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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리고 아웅 하는 세상 한 가운데서그리스도 안에서의 삶(골로새서 2:3~10)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 승인 2022.12.27 18:52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누가 2:14)

성탄절을 맞이하면 우리는 늘 이 말씀을 떠올리며 그 의미를 새기고, 기쁨 가운데 이 세상에서 삶을 향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합니다. 오늘은 성탄절이면 마주하는 전형적인 말씀과는 다른 본문말씀을 마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골로새서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교회에 보내는 편지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보다는 2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의 정황을 반영하고 있는 서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알고, 그 삶을 구현하고자 했던 경험을 이미 충분히 겪은 후 제2세대 그리스도인들의 정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지녔던 임박한 종말과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기대가 약화되고, 점차 현실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의 정황입니다.

그 정황 가운데서 서신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여러분을 속이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2:3-4)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뭔가에 현혹되어 그리스도 안에 담긴 진실의 진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삶을 일깨우며,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 담긴 지혜와 지식과 보물을 찾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당대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에 현혹되었을까요? “누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노획물로 삼을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라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2:8)

그리스도의 길과는 다른 어떤 ‘철학’이 문제였습니다. 진지한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이 아닙니다. 여기서 ‘철학’은 ‘헛된 속임수’, ‘사람들의 전통’, 그리고 ‘세상의 유치한 원리’ 등과 동일시되는 어떤 경향을 말합니다. 속된 말로 ‘개똥철학’이라는 말입니다.

그 철학의 실체가 무엇이었을까요? ‘세상의 유치한 원리’라는 말은 직역하면 ‘세계의 원소’를 뜻합니다. 이는 곧바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의 한 견해를 연상시킵니다. 그것은 본래 흙, 물, 불, 공기 네 원소들의 순환으로 세계가 생성되고 운동한다는 나름 진지한 철학적 견해였습니다.

그 철학이 통속적인 신앙과 결합되었습니다. 그 원소의 배후에는 일종의 각기 정령들이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 몸을 벗고 영혼의 순수한 세계에 들어가려 할 때 그에 붙잡히면 영혼의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된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것은 내세에 대한 불안감으로 작용했고, 그 불안감으로 사람들은 여러 금기와 제의에 몰두하는 한편 헛된 믿음으로 삶을 허비했습니다.

▲ Duncan, 「Vintage engraving of Jesus Christ And Nicodemus, Ye must be born again」 (1890) ⓒGetty Image

골로새서는 그 헛된 속임수를 떨쳐버리고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것을 역설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온갖 충만한 신성이 몸이 되어 머물고 계십니다.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십니다.”(2:9-10)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하시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 역시 그 신성을 충만하게 받았는데, 뭘 염려하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가운데 있다면 부질없는 걱정을 해야 할 까닭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에 충실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삶은 개인의 인격에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와 ‘권세’(개역: ‘정사’와 ‘권세’)의 머리라고 했습니다. 각 개인의 삶을 좌우하는 정치와 권력에 이르기까지 효력이 미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요컨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은 인격적 성화를 지향할 뿐 아니라 사회적 성화를 지향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격의 변화뿐 아니라 사회적 변화까지 함축합니다. 그 삶을 지향하고 있다면, 부질없는 염려로 삶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문말씀은 일깨우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뻐하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 거룩한 삶에 동참하게 되는 길이 열린 것을 기뻐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의 삶 역시 골로새서가 안타까워하는 삶의 양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 역시 제 멋대로의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골로새교회의 사람들이 엉뚱한 인과관계를 따른 허황한 믿음으로 삶을 허비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배에 몰입하고 기도에 몰입하는 것 같지만, 자기 욕망의 실현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 멋대로 인과관계를 설정하고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세상을 구성하고자 한다면 그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른바 확증편향이라 일컫는 잘못된 가치관이 사람들 가운데 만연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잘못된 믿음이 오늘 대한민국의 국정까지 좌우하고 있습니다.

얼치기 도사들에 의해 국가 중대사가 결정되는가 하면 국정 최고책임자 역시 범법자와 비범법자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사람들을 갈라놓고 국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째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가 된다고 선포했겠습니까? 그 잘못된 정치와 권력까지 정화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것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잘못된 삶의 방식을 청산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는 삶이 우리에게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 진실을 새기는 가운데 기쁨을 함께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chm189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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