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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이끌리어 사랑하며 삽시다동방박사 이야기(마태복음 2:9-11)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12.25 05:20
▲ Nativity Christmas Lights ⓒWikipedia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들어가는 말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입니다. 정확히 2022년전 오늘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날에 예수님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며 기념합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구세주가 오셨음을 기뻐하며 기념하는 일입니다.

오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길 바랍니다. 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길 바랍니다. 성탄의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성탄절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본문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동방박사의 이야기입니다. 동방박사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4년 전에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말씀을 전해드리면서 동방박사와 관련된 오해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점들을 대부분 살펴보았기 때문에 사실 그 이상 동방박사에 대해 설명 드릴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오래 지나기도 했고, 그때 다 전해드리지 못한 이야기도 한 가지 더 하여서 오늘 말씀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

예수님 탄생 이야기하면 저희가 떠올리는 이야기가 두 가지 있습니다. 밤에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 이야기와 동방박사 이야기입니다. 앞의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이야기이고 동방박사 이야기는 마태복음에만 나타납니다.

이야기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동방에서 별을 관측하던 이들이 유대 지역에 왕이 탄생하였음을 알게 됩니다. 이들은 박사와 술객이라고 표현할 때의 박사들이고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점성가 또는 점성술사입니다.

예수님 시대 즈음에 실제로 별을 관측하여 특이한 점이 발견되었을 때, 다른 나라로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들도 있습니다. 동방박사가 실제로 예수님을 방문했는지는 둘째로 하더라도 이 이야기가 완전히 비현실적인 사건을 담고 있지는 않다는 의미입니다.

왕의 탄생을 점친 박사들은 당연하게 유대 왕궁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헤롯을 찾아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신지를 묻게 됩니다. 왕궁에 있던 이들은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고 크게 당황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소동했다’라고 밋밋하게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은 크게 혼란스러웠다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혼란 중에 헤롯은 성경의 기록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오히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나신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가 되실 분이시라는 미가의 예언이 전해집니다.

왕궁에서 이야기를 들은 박사들은 베들레헴으로 향했고, 자신들이 관측했던 별을 발견하여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장소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고 다시 헤롯에게 돌아가지 않고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마태복음 2장에 나타난 헤롯과 동방박사의 이야기는 구약성경의 다양한 부분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가장 큰 틀은 모세 이야기와 유사합니다. 모세가 태어나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성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애굽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태어나는 남자 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마찬가지로 박사들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헤롯은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 있는 두 살 아래의 남자 아이를 모두 죽이도록 명령합니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경고를 받은 요셉이 예수님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였기에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 이야기와 동방박사 이야기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는 같은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과 모세를 연결시킵니다. 아마도 민족을 이끌었던 인물이자 율법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모세의 이미지를 예수님과 연결해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모세 뿐만 아니라 동방박사는 전통적으로 민수기에 나타난 발람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발람은 유프라테스 강 가에 살다가 발락에 의해 불려왔다고 말합니다. 그는 동방박사와 마찬가지로 동방에서 온 예언자였습니다. 또 그는 야곱에게서 한 별이 나오며 이스라엘에서 한 규가 일어나리라 예언했습니다(민24:17).

저는 4년 전에 동방박사에 관한 말씀을 전해드리면서, 특히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다윗과 연결시키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방문했을 때, 헤롯은 그리스도의 탄생 지역을 확인합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현재 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이고, 그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윗의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더 나아가 다윗도 본래 왕이었던 사울에 의해 죽임 당할 뻔했지만 미리 도피한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게 됩니다.

동방박사 이야기가 우리를 어떤 다른 이야기들과 연결시키고 있는지 정확하게 하나로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모세를 떠올렸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다윗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방박사를 보며 발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모든 부분이 마태복음이 열어놓은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모세나 다윗과 같은 지도자의 모습, 율법의 수호자, 하나님 뜻 안에서 살아간 인물들과 오버랩하고 있습니다. 또 동방박사라는 인물들을 통해 발람의 예언을 떠올리게 하며 예수님께서 구세주, 메시아시라는 점도 깨닫게 합니다.

참된 인도자

누가복음의 경우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 가운데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교만한 자를 꺾고 비천한 자를 높이실 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실 분, 평화를 주시는 분, 이방의 빛 등등 여러 표현들로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이런 언급들은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야기들의 흐름 속에서, 또는 그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 속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저희가 판단해야만 합니다. 다만 한 가지 마태복음이 정확히 언급하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탄생은 임마누엘의 표징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알려주시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끄심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우리에게 보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고, 우리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올바르게 이끄실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이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았고 부활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도 경험했습니다. 지금 현실 속에서 예수님은 자신들의 왕이 아닙니다. 자신들을 이끄시는 분도 아닙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왜 예수님을 모세나 다윗의 이미지와 연결하고 있을까요?

이들이 생각한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왕과는 달랐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왕이나 인도자로 강조하다보면 예수님에게만 모든 역할을 맡기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알아서 좋은 길로 이끄신다는 생각을 품게 합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은 그런 예수님을 전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인도자가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길을 가르치시고 그 본을 보이신 인도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본을 보이셨다는 말은 우리가 그것을 배우고 따라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죄 속에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구원하시진 않습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려는 이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참된 인도자가 되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예수님처럼 살아간다는 것인지도 막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 삶의 모습을 잘 알고 있기도 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최근에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른 문제들도 많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동물을 사랑하는 일이 잘못된 일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나 나와 내 주변만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길거리의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긴 어렵겠지만 최소한의 배려도 사랑의 일환일 것입니다.

내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이들을 향한 최소한의 배려만 있더라도 지금 TV에서 방영되는 ‘개는 훌륭하다’와 같은 프로그램이 존재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방향성의 프로그램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완동물의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는 너무 나 자신만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사랑하시며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에 복음이 선포되도록 십자가 처형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셨는데, 우리는 그 사랑을 본받으려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우리를 이끄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사랑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이끌어주십니다. 그 이끄심에 바르게 따라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 두 발을 땅에 붙인 채 예수님께서 우리를 질질 끌고가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함으로 예수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우리가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으며 살아갈 때, 그때에 우리에게 참된 성탄의 은혜가 내릴 줄 믿습니다. 참된 구원의 길로 우리가 나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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