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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오류와 러시아 정교회의 종교적 범죄 행위막스 베버와 젤렌스키 (5)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 승인 2023.01.07 01:25
▲ 키릴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22년 4월2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그리스도 구세주 대성당에서 부활절 예배를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AP

푸틴의 오류, 종교의 수치효과 그리고 미디어 담론

앞선 언급한 것처럼, 푸틴의 치명적 오류는 러시아 제국 또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우크라니아 인종이 경험했던 역사적 차별과 민족적인 연대감정 그리고 이들의 문화적 가치 합리성을 하찮게 취급한데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러시아 정교회 수장 키릴이 한몫을 단단히 했다. 버클리 센터와 Patheo 미디어 저널에서 공공신학과 국제정치토론을 주도하는 테드 피터스는 10월21일 기고문에서 러시아 정교회 수장 키릴이 우크라이나를 속죄양으로 삼고 전쟁을 지지하는 태도에 분노한다.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의 복음의 상징을 도둑질하는 범죄 행위라고 날카로운 비판을 퍼붓기도한다.

키릴은 우쿠라이나 국민을 악으로 저주한다. 이유는 간단 명료하다. 러시아의 전통적 가치를 추종하지 않고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추종했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에 속하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 되돌리기 위해 러시아 병사들은 전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영웅적인 희생을 하고 있다.

‘속죄양 이론’은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문화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의 주장인데, 오늘날 전쟁에서 드러나는 종교의 수치스러운 효과에서 그 민낯을 본다. 종교적 아첨 행위에 푸틴은 흐믓하다. 국가주의적 제국을 상징하는 그로서는 우크라이나의 문화적 가치와 시민사회가 서구와는 다른 대안적 근대성(찰스 테일러)의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한낱 서방세계가 세워놓은 신-나치국가로 규정한데서부터 그의 이데올로기적인 판단 오류가 있다. 재단과 왕관의 기묘한 결합은 여전히 러시아 정치에서 나타난다. 종교는 아편이라는 수치효과를 말한다.

푸틴의 전략 착오를 수정하는 듯이 러시아 외교장관 세르게이 라브노프가 7월24일 이집트를 순방한 자리에서 한 말이 도마에 오른다. 해방전을 통해서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다는 말이다.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평화롭게 살게될 것이다. 새로울 것도 없지만 이에 맞서 젤렌스키도 결코 독립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맞선다. 사회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미디어 담론이다. 이전에 라브토프가 러시아는 정권교체의지가 없다고 선전하고 다녔다.

우크라이나인 중에 라브노프의 말에 감동받을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가하면 4자 평화협상을 재개한지 23일 하루만에 오데사 항을 포함하여 우크라이나 지역에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우쿠라이나의 책임이라고 거듭 말한다. 이에 질세라 미국도 푸틴의 레짐 체인치로 응수한다. 전쟁은 우리가 이겼다. 크림반도 내놓으면 전쟁 협상하자.

젤렌스키 딜레마와 노암 촘스키

젤렌스티의 리더십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 논쟁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더 보내고 군비예산을 확장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크림반도 탈환하느냐에 초점에 맞추어지지, 더 이상 외교협상을 통해 전쟁을 평화롭게 마무리짓지 않는다. 노암 촘스키는 미국의 시민사회운동의 양심이다. 연일 유트브 강연에서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헌신을 하는 것을 보면 눈물겹다.

그의 입장은 다음처럼 요약된다. ‘외교적인 해결방안을 추구하라’ 지속적인 전쟁으로 무수한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어린아이들이 죽어나간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곡창지역이고 식량문제로 가난한 나라들이 집단 기아로 내몰릴 수가 있다. 러시아가 점령한 돈바스 지역같은 곳에는 우크라이나 연방으로서 자율권을 허락해주어야 한다. 크림반도 재탈환 시도나 협상은 지금 상황에서 매우 큰 위험을 동반한다. 푸틴이 마지막 코너에 몰릴 때 그가 사용할 것은 우크라니아를 완전 초토화시키는 핵전밖에 없다. 결국 이것은 3차 세계대전으로 간다.

미국은 이미 핵전 준비가 되어 있다.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회원으로 가입하지 말고 오스트리아나 멕시코처럼 중립국으로 남고, 안전보장에 대한 분명한 국제협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푸틴에게는 전쟁을 그만둘 명분을 주어야 한다. 이러한 촘스키의 주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미친 실험”(2022년 5월)의 인터뷰에서 잘 볼 수가 있다.

