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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잇대어 사는가인생이 맺을 열매(삼하1:17-27; 계15;1-4; 요15:1-10)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2.12.26 22:18
▲ Gustave Dore, 「he tragic death of King Saul of Israel」 ⓒWikipedia
이스라엘아, 우리의 지도자들이 산 위에서 죽었다. 가장 용감한 우리의 군인들이 언덕에서 쓰러졌다. … 이스라엘의 딸들아, 너희에게 울긋불긋 화려한 옷을 입혀 주고, 너희의 옷에 금장식을 달아 주던, 사울을 애도하며 울어라! 아, 용사들이 전쟁에서 쓰러져 죽었구나! 요나단, 어쩌다가 산 위에서 죽어 있는가? … 어쩌다가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무기들이 버려져서, 쓸모 없이 되었는가?

1.

이스라엘이 사방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던 때입니다. 북쪽에서는 블레셋의 공격을 받았고, 남쪽에서는 아말렉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때 사울은 아들 요나단과 함께 북쪽 전선에서 블레셋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도망자 신세였지만, 남쪽 전선에서 아말렉과 전투를 벌이면서, 이스라엘을 보호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윗은 아말렉을 철저히 응징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블레셋과 전투를 벌인 사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블레셋의 선제공격을 받고 최후 전선이 무너지면서 사울의 아들 셋이 모두 전사합니다. 사울도 적의 화살을 맞고 중상을 입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까 부하들도 다 도망치고 무기를 든 호위병 하나뿐이었습니다. 사울은 적의 손에 죽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기 호위병더러 칼로 찔러 죽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호위병은 감히 사울을 찌르지 못합니다. 사울은 자기 칼을 뽑아 거꾸로 세우고 그 위에 엎어져 자결합니다. 호위병도 사울 왕이 죽자 그 자리에서 자결합니다.

사건은 여기서 새롭게 전개됩니다. 전투가 끝나고 나서, 젊은이 하나가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들고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자기는 사울의 부하였는데,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죽었고, 자기가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들고 보고하려 왔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사울의 죽음을 알게 됩니다. 다윗으로서는 자기를 그토록 괴롭히던 원수가 죽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새 세상이 열린 것 같았을 것입니다. 노래라도 부르고 춤이라도 췄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혀 뜻밖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해가 질 때까지 크게 슬퍼하며 탄식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은 아말렉의 젊은이를 다시 불러 자초지종을 자세히 묻습니다.

이 젊은이는 다윗의 원수인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과 그 증거를 가지고 오면 다윗에게서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결한 사울을 자기 손으로 죽였다고 거짓말까지 보탰던 것입니다. 내가 직접 사울을 죽였다고 말하면 더 큰 상을 받겠거니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반응은 젊은이의 기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감히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자를 죽인자를 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헛된 욕심과 희망으로 부풀었던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며 조가(弔歌)를 지어 부릅니다. 혼자만 부른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슬퍼하며 부르도록 합니다.

사실 사울은 이스라엘의 꿈과 희망이었습니다. 이집트의 학대를 벗어나서 나그네들이 학대받지 않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사막을 건너 가나안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이미 가나안에 정착했던 사람들과 끝없는 대결을 해야 했습니다. 주변의 아말렉과 블레셋 같은 부족들로부터 끊임없이 약탈당하고, 능욕당하고, 그때마다 재산을 잃고, 처자식을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는 염원을 가지고 드디어 왕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운 왕이 사울 왕입니다. 사울 왕은 과연 이스라엘의 바람대로 군사력을 키워서 강력한 이스라엘의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주변 나라들에게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는 나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런 사울이, 그 후계자인 아들들까지 한꺼번에 적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니, 이거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이 무너진 것이요, 이스라엘의 꿈과 이상이 무너진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바로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원한과 분노를 넘어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닌 슬픔의 파토스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기쁨을 감추고, 공동체적인 슬픔에 억지로 동참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다윗이 보여준 그간의 모습들로 미루어보면 다윗은 진정으로 사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일생일대의 원수가 죽은 이 마당에 기뻐하기는커녕 마음속으로부터 진심으로 슬퍼할 수 있는 것일까요?

2.

최후의 승리를 이야기 하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마침내 주님께서 이루실 최후의 승리를 증언합니다. 그런데 계시록의 승리는 평소 우리가 바라는 승리와는 너무나 다릅니다.

