 즉각적인 포로 귀환을 선포한 거짓 예언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즉각적인 포로 해방은 없을 것이라고 선포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또 포로 귀환이 이루어질 때까지 시드기야의 통치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예레미야의 이 예언이 시드기야 즉위 이후에 선포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시드기야라는 이름은 분명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라는 뜻이지만, 열왕기하 24장에 따르면 이 이름을 붙여준 사람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었습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맛다니야(מתניה ,야훼의 선물)였습니다.

즉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참된 공의와 정의를 의미하지 않고 바벨론의 정의를 대변하는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이름의 의미를 통해 새롭게 나타날 왕을 선포합니다. 그 왕은 하나님의 참된 정의와 공의 속에 살아갈 인물이며 이스라엘 백성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릴 왕이라고 말합니다.

남은 자와 끌려간 자

제가 오늘 본문에서 좀 더 관심이 가는 부분은 예레미야가 누구를 메시아라고 말하는가 하는 부분이 아닙니다. 바벨론 포로기가 시작되었을 때, 유대인 중에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들이 있었고, 유다 땅에 남겨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24장은 여호야긴 시대에 포로로 끌려간 이들의 목록을 열거하면서, 유다 땅에는 비천한 자 외에는 남은 자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직후에 시드기야라는 왕을 세운 것을 보면, 남왕국 유다에서 귀한 사람들을 모두 끌고 갔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바벨론은 분명 자신들에게 충성을 바친 인물들을 중심으로 유다 땅에 남겨두었고, 그렇지 않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포로로 끌고 갔을 것입니다. 이후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신했을 때, 바벨론은 예루살렘 성전까지 파괴하였고 남아있는 사람들을 모두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고 열왕기하 25장은 말합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바벨론은 남왕국 유다를 다스릴 총독을 임명합니다. 서기관 사반의 손자 그달리야가 그 총독이었습니다. 열왕기는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아마 바벨론에서는 그달리야를 남왕국 유다의 왕으로 세웠을 것입니다.

열왕기는 조금 더 후에 유다에서 모반이 일어나 그달리야를 죽였고, 그들은 바벨론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도피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예레미야에도 나타나는 내용입니다. 이때 열왕기는 모든 사람이 애굽으로 도피했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유다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통치 시기와 그 이후까지도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남겨진 사람들을 독려하여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도록 이끌었습니다. 남겨진 이들이 예레미야의 선포에 얼마나 따랐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예레미야는 그들의 회개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남겨진 이들 사이에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자신들은 의로운 백성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생각은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타납니다.

에스겔의 경우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모두 벌하지 말아 달라고 간구하면서도 남아있던 자들이 악에 가득 차 있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 바벨론에서 잠시 성소를 세우셨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끌려온 이들이 남겨진 이들보다 조금 더 하나님과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남아 있는 자들을 독려하던 예레미야는 어땠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끌려간 이들이 돌아와 다시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남겨진 이들 중에 왕이 세워진다거나 그들이 굳건한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예레미야 6장을 보면, 남아있는 이들에 대해서 불순물이 너무 많아 제련 될 수 없는 이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24장에서는 바벨론이 좋은 무화과를 모두 가져갔고, 나쁜 무화과만 남겨졌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도 열왕기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끌려간 이들이 고귀한 이들, 유다의 적통을 이을 이들이고, 남은 이들은 비천한 자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택함 받았다 자랑하는 신앙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예레미야가 남은 이들 가운데서 활동하며 남왕국 유다를 하나님 안에서 재건하려고 노력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애굽에 끌려가게 되었으나 이를 거부하며 유다 땅에 남으려 애쓸 이유가 없습니다.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것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이나 유다 땅에 남겨진 자들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의 앞선 본문들에서 유다 왕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지금 왕권을 잡은 시드기야에게도 같은 비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속국이 된 이후에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도 변화된 것 없이 누가 정통성을 가진 적자인지를 놓고 다투는 모습이야말로 예레미야가 비판해 마지않던 모습입니다. 반성과 회개는 없고 서로 자신들이 택함 받았다며 다투던 이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 포로기가 짧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선포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들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이를 하나님 앞에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주일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절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에 올바른 신앙을 갖추고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한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그저 은혜임에도, 그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고 택함 받았다는 사실에만 집착하고 있던 성도가 아니었나 돌아보는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를 도우시며 이끄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오직 은혜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구원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이 날마다 삶에서 일어나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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