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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관심사“열심을 내라!”(요한계시록 3:14-19)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12.18 22:34
▲ 부자가 되거나 가난한 자가 되거나 하나님의 관심사는 거기에 있지 않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우리 안에 주어진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실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몸이 건강하면 타인들에게 부러움을 살 수도 있고 어쩌면 육체의 건강함 때문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은 육체가 건강한 이들에게도 존재합니다. 인생이 건강만 하다고 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으면 타인들에게 부러움을 살 수도 있고,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여전한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인생이 돈만 있다고 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해 성도님들이 마음에서 누릴 수 있는 완전한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라져 버릴 것, 영원하지 않은 것, 불완전한 것을 바라지 않고, 이미 주어진 완전한 평안을 선택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소망합니다.

대림절을 맞아 온 인류에게 이미 오신 예수님이시지만 온전히 영접하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내 삶으로 온전히 영접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내 삶의 잘못된 습관들이 무엇인지를 살펴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내 마음에 어두움의 찌꺼기들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마주하며 벗겨내고 있습니다.

성도는 삶과 마음을 청소함으로 예수님이 오실 길과 머무실 처소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주간 어떤 삶을 살다가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삶과 마음에 고치고 깨끗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는 성령님의 사인을 알아차리셨습니까?

신앙은 취미생활이 아닙니다. 전심으로, 온 삶을 다해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열심을 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태도, 신앙생활이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요한계시록 본문을 통해 스스로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열심을 내야 하는 까닭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어떤 결단을 해야 할지 돌아보는 은혜의 시간으로 삼으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성령에 사로잡혀 계시를 받아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게 된 편지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특별히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는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아멘이신 분이시요, 신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처음이신 분이 말씀하신다. 15a 나는 네 행위를 안다.”

아멘이신 분, 신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이신 분, 하나님 창조의 처음이신 분이 라오디게아에 전한 말씀이라고 하며 첫 문장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함께 하심을 믿는 성도가, ‘나는 네 행위를 안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어떤 의도로 ‘나는 네 행위를 안다.’고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셨는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5b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이 비유는 당시 도시의 물의 상태, 온도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라오디게아 도시의 물이 미지근했기 때문입니다. “차가운”,“뜨거운”,“미지근”이라는 단어는 라오디게아와 가까운 도시인 히에라폴리스의 뜨거운 의약 광천, 골로새의 맑고 차가운 물, 라오디게아의 미지근한 물의 온도 상태를 표현했습니다.

이런 도시들의 물과 비교했을 때 라오디게아의 물은 장점이나 특색이 있지 않고 무익했습니다. 이런 무익한 물처럼 성도들의 삶도 무익하다는 의미로 “15b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물은 ‘뱉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이런 미지근한 물에 비견되는 성도의 삶은 어떻게 표현해 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24)고 하셨을 때 성도는 하나님을 택하든 재물을 택하든 둘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성도들 가운데는 하나님과 재물을 모두 택하려고 하는데 이런 성도의 태도가 바로 미지근한 물, 뱉어 버릴 미지근한 물과 같은 상태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왜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이런 말씀을 들어야 했을까요? “17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의 상황이 오히려 미지근한 물, 뱉어 버려야만 하는 물이 되도록 했습니다.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삶을 욕망하며 살아갑니다. 본인이 그렇게 살지 못했다면 자신의 자녀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욕심을 냅니다.

이런 실례로 교회에서 고3이 되면 자녀들을 아예 교회로 보내지 않거나, 시험 기간이든지 학원 수업이 걸려 있으면 너무나도 당당하고 또 자연스럽게 일주일에 겨우 한 시간 드리는 예배를 빠진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 예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저와 성도님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지신다고 신뢰하십니까?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나의 것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계십니까? 나를 비워내고, 나의 욕망을 내려놓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저 오늘 말씀처럼 미지근해서 토해버려야만 하는 물과 같다고밖에는 말씀드릴 수가 없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어떻게 선포하고 있습니까? “17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것과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상황이 되기를 바라며 사는 모든 이들이 실상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상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겉모습, 풍요가 아닌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의 상태로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토해버릴 수밖에 없는 삶의 상태를 바꾸어내는 방법도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18 그러므로 나는 네게 권한다. 네가 부유하게 되려거든 불에 정련한 금을 내게서 사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서 드러내지 않으려거든 흰 옷을 사서 입고, 네 눈이 밝아지려거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

이미 부유한 사람에게 “네가 부유하게 되려거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부유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말씀입니다. 이미 부유한 이들에게, 좋은 옷으로 몸을 치장하고 있는 이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이익에 눈이 밝은 이들에게 ‘부유하게 되려거든’ 이라고 하시거나, ‘벌거벗었다.’ 라거나 ‘네 눈이 어두워져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진정한 부유 그리고 수치와 어두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께로 가서 배우는 것이고,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물질에 두 발을 걸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로만 향하는 것입니다. 잘 살아온 것 같고, 틀리게 살아온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그렇게 살아온 삶일지라도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삶일 뿐이었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당시 라오디게아 도시의 자랑 중에는 부유함과 의술이 있었습니다. 지역 자체가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중앙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재력만으로 도시를 재건할 수 있었던 도시였습니다. 또한 도시 내에 의술 학교가 있어서 자체 의학적으로 발전된 약과 의료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러 도시, 도시에서 살아가는 성도에게 “그러므로 나는 네게 권한다. 네가 부유하게 되려거든 불에 정련한 금을 내게서 사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서 드러내지 않으려거든 흰 옷을 사서 입고, 네 눈이 밝아지려거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고 권면한다는 점입니다.

더 큰 도시에서 무언가를 구입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당신들이 자랑으로 삼았던 것에서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 지향이 아니고서는 고쳐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권면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여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삶을 돌이키고,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려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는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여라.”

설교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신앙은 취미생활이 아닙니다. 전심으로, 온 삶을 다해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열심을 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태도, 신앙생활이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할 수 있도록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자백하라는 차원의 말씀이 아닙니다.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요청입니다. 하나님이냐, 돈이냐. 하나님이냐, 세상이냐는 선택에서 더 이상 양발을 걸치지 않고, 하나님께로 온 삶을 던지라는 요청입니다.

지금 당장 내 모습이 부족하고, 여전히 양발을 걸치고 있을지라도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인도하셔서 온전한 길로 향하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오늘 실패한다면, 내일 다시 일어서십시오. 하나님께로 삶과 마음을 돌리셔서 은혜와 평안, 사랑 가운데 거하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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