다윗에게서 느꼈던 당혹스러움을 바로 여기에서도 느끼게 됩니다. 계시록이 전하는 승리는 전혀 승리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모든 위험을 이기고, 고난을 이기고, 마침내 영광을 얻는 그런 승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위험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손해를 당하는 승리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찬양하며 노래합니다.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만민의 왕이신 주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도 참되십니다. 주님, 누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주님만이 홀로 거룩하십니다. 모든 민족이 주님 앞으로 와서 경배할 것입니다. 주님의 정의로운 행동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계15:3-4)

이 노래가 주는 메시지도 명백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승리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나의 뜻과 나의 승리, 나의 기쁨, 나의 행복 이런 것들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승리를 위해 나의 사사로운 승리를 모두 포기해야 하는 나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나라 앞에서 사사로운 복수의 감정을 숨깁니다. 포기합니다. 사울의 죽음 앞에서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들어 갈 이스라엘의 역사를 걱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역사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그에게 사울은 인간적인 대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시는 일에 사용하시는 도구입니다. 나에게 커다란 위협을 가하는 사람이지만, 사울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울의 죽음 앞에 다윗은 마치 하나님의 나라가 무너져내린 것처럼 통곡합니다. 그에게는 사사로운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이 마음 속에 키워가고 있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사사로운 감정과 사사로운 행복과 사사로운 목적이 사사로운 뜻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까? 그래서 내가 잘 되면 기뻐하고 내가 잘 못 되면 슬퍼하는 그런 마음이 가득합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망하더라도, 나를 괴롭히던 사울이 죽기만을 바라는 그런 마음입니까? 하나님의 승리를 앞에 두고서, 내가 고통당한다고 슬퍼하고, 내 행복이 줄어든다고 절망하는 그런 마음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자세히 다시 한 번 들여다 봐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합니다. 눈물 흘리며 기도하던 그 기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던 감사의 제목이 무엇인지 되새겨야 합니다.

3.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버려서 불에 던져 태워버리신다. 너희는 내 안에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서 많은 열매를 맺어라.”

우리는 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디에 매달린 가지입니까? 어느 나무에 매달려서 어떤 양분을 빨아먹고 자라나고 있습니까?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나라고 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 내어놓는 결과물이 무엇입니까?

내가 먹는 음식, 내가 마시는 물, 내가 호흡하는 공기,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라고 하는 존재를 결정짓습니다. 매일같이 불량식품만 먹으면서 내 육신이 건강하기를 기대하면 안 됩니다. 나는 계속 내 기쁨만을 추구하고 내 행복에 겨워서 내 즐거움에 뿌리내리고 살면서 하나님의 열매를 맺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 내가 먹는 음식은 세상 기쁨이고, 내가 마시는 물은 세상 즐거움인데, 어떻게 나에게서 하나님의 열매가 맺어지겠습니까?

다윗이 사울의 죽음 앞에서 보여준 슬픔이 억지로 꾸며낸 슬픔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뿌리내리고 하나님으로 숨쉬고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울의 죽음 앞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슬퍼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다윗은 사울의 박해를 피해 도망 다니던 시절에도,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바라보면서 항상 기뻐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사로잡혀 살아갔기에, 그에게서 하나님의 냄새가 났던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내가 이미 너를 사랑했다. 내가 그 사랑으로 너를 살렸다.”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을까를 고민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대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으로 숨쉬는가?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며, 무엇을 내 삶의 소망으로 삼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이며, 내 인생관은 무엇이며, 내 좌우명은 무엇인가?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어디에 뿌리 내리고 있는가?”

어디에 뿌리 내리고 있는지를 진단하는 것은 의외로 쉽습니다. 다윗과 같은 상황에서 나는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지난 10월 이태원 참사를 듣고 여러분 입에서 제일 먼저 무슨 말이 나왔습니까? 이런, 저런, 어쩌나 … 안타까워하고 슬퍼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하지요. 그런데 ‘서양귀신축제에서 술이나 쳐마시고 놀더니 꼴 좋다’ 이런 마음이 든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봉화광산에 매몰된 광부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SPC 공장에서 사망한 청년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티비에서 인터넷에서 또 내 주위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나는 어떤 생각이 먼저 들며, 어떤 말이 어떤 감탄사가 내 입에서 먼저 터져나오는가를 면밀하게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주께로부터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내 삶을 돌아보면, 내가 이룬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내 온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발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의 마지막 영광을 위해 자신의 온 삶을 바친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를 살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뿐입니다.

자신의 모든 기쁨을 버리고, 자신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자신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을 위해 우리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부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안에 넘쳐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에게 어떤 열매가 맺어진다면, 그 열매는 내가 맺은 열매가 아니라, 내 안에 부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맺어진 열매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열매를 맺기 소망한다면, 그 열매를 들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성탄의 계절을 보내며, 우리의 인생이 맺어야 할 열매를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 나를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서, 하나님 아닌 것으로 물 마시고 호흡하고 그렇게 살다가, 나에게서 맺어지는 열매에 아름다운 주님의 향기가 아닌 다른 어떤 냄새가 배어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을 오직 주님께만 뿌리내리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진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으로 충만한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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