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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의 토끼, 세상에 현현하다!(민 10:1-10 롬 1:18-23, 28-32 막 1:9-13)주현절 첫째주일(1월8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3.01.05 23:42

1. 게오르규의 소설 『25시』와 ‘잠수함의 토끼’

▲ <25>시의 장면과 게오르규

2023년 계묘년은 검은 토끼해입니다. 토끼해라, 토끼 관련 이야기를 찾아보니, 소설 『25시』(1949)의 작가인 루마니아 태생 정교회 사제인 콘스탄틴 게오르규(1916~1992)가 말한 ‘잠수함의 토끼’가 생각이 났습니다. 토끼 이야기를 하기 전에 게오르규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25시』에 관해 잠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소설은 안소니 퀸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로도 나왔습니다(1967년 앙리 베르누이 감독의 <25시>).

소설의 주인공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루마니아에 살던 선량한 농부 모리츠(안소니 퀸 분)입니다. 모리츠는 얼굴 때문에 유대인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운이 좋게도 게르만 민족을 연구하는 독일군 장교로부터 게르만 민족의 순수한 혈통으로 오인되어 수용자들을 감시하는 감시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리츠는 연합군 지역으로 탈주를 감행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치 군인으로 오인돼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 간신히 석방되어 조국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게 되었으나, 불과 18시간 만에 다시 체포되어 수용소에 감금됩니다. 당시 유럽 전역이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으로 동, 서유럽으로 갈라져 각 진영에 있던 사람들이 마음대로 자기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평생을 수용소에서 보내고 마침내 늙어서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어쩔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의해 살았던 모리츠의 운명을 영화 속 안소니 퀸이 정말 연기를 잘했습니다.

게오르규는 이 책에서 나치와 공산당의 폭압 세계를 고발함과 동시에 인간의 운명이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타인의 의지에 따라 결박되거나 결정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은 게오르규 자신이 겪은 악몽과도 같았던 경험을 그린 자전적 소설입니다. 미·소 냉전 시대, 두 진영의 틈바구니에 끼인 약소 민족의 고난과 운명을 그린 책입니다. 지금 신 냉전 시대가 펼쳐지는 한반도의 운명과 고난과도 같습니다.

아무튼 게오르규는 1984년 코리아 헤럴드 사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을 비롯하여 지방을 돌면서 여러 번 강연했습니다. 그 후 5차례 더 한국을 방문하였고, 『한국의 찬가』(1987)를 출간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까지 했습니다. 그가 방한했을 당시, 한 문학가 모임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게오르규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해군으로 참전한 경험과 잠수함에 실었던 토끼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잠수함의 산소 공급 장치는 성능이 좋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독일군은 산소 결핍에 대처하려고 토끼를 사용했습니다. 토끼는 산소가 부족하면 사람보다 6시간 빨리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잠수함은 토끼가 이상 반응을 보이면 물 위로 올라가 환기하고 다시 잠수했습니다. 어느 날 그 토끼가 죽자, 게오르규는 토끼 대신 산소 부족을 알리는 장치가 됩니다.

▲ 잠수함의 토끼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게오르규는 잠수함의 토끼처럼 문학가들이 시대의 아픔과 위기를 감지하고, 살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한국의 작가들에게 말합니다. “진정한 문인들은 현실이라는 세계가 지닌 문제점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에 대비하여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또한 게오르규는 이러한 문학가의 운명을 한국의 운명으로도 보았습니다. 한국의 떠나면 했던 그의 작별 인사입니다.

“한국을 떠나면서 새로 사귄 내 친구들에게 나의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여러분들은 수난의 오랜 역사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 역사의 비참한 패자들이 아니라, 도리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왕자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오랜 세월이 흘러가고 많은 고통이 또 밀려와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여전히 왕자라는 것을!”

2. 주현절의 의미

오늘은 주현절(主顯節, Epiphany) 첫째주일입니다. 주현절은 ‘주님께서 나타나신 날’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온 세상에 드러내 보이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로, 동방 정교회에서는 ‘신현 대축일(예수 세례 대축일 또는 성삼위일체대축일)’이라고 부릅니다. 성공회는 ‘공현절’로 부르고 장로교에서는 주현절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주현’ 또는 ‘신현’, ‘공현’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이 최초로 공식적으로 이 땅에 나타난 것을 의미합니다. 서방 기독교 전통에서는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님을 찾은 때로 보고, 동방 기독교 전통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때로 봅니다. 공생애 사역의 시작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주현절은 주현일인 1월 6일부터 시작하여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됩니다.

