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현실에서 누리는 은혜그 어디나 하늘 나라(누가복음 17:20-21)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3.01.01 04:56
▲ Makis E. Warlamis, 「Utopien 04」 (2007) ⓒWikipedia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들어가는 말

2023년 여러분의 복된 삶을 기원하며 오늘도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이를 모르시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도 아니고 우리 교회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도 아닙니다.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바라며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작년에 TV를 보면서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종종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주제는 많은 매체에서 다루기 좋은 주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연말이 되면서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를 맞는다는 의미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TV에서 다양한 학문적 소양을 가진 이들이 죽음에 관해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때로는 개신교를 포함한 다양한 종교에 속한 종교인 분들이 나와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서로가 가진 지식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제가 봤을 때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결론은 언제나 똑같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죽음은 결국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상태는 가장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지금까지 맺어온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쌓아온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때로는 남겨질 이들이 얻게 될 슬픔을 생각하며 비탄에 빠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천국

우리 기독교는 이러한 두려움에 한 가지 해결책을 제시해왔습니다. 바로 천국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른다면, 어쩌면 때로는 예수 이름을 믿기만 하면,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천국에는 영원한 기쁨과 안식만이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이런 믿음 안에서 기독교인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안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앞에 놓인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천국을 강조하다보면 어쩌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가는 이들,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로 보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마치 이슬람 과격 단체의 자폭테러와 마찬가지로 천국이라는 강한 소망으로 인해 죽음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사실 성경은 죽음 이후에 도달하게 될 천국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박해 상황과 순교라는 상황은 죽음 이후의 천국을 강하게 바라는 신앙으로 이어졌겠지만, 복음서, 특히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죽음으로 도달하는 천국 이전에 이 땅에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합니다.

천국과 하나님 나라는 같은 뜻을 담고 있는 듯 하면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천국은 말 그대로 하늘에 있는 어떤 나라를 뜻합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어떤 곳이라도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편의를 위해 죽음 이후 가게 될 곳을 천국,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하나님 나라라고 부르겠습니다.

물론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라는 생각이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님에 의한 철저한 심판 이후에 이루어진다고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심판이 없더라도 우리의 현실 삶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에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삶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더욱 강조하신다고 해서 죽음 이후에 도달하게 될 천국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 또 2000년간 간직되어 온 천국에 대한 신앙이 결코 헛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천국 이미지는 잘못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천국이라는 곳을 이미지화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비유로 설명하신 하나님 나라를 살펴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뿌린 사람과 같다. 천국은 겨자씨와 같다. 천국은 혼인잔치 또는 이를 베푼 임금과 같다. 천국은 좋은 진주를 찾는 장사꾼과 같다. 천국은 밭에 묻힌 보물과 같다. 천국은 물고기를 잡는 그물과 같다. 이러한 비유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의 이미지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천국을 보았다고 하면서 천국에 대해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천국이 실제 천국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생사의 기로에서 저승사자를 만났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저승사자의 이미지는 ‘전설의 고향’이라는 유명 프로그램의 PD가 창조해낸 이미지입니다.

천국을 믿고 바라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천국을 요구했고, 그런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의 형태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천국의 이미지를 발견해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관해 무엇을 가르치셨던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형태가 어떻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천국에 이를 수 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 말씀하셨고, 혼인잔치의 비유는 천국에 초대 받았을 때에 그에 합당한 모습을 보이라 말씀하십니다. 진주를 찾은 장사꾼이나 밭에 감춰진 보화의 비유는 천국이 어디에서라도 발견될 수 있기에, 이를 발견했다면 자신의 모두를 바쳐서 붙잡으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죽은 후에 어떻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우리의 삶을 돌아보라는 현실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나타난 말씀, ‘누구든지 율법의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는 사람은 천국에서 작다 일컬어질 것이고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는 말씀도 지향점이 천국에 있지 않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고 그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높아지려 하면 낮아진다는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천국에서 높은 자리 차지하려고 이 땅에서 낮아지려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의도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삶은 죽음 이후를 향한 말씀과 삶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어려움에 대한 현실적 위로였고 현실적 동참이었습니다. 언제 가게 될지 모르는, 먼훗날에 이르게 될 천국의 복음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릴 복과 은혜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도달하게 될 천국이라는 곳은 죽음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에겐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은 결코 우리의 도피처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훗날 가게 될 천국으로 우리를 위로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현실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

왜 연초부터, 특히나 2023년의 첫날이 주일인 이번 주간에 죽음을 이야기할까 싶으시기도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죽음은 연말에 더 적절한 주제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역시나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죽음에 관한 주제에 관한 이야기들은 결국 현실로 돌아옵니다. 죽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자는 이야기로 결론 지어집니다. 그렇기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끝맺음을 이야기할 때보다 첫 출발의 이야기로 더 적절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죽음 이후에 도달하게 될 어떤 나라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듯 보이고, 우리가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가야만 할 것 같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결국 현실에서의 하나님 나라로 되돌아옵니다.

최근 TV에 자주 나오는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죽음에 관해서 말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까운 이를 떠나보내며 물리학자로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내놓은 결론이라고 말합니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우주에는 생명보다 죽음이 더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합니다. 우주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생명이 더 이상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죽어있는 상태 속에서 원자의 우연한 활동으로 인해 생명이 활동하게 됩니다. 원자는 아주 잠시 이런 이상한 상태로 머물다가 다시 자연스러운 상태인 죽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이 찰나의 순간, 우연이 이룬 이 순간은 소중한 순간이라고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 생명의 순간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한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이 생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2023년 우리의 현실 곳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가사말처럼,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라는 고백이 절로 나오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늘 여러분과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