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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품은 사람으로기다리는 삶(신명기 32,48-52; 누가복음 12,35-40)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12.22 02:09
▲ 새 시대를 맞이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준비이다. ⓒGetty Image

야훼께 부름받은 이후 모세의 생은 약속을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인한 끊임없는 실망과 실패와 배반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약속의 희망으로 나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그 길고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약속의 땅, 새 나라에 대한 희망과 갈망은 그를 멈추지 않도록 계속 다그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희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왔습니다. 마침내 가나안 땅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지금껏 모세가 이스라엘과 함께 광야를 헤쳐 오며 믿고 염원했던 모든 것이 제대로 된 정당성과 의미를 얻는 순간입니다. 요단 강을 건너기 전 가나안 땅에서 지켜야 할 모든 것을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일러 준 날, 바로 그 같은 날에 야훼께서 모세에게 오늘 본문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어째서 모세는 약속의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죽어야 했을까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으로 이끌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약속의 성취를 보기 위해 살았는데 말입니다. 그러기에 신명기의 다른 본문(3,23-28)에서 모세는 요단 강을 꼭 건너가게 해달라고 야훼께 거듭 간구합니다.

그러나 지금으로 족하니 그 일로 더 이상 내게 말하지 말라는 야훼의 차가운 대답이 돌아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약속의 땅에 가장 먼저 들어가야 할 사람은 모세일 것입니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모세의 믿음 없는 행동, 그의 죄와 허물을 문제 삼으십니다. 그 죄 때문에 모세는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고 더욱이 죽음을 선고받습니다.

모세가 했던 행동이 어떻게 이해되고 평가받을 수 있든, 지도자이기 때문에 그에게만 따로 엄격하고 가혹한 잣대가 가해진 걸까요? 아니면 이는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는 우리 모두에게도 쉽게 지나치거나 모른 척할 수 없는 일로 여겨져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찾아오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그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고 오늘 본문이 중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이해해 봐도 될는지요? 우리는 모세처럼 약속의 희망 가운데 살고, 더는 우리가 성취를 기대할 수 없을지라도 그 희망 가운데 죽을 수 있을지요?

혼인 잔치에서 돌아온 주인을 맞는 종들에 관한 예수의 비유는 마땅히 밤새 주인을 기다린 종들에게 당시 사회의 상상을 뛰어넘는 보상을 약속하는 것과 아울러 깨어 있지 못하고 준비되지 못한 이들에게는 심각한 결과가 닥칠 것이라는 경고를 제시합니다. 밤중이든 새벽이든 주인이 반드시 돌아오리란 것을 아는 종들은 허리띠를 동이고 등불을 켜고 밤새도록 깨어 주인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한동안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한 종들은 그러지 못하고 잠들어 버릴 것입니다. 예기치 않게 주인이 와서 종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화가 있을 것입니다. 캄캄한 세상 우리의 기다림이 점점 길어지는 가운데 지치고 실망하여 우리의 눈도 감기지 않았는지요?

주님께서 가져오실 전적으로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세상을 기뻐하고 기다리며 우리의 삶을 그에 맞춰 바꿔 가고 있는지요? 아니면 주님께서 아마도 오시지 않으리라고 체념하며 주님을 대신할 만한 것들을 구비해 놓는 데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는 이 땅에 오시려는 하나님이 이미 오래 전에 오신 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오셨기에 우리는 그가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고, 또 장차 마지막으로 오실 그날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더는 침묵하며 숨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판자이자 구원자로서 나타나실 그날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가 오셨고 다시 오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오시는 주님은 세상에 불을 던지시고 분열을 일으키실 것입니다(눅 12,49-53). 우리가 수립한 세상의 평화와 평안을 깨뜨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구축하고 지탱하는 질서를 전복하고 그 위에 세워진 갖가지 악의 구조물을 불사르실 것입니다.

그 질서가 억압하고 배제하고 말살한 이들을 회복시키고 소생시켜 그의 나라로 들여보내실 것입니다. 우리에 대한 주님의 심판이 참된 평화에 이르는 구원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구질서를 옹호하는 이들과 이를 거부하는 이들로 양분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던지신 불을 끄려는 세력과 그들에 맞서 그 불씨를 품고 지피고 키우려는 이들로 양분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불씨를 품은 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불씨를 지펴 횃불을 들고 밤새 깨어서 어둠 속을 주시하는 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어둠을 뚫고 오시는 주님의 복된 음성을 마침내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시는 주님을 위해 늘 깨어서 기다리고, 우리의 이웃을 위해,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위해 늘 깨어서 기다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기다림 가운데 살고 기다림 가운데 죽는 우리의 나날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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