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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소중한 ‘가치’가 무기가 되는 시대,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사 60:15-22 롬 15:7-13 막 1:1-3)성탄일(12월25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12.23 00:43

1. 크리스마스, 문화적 슈퍼스타의 탄생

▲ 2021년 서울 조계사 앞 크리스마스 트리

오늘은 아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축 성탄!,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제가 좋아하고 즐겨 그 책을 읽고 있는 철학자 김용석 선생은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아 ‘크리스마스: 문화적 슈퍼스타의 탄생’(『한겨레신문』 2022.12.21.)이라는 글에서 크리스마스에 관해 문화적으로 접근합니다. 크리스마스에 관해 새로운 접근이라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난 2천여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많은 일이 있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끔찍한 일도, 흐뭇한 일도 있었다. 인류 역사의 상당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와 종교 이야기로 채워졌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은 종교와 직접 연관 있는 차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 종교에 귀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지성적, 도덕적, 예술적 차원에서 넓고 깊은 삶의 의미를 가져다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유에 관해서는 방대한 연구와 수많은 해석이 있으므로 간단히 논할 거리가 아니지만, 예수 이야기는 신화적 요소와 일상적 요소가 교차하며 전개됐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또한 김용석 선생은 이러한 예수님의 신화적 측면과 일상적 요소를 신적 캐릭터와 인간적 캐릭터로 이해하여 기독교 신학의 ‘신인 양성론’을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예수에게는 신적 캐릭터와 인간적 캐릭터가 마치 유전자의 이중나선 구조처럼 교차하며 얽혀 있다. 그의 삶도 신화와 일상사가 서로 머리를 길게 땋아가듯이 전개되는 이야기들로 전해진다. 이런 캐릭터의 삶은 사상적으로 탐구되고, 예술적으로 표현되며, 도덕적으로 실천을 고민하게 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물음표와 느낌표가 공존하는 캐릭터는 당연히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깊고 넓게 자극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문화적 슈퍼스타’다. 그럼으로써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일상의 문화에도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사실상 크리스마스는 많은 사람에게 일상적인 문화 축제가 된 지 오래입니다. 핼러윈 데이는 젊은이들의 축제지만, 크리스마스는 모든 세대의 축제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크리스마스는 ‘크라이스트 마스(Christ’s Mass)’의 줄임말입니다. 크라이스트는 그리스도, 마스는 라틴어 ‘미사(예배 모임)’에서 유래합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는 예배 모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를 그리스어로 옮긴 것입니다. 메시아는 우리 말로 ‘구원자’, ‘해방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는 해방자이자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그런데 김용규 선생의 말에 의하면, 문화적으로 축제의 의미로 확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상술과 연말 분위기가 맞물린 까닭입니다. 김용규 선생도 소개했듯이, 이러한 크리스마스의 세속화에 대해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30년간 가르치고 은퇴한 급진적인 종교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돈 큐핏은 이렇게 풍자합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교의 디즈니화(Disneyfication)이다.” 디즈니화라는 말은 상술이나 세속화의 의미가 담겨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니아 연대기』를 쓴 C. S. 루이스는 자신의 작품에서 아이들의 입을 통해 이렇게 반론합니다. “항상 겨울만 있고 크리스마스가 결코 없다면, 오! 그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비극이야!” 이 말은 크리스마스의 세속적 의미 또한 소중하다는 것이겠죠? 사실 크리스마스가 길고 긴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기에 고맙기도 합니다. 또한 한 해를 마감하는 때에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되기 때문에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삶과 가르침이겠죠? 김용석 선생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이, 예수님 이전에 있었던 철학자나 사상가들의 가르침에 이미 있었다고 합니다.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의 삶에 관해 이렇게 설명하며 역사적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정확하게 꿰뚫어 봅니다.

“예수는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태어나 갈릴리 지역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그의 말이 곧 삶이었기 때문에 그는 지역 서민과 천민들에게 깊은 인격적 감화와 비상한 실천적 감동을 남겼다. 그는 기득권자들과 투쟁함으로써 ‘권력이 비자유의 조건’임을 드러냈다. 왕이든, 제사장이든, 율법가든, 그들은 권력으로 타인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왕관과 법복의 무게처럼 권력이 그들 자신 또한 구속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국 학술원 원장을 역임하였고 옥스퍼드 대학 부총장을 지낸 바 있는 철학자 앤서니 케니는 이러한 예수님의 삶을 철학적 유산으로 이해하며, 그리스 철학자들의 뛰어난 업적과 비교하며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리스 학문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로마 제국의 변방에 살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경도된 쟁점들에 개의치 않았던 이 유대인 교사는 철학사에 그들 못지않게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일반 역사나 철학사에서 예수님을 이렇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철학자 김용석도 그렇고, 앤서니 케니도 그렇고, 크리스마스를 문화적 슈퍼스타의 탄생으로 보고자 합니다. 우리 인류의 문화는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새로운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그러나 우리 인류가 받은 이 선물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면,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서 본문인 마가복음에서 저자인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 그 첫 문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소리쳐 외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막 1:1-3)

그리고 기록된 것과 같이, 예비자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이사야의 예언을 언급합니다. 결국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길을 곧게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신앙인의 도리를 보여줍니다. 또한 예수께서 오셔서 만드실 새로운 세상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시면, 이때는! 다시는! 우리가 버림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약 본문 이사야서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그것을 노래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둘 것이라 선포합니다. 오늘은 기쁜 크리스마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렇게 회복과 소망의 다른 이름으로 오늘 우리에게, 아니 세계 모든 열방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3. 다시는!

