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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轉圜)과 전복(顚覆)의 새 하늘과 새 땅2023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길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2.12.31 17:13
▲ 우리 앞에 놓여진 수많은 문제들을 풀어갈 방법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키우는 것이다. ⓒGetty Image

2023년 계묘년, 토끼띠 새해가 시작되었다. 계묘년의 검은 토끼는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서 꾀를 내며 살아남기에 자기 분수를 알며, 자기 깜냥으로 산다고 한다. 계묘년의 검은 토끼처럼 정치 경제 사회가 먹고사는 문제를 슬기로운 꾀로 해결하기를 바라고, 문화 방면에서는 개성 있는 창작물들이 창조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신문에 가득 차 있다.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2023년 계묘년에는 서로를 배려하고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하면서 사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코로나가 아직도 많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이제 3년 전과 같은 격리하고 거리 두는 모습은 더이상 아니다. 코로나를 현실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고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코로나 감염이 되면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도 갖는다. 다시 말하면 코로나는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포스트 코로나, 코로나를 극복하고 넘어선 삶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로 발생한 여러 가지 삶의 달라지 모습은 우리 삶의 형태를 변화시켰고 또 계속해서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토끼 또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러한 삶의 변화를 성서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째는 전환(轉圜)과 전복(顚覆)의 주제이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새 하늘고 새 땅에 대하여 언급한다. 성서는 예전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출현을 말하고 있다. 그 전의 세계를 약간 수정하고 조금 변형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다른 형태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요한계시록은 “이전 것의 사라짐”을 전제한다. 덧입는 것이 아니다. 옛것을 완전히 벗어버릴 것을 요구한다. 다른 말로 하면 전환(轉圜)이고 전복(顚覆)이다.

코로나가 교훈적 의미에서 우리에게 준 핵심단어 중의 핵심은 전환이다. 지금 이 시스템, 정치 경제 그리고 일상적 삶의 체제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의 생각을 일부 고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바꾸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믿음 체계인 교리, 제도, 교회에 관한 생각을 처음부터 뒤집어서 생각해 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종교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정치체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체제에 대한 전환과 전복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는 오직 경제성장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인다. 경세 성장을 위해서는 모든 다른 가치가 일순간 정지된다. 그리고 경제성장만 이룩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회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기에 그다지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마치 경제성장의 가치관은 모두가 적극적 혹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가치관이다.

오직 돈 물신만을 향하여 달려가는 이 사회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을 보여주신 예수를 따르고 그분의 삶을 살겠다는 신앙인들이 물신을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 가치관을 향하여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가는 소멸해도 시장은 없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국가 지도자가 있는 우리의 사회에서 예수 제자들은 “시장은 사라져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 정의 평화 생명 사랑은 영원하다.”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두 번째는 기후 정의의 주제이다

오늘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기후위기이다. 어쩌면 인류는 핵폭탄이 아니라 기후위기로 인하여 급작스러운 멸망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기후위기는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누구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시기에 도적처럼 임해서 우리에게 멸망을 가져올 것이다. 기후위기 더 나아가 기후 정의는 여러 측면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신학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창조에서 출발한다.

첫째는 “좋은 창조”이다. ‘좋다’라고 하는 것은 완벽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피조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에서의 “좋음”이다. 기후위기는 ‘좋은 조화’가 깨졌을 때 발생한다. 따라서 기후 정의를 이루려면 무엇보다도 조화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 조화가 깨진 원인이 인간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인간과 자연 간의 조화로움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영성의 문제와 관련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nihilo)이다. 하나님은 전능하기에 그 어떤 재료에 의존하지 않고 “무, 無”에서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을 피조물로부터 분리했다. 하나님을 전적타자(全的他者)로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과는 상관없는 그런 신적 존재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은 아무 원료 혹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이 세계를 만드셨을까?

이러한 창조 개념을 깨트린 것이 성육신, 성탄의 사건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무(無)로부터 오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 자신에서 왔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재료로 삼아 예수가 되어 세상으로 왔다는 것이다.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창조의 재료가 되셨다.

이런 의미에서 “지구, 하나님의 몸”이라는 표현은 탁월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 정의를 말하기 위해서는 “지구, 하나님의 몸”이라는 생각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을 이 세상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몸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이 세계를 아끼고 사랑하고 가꾸지 않을 수 없다. 마치 하나님의 몸을 가꾸듯이 그리고 마치 우리 몸을 가꾸고 돌보듯이. 자연을 나와는 상관없는 타자로 생각해서 함부로 대했던 불의한 우리 삶의 모습을 회개하고 돌이켜서 무너진 정의, 기후 정의를 회복해야 한다. 구호 혹은 말로만 하는 정의 회복이 아니라 실질적인 기후 정의 회복 운동을 해야 한다.

2023년이 그런 일 년이 되게 해야 한다. 올해가 이 일을 실천할 때이다. 전도서는 “이제보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고하라고 지우신 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전도서 3:10-11) 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때와 감각을 잘 활용하여 기후 정의를 향한 실질적인 발걸음을 내딛는 올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롭게 시작되는 2023년 에큐메니안 모든 독자들과 후원자들의 삶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 드린다.

전도서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의 기록처럼 모든 독자와 후원자님들의 삶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면서 새해 인사를 올린다. “새해, 복 많이 짓고 많이 나누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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