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 Hyesŏk’s Pioneer / Kaebyŏk, July 1921. Reprint from the “I Am Na Hyesŏk” catalogue. Courtesy of the Suwon Museum.

안병무의 민중신학은 카푸토의 약한 신학이 비판하는 강한 신학의 논리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민중신학이 강한 신학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메시아 예수를 고수하는 동시에, 이들에 대한 전통 신학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면서 하나님과 예수의 의미가 가진 정치적 지향만을 정반대의 것으로 전복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성서의 핵심 내용은 권력에 굴복하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해방 이야기라고 지적하면서 이를 민중신학의 중요한 전거로 제기하는 것은 거대담론으로서의 성서의 권위를 여전히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강한 힘을 가진 하나님이 부자나 권력자가 아니라 민중의 편에 서서 그 권력을 사용할 것이라는 논리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강한 신학의 논리와 상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포스트모던 학자들은 민중신학의 방법론이 제국의 신학(theology of empire)의 내적 원리와 연결되어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중신학이 민중 개념이나 성서가 현장의 사건에 의해 계속해서 새롭게 드러나야 하고, 민중사건이 유일회적이라거나 그 의미가 확정되어 있지 않고 개념과 이념을 미끄러져 나와 자유롭게 삶의 현장 속에서 일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와 맞닿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카푸토의 약한 신학도 포스트모더니즘이 흔히 오해받는 것처럼 담론이나 서사 자체를 부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카푸토의 신학 담론은 교회나 이론, 거대담론이 가지는 권위의 해체를 통해 약한 힘을 가진 신을 상상하고, 이 하나님의 약함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차연과 해체를 통해 약한 신학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어떤 한 지점’에 대해 카푸토는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은주는 이에 대해 카푸토가 사건이 갖는 열린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하나님의 사건이라는 지평 안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의와 윤리적 차원의 해체 불가능성이라는 선입견을 허용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적 논의의 엄밀함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1)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은주가 한계라고 지적하는 카푸토의 이 지평이 카푸토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정의와 윤리적 지평 안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 불가능성과 사건, 전적 타자의 개념을 전개해 나간 카푸토의 약한 신학은 포스트모더니즘이 현실의 저항에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극복하는 하나의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카푸토의 약한 신학과 안병무의 민중신학은 삶의 자리에 주목하고 현장에서의 경험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통해 매일의 일상을 거룩하게 보낼 것을 제안한다는 점, 그리고 이 모든 논리적 노정을 통해 사회적 보호망으로부터 내쫓겨 권리를 박탈당한 약한 자들을 위한 신학의 가능성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조우한다. 이 양자가 약한 자를 위한 신학이라는 지점에 도달하는 방식은 다소 다르다. 그렇지만 이 방식에 있어서도 서로가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며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긴 여정을 감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단순하지만 무한한 개방성과 신비를 담고 있는 목표를 지향하면서 말이다.

카푸토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예(yes)의 신앙’은 민중신학과 약한 신학이 만나는 지점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모든 것에 ‘아니오(no)’라고 외칠 것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한 약한 신학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초대와 부름에 ‘예(yes)’로 대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힘없는 하나님의 권력에 ‘예(yes)’라고 말하고, 약한 자들을 위한 해체에 ‘예(yes)’라고 말하며, 창조 후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좋다”에 ‘예(yes)’라고 말하고,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대에 기꺼이 ‘예(yes)’라고 말하는 것이 카푸토의 신학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민중신학과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민아 박사(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집행위원장)  minahkim@i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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