구약 말씀을 볼까요? 오늘 구약 이사야 말씀은 제3 이사야(사 56-66장), 곧 바벨론 포로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사야 공동체의 선포입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맞을 최후 승리와 영광을 선포합니다. 이것은 아기 예수께서 오셔서 만들 세상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온갖 죄악을 몰아낼 영광의 빛이 시온에서 빛날 것이며 이제 곧 시온의 영광이 회복될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사 60:15-16)

구원자이자 구속자이신 주께서 버림받고 미움받은 이들을 회복시켜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의미이며 그것은 또한 화평과 공의로 연결됩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으로 삼으며 공의를 세워 감독으로 삼으리니,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국경 안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사 60:17-18)

황폐와 파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참뜻입니다. 그리고 구주 성탄을 맞이하는 모든 이에게 놀라운 축복이 선포됩니다. 말씀을 볼까요?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사 60:19-20)

예수께서 오시는 날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인 해와 달이 우리를 비춰주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영원한 빛이 되고 영광이 되는 날입니다. 그날은 모든 백성이 자유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21-22)

할렐루야! 이사야 선지자는 때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 일이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는 작은 자가 천명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이 될 것이라 말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탄의 의미입니다.

4. 열방이 가치를 무기로 만드는 시대

그러나 지금 약한 자가 강국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국이 약한 자를 짓밟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화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2,000년대 전후로 활발했던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시들시들해졌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지역’이나 ‘가치’로 엮인 국가 간 대단위 통상협력이 생겨났습니다. 2018년 발족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2020년 발족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그리고 2022년 5월에, 전통적인 무역협정에서 한 단계 발전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그것입니다. 미국이 한국, 일본, 대만에 제안한 ‘칩4동맹’ 역시 반도체라는 특정 산업을 둘러싼 이해 당사국들의 이합집산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미-중 경제 전쟁이 가치의 무기화로 발전

이러한 ‘지역 블록화’의 심화는 강대국 간 전략경쟁, 곧 미-중 경제 전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자국 첨단산업의 기술경쟁력과 일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반도체과학법, 인플레이션감축법 등 법안을 연달아 제정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동맹과 외교통상정책을 통해 노골적으로 중국을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로 공산주의의 국가인 중국의 인권탄압을 견제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 발효된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도 인권탄압을 구실로 중국산 상품 수입을 제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미-중 무역 갈등 심화’, ‘다자주의 약화’, ‘팬데믹으로 인한 자국 우선주의의 대두’ 등 급변하는 통상 환경 속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나름의 대응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먼저 유럽은 유럽과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는 통상협력을 강화하되, 그렇지 않은 국가와는 거리를 두기로 했습니다.

특히 기후 위기를 활용하는데, 가령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통해 역내 환경 기준에 못 미치는 외국 수출기업에 불이익을 주고, ‘역외보조금 규제법’을 통해 정부 개입으로 인한 불공정 경쟁의 여지를 줄이려고 합니다. 또한 ‘기업의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을 통해 환경, 인권 규범을 따르지 않는 제3국 기업이 유럽연합 안에서 사업하기 힘들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은 세계 모든 열방이 소중한 가치를 전쟁 무기로 바꾸는 시대를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강대국이 내세우는 가치는 사실, 껍데기나 미끼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기후변화는 실존하는 위기이고 모든 국가가 공동 대응해야 합니다. 가령 노동 문제, 인권 문제, 개인의 자유, 사회적 정의와 인권 등은 지구촌 열방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귀한 가치가 바로 국가 간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은 물론, 유럽과 지구촌 열방의 최근 움직임은 무역과 가치를 연계하는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강대국 위주의 세계 질서 재편에 가치가 무기로 사용되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연대의 이면에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냉혹한 외교 현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금 우리 지구촌은 노동, 인권, 환경, 자유 등의 고귀한 가치가 무기가 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섬김’과 ‘자기 비움’, 그리고 ‘사랑’입니다. 이것은 무기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가치입니다. 따라서 부르기 좋은 가치의 이름으로 다른 나라를, 타자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와 혹은 타자를 위해 자기 자신을 겸손히 십자가에 내어주는 하나님의 가치, 그리스도의 가치입니다. 이것이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5.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열방이 가치를 무기로 전쟁에 돌입한 이 위기의 시대! 성경은 열방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두라고 소리쳐 외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서신서 말씀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뒷부분을 먼저 보겠습니다.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0-13)

여기에는 이방인들도 해당이 됩니다. 모든 열방이 이렇게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섬김과 사랑으로 아기 예수의 성탄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서로서로 존중하게 됩니다. 다시 말씀 앞부분을 볼까요?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롬 15:7-9)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추종자가 되시어 약속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또한 이방인들도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열방을 구원하시는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크리스마스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연말에 있는, 또 한 해에 한 번 오는 축제의 날로 생각하지 마시고, 아기 예수께서 오셔서 만들 새로운 세상의 비전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꿈꾸시기를 바랍니다. 이날은 이제 다시는 버림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미움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빛이 되실 것이며 열방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소망을 둘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오늘 우리는 “아멘”하며 말씀을 받고, 마가가 시작한 복음의 놀라운 기록이 계속 쓰여지고 증거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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