물론 촘스키는 젤렌스키가 이러한 평화협상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젤렌스키의 정치 리더십과 도덕적인 정치가로서의 품격이 가늠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젤렌스키는 외교적 협상과 평화를 위해 책임/심정윤리를 발휘할 수가 있을까?

촘스키의 날카로운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미국이 2003년 이라크을 전면 침공했을 때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이토록 국제정치와 미디어 담론을 통해 달구어지는가. 서구 언론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폭로한다. 이데올로기 호출이 이렇게 저급하게 진행되면 냉전시대처럼 진영논리에서 먹힐 수도 있지만, 21세기 글로벌 사회에선 이러한 유치한 논리가 통하기가 어렵다.

확전은 막아야 한다

근대성을 이전의 사회로부터 구분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시민들의 위신과 삶을 영속적으로 보존하고 여기에 참여하는 정신적 근거가 바로 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는 루소나 뒤르켐이 언급한 것처럼 거의 시민 종교적인 차원을 갖기도 한다. 전몰 용사들에 대한 추모비, 식민지 상황에서 독립 운동을 하거나 또는 원효 자녀들에 대한 국가적 배상 그리고 전사자의 존엄 회복 등은 국가의 종교적 기능에 속한다.

당연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시민 민족주의를 발휘한다. 외교적 협상과 평화를 위해 방어전이 치루어져야한다. 식민지를 경험했던 근대 연방국가에서 투쟁 역시 정치적인 경험과 더불어 인종과 문화적 가치에서 나타난다. 해방이 서구 열강에 의해 주어질 때 과거 나누어서 갈라치는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는 여과없이 좌우익의 대립에서 나타난다. 누가 더 민족해방을 위해 ‘순수하게’ 제국주의와 투쟁했는가 하는 정당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종교로 인해 갈라서는 경우도 있지만, 대만의 경우는 식민지배에서 독립투쟁 보다는 중국 공산주의와 대결이라는 이데올로기 성격이 더 부각된다.

우크라이나아의 경우를 보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의 역사적인 차별 경험과 정치적인 공동운명체 그리고 문화 종교적인 연대감정이 서구의 근대적인 가치인 민주주의와 시민권리 그리고 리버럴 세계 경제질서에 대해 선택적 친화력을 가지게 한다. 방어전을 치르는 젤렌스키의 리더십과 유럽연합과 미국을 설득하는 그의 탁월한 호소의 능력은 일부 정치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무색하게 한다. 그것은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의 친-유럽주의로 인해 러시아를 자극해서 전쟁을 유발했다는 헛소리다.

나토 가입을 서둘다가 젤렌스키로 인해 전쟁책임을 물어야한다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지식’을 접하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젤렌스키의 미숙한 초기대응과 나토가입을 문제 삼기도한다. 심지어 핵무장론을 주장했다고 한다. 오히려 젤렌스키는 러시아와 분쟁을 종식키려고 했고 푸틴과 대화를 했지만, 이것을 무산시킨 사건은 앞서 언급한 2020년 비행기 격추사건과 21년 친러시아파 척결로 인해서 온다. 그리고 유럽연합 회원과 나토가입은 2013년 11월 키이우에서 일어난 시민소요 사태인 유로마이단에 근거되고 이후 의회 결정사항이었다. 2014년 유로 마이단은 친러시아 대통령 야누코비츠의 권력남용과 금융 과두지배 그리고 인권침해을 종식시키는 인권 존엄혁명을 이루어냈다. 이러한 혁명의 정책을 이어가는 젤렌스키가 위가관리 미숙으로 비난받아야 하는가. 유럽연합과 나토가입이 항간에 떠도는 것처럼 젤렌스키의 작품인가.

문제 원인 제공은 오바마 정부에 있고 공화당의 매파 상원의원 존 메케인은 키이우로 날아가서 유로마이단과 연대를 표시했고 극우파들과 회동한 후 메이든 광장에도 등장했다. 심지어 빅토리아 누란드는 국무장관 조력자로서 유럽과 유라시아 정책 담당자인데, 그녀는 2013년 12월 13일 시위가 시작되자 세 번씩이나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그녀는 12월5일 메이든 광장을 찾아가 시위군중들에게 심지어 쿠키까지 나누어준 여성이 아닌가. 이것이 오바마 행정부의 민주주의인가.