삼위일체교회력에 따르면, 교회의 1년 주기는 ‘천지창조(성부의 창조)’-‘대림절과 성탄절(성자 예수의 오심)’-‘주현절(예수의 사역)’-‘사순절(예수의 십자가)’-‘부활절(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성령강림절(성령의 강림)’-‘창조절기’로 이어집니다. 성부와 성자, 성령의 사역이 1년 주기로 절기를 따라 진행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난주까지 대림절과 성탄절을 통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살펴보았다면, 이제 교회력은 주현절을 통해 이 땅에서 펼치신 예수님의 구체적인 ‘사역’에 집중합니다.

주님의 현현과 사역은 이 땅의 아픔과 위기를 참을 수 없어서 살길을 제시한 생명의 현현이자 진리의 현시입니다. 잠수함 토끼처럼 위기를 알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만천하에 공표하신 절기입니다.

▲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

오늘 복음서 말씀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는 모습입니다. 그 시작은 먼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임하시며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인증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바로 성령에 의해 사탄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공생애 첫 시작부터 시험이라니? 당황스럽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위한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러한 통과의례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로마서 말씀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따라서 구약 말씀을 통해, 모세는 늘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잠수함 토끼의 위기 신호를 깨닫고 마음에 하나님을 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통과의례를 잘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3. 통과의례로서 예수의 세례와 시험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막 1:9-11)

예수님의 공적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으나, 곧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막 1:12-13a)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수종(막 1:13b)”들었다고 합니다. 늘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공생애 첫 순간에 먼저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을 종교학에서는 통과의례라고 합니다.

▲ 통과의례

통과의례는 문자 그대로 ‘통과(通過)’에 대한 ‘의례(儀禮)’입니다. 통과의례에 관해 전문적으로 연구한 프랑스의 민속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아놀드 반 게넙(Arnold Van Gennep)은 『통과의례』(을유문화사, 2000)라는 책을 통해, 통과는 시간적 개념일 수도, 또 공간적 개념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곧 아이에서 어른으로 통과하는 것은 시간적인 개념이고,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공간적 개념입니다. 그러나 좀 더 종교학적으로 말하면, 속(俗)에서 성(聖)으로 통과할 때, 혹은 낮은 신분에서 높은 신분으로 변할 때 갖는 의례를 말합니다. 이러한 통과의례는 우리 주위에 아주 흔합니다.

기능주의자인 반 겐넵은 통과의례의 기능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통과의례의 기능은 기존의 생활(공간) 속에서 다른 낯선 곳으로 ‘통과’할 때 따르는 혼란함과 이질감을 완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령 우리가 학교나 회사, 혹은 교회나 이웃의 집에 들어갈 때, 입식(入式)이나 인사 등의 환영식(式)을 받는데, 이런 의례의 목적은 결국 새로운 사람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는 것입니다. 곧 ‘완충’ 작용인 것입니다.

반 겐넵은 통과의례의 종류를 3가지로 나눕니다. 그것은 ‘분리(分離)’, ‘전이(轉移)’, ‘통합(統合)’의례입니다. 예를 들면, 유치원 졸업식은 분리의례이고, 초등학교 입학식 전 오리엔테이션은 전이의례입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식은 통합의례가 됩니다. 여기서 반 겐넵이 말하는 의례의 기능을 완충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유치원 생활이 분리되는 것에 대한 완충으로서 졸업식이라는 분리의례이고, 새로운 영역, 곧 초등학교로 통과하는 과정에서 완충의 역할을 하는 오리엔테이션은 전이의례입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초등학교 구성원으로서 통합에 대한 완충으로 입학식이 통합의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적 생활에서 공적 생활인 공생애로 진입할 때 세례를 통한 분리의례, 그리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사탄에게 시험받으시는 전이의례, 마지막으로 시험을 극복하고 본격적인 공생애를 시작하는 통합의례를 거치신 것입니다. 이렇게 통과의례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어 공생애를 시작하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으나, 우리 인간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로마서 말씀이 그것을 잘 말해 줍니다. 말씀을 볼까요?

4. 이방인의 불경건성: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18-20)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피조물에게 분명히 새겨 놓았으나, 우리 인간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우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이것은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약속을 저버림)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28-31)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합당하지 못한 일을 행하는 이들이 이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32).” 가치의 전도입니다.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날이 밝았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이러한 잘못된 구습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구약 말씀은 새롭게 출발하는 이스라엘 출애굽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말씀을 볼까요?

5.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 나팔을 부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너희가 그것을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라.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불 것이며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크게 내지 말며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민 10:1-8)

이스라엘 출애굽 공동체는 광야를 행진할 때, 희락의 날과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립니다. 그리고 나팔을 불 때 행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할 것을 촉구하는 청각 도구입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대적과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민 10:9-10)

2023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은 잠수함 토끼가 지금 위기라고 외치는 부르짖음입니다. 세상과 인류가 위기로 치닫고 멸망을 향해 나아갈 때, 그 위기를 알리고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울부짖음입니다. 또한 이것은 십자가 고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알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음성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류라는 잠수함에 오신 위대한 토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2023년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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