전쟁의 계보학은 자질구레한 인과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베버의 사회적인 의미에서 표현하면, 왜 우크라이나의 민족이념이 정치지배방식에 대해 러시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선택적 친화력을 갖었는지를 물질이익과 역사적 경험, 문화적 연대 그리고 권력관계의 관점에서 치밀하게 기술되어야한다. 국가, 민족연대감정, 시민사회,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오히려 러시아를 적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는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에 기초한다.

결국 연방국가가 계급과 신분을 넘어서서 후기 자본주의에서 영토전쟁과 국가 안전망의 틀에서 문화적 통합기능을 한다. 식민지를 경험하거나 제국주의 전쟁을 경험한 나라들에서 민족주의는 계급과 신분의 격차와 갈등을 넘어서서 문화적 통합을 시도하는 국가 기제의 주요 요소로 등장 한다. 이런 차원을 무시하고 젤렌스키의 위기관리 미숙이나 그의 유럽연합과 나토가입이 전쟁 을 불러왔다는 논리는 적어도 국제정치관계를 포스트콜로니얼 관점에서 파악하는 나로선 어디 에 근거 하는지 아리송하다.

시민들의 무참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고, 이제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는 더 이상 러시아 제국과는 아물지 않는 영구적인 상처가 남게 되었다. 한계레는 “전세 뒤바뀌는 우크라 전쟁 어디로”(2022년10월 12일)에서 BBC방송을 근거로 침공 240여일이 흐른 후 전세가 역전되는 상황을 보도한다. 푸틴이 병력 손실을 만회 하기위해 2차세계전 이후 30여만명의 예비군 동원령을 내릴 정도로 시급하다. 지난 8일 푸틴은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크림대교가 폭파되는 굴욕을 겪었다. 결국 푸틴은 핵으로 위협하고 우크라이나 북부근경에 접한 벨라루스를 전쟁에 끌어들여 전선확대를 하려고 한다.

만일 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지역전이 아니라 세계적인 규모에서 일어나는 전쟁인데  정치, 경제, 문화, 종교등 전 영역에서 일어나는 신종전쟁이 될 것이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난민 으로 넘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인종문제가 유럽의 국가에서 나타날 것이다. 중국과 대만이 경색이 되고, 중국의 전략은 시진핑 3연임으로 인해 대만과의 전면전을 불보듯이 하고 있다.

인도 뉴델리의 본부를 두고 있는 Gravitas-WION은 친러시아 성향을 가지고 있는 뉴스매체이다. 10월 18일 보도에서 시진핑의 취임연설을 분석하면서 미국무장관 블링켄의 입장을 비교한다. 결론은 중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군사침략을 정상화할 것이다. 대만을 보다 빠른 속도 로 병합할 것이다.

2021년 2월 22일 상원에 제출된 법안은 중국이 직접 대만침략을 하거나 대만 영토를 강제적으로 부속시키거나 대만 시민의 삶을 위험하게할 때 미대통령으로 하여금 언제든지 군사 작전을 할 수 있도록 권위를 부여한다. 로이터 통신(9월14일)에 의하면 민주당 상원의원 로버트 메넨데즈와 공화당의 린지 그래함이 발의한 2022년 6월16일 대만 정책법안은 2022년 9월14일 17대 5의 표결차로 압도적으로 상원외교위에서 통과되었다. 향후 4년간 65억 달러가 군사지원과 대만보호를 위해 지원되고, 20억달러가 5년간 차관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미국은 이제 대만을 한국이나 일본 이스라엘처럼 비-나토동맹국처럼 대우하고 다자간 무역과 국제 기구에 참여하도록 돕는다. 물론 상 하원에서 표결을 거치고 대통령의 서명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1979년 이후 미중 수교이후 유지된 하나의 중국정책을 폐기하는 것이다. 이제 미국과 중국의 군사전쟁은 불가피해진다.

여기서 미국의 전형적인 시스템  프레임 전략을 본다. 시진핑이 3연임에 앞서 대만 정책 법안이 통과되고 미국 반도체회사들이 중국에 대한 수출을 전면통제한다. 미 국무장관은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위기를 조장하고 전쟁을 조만간 하리라 공언한다. 이에 발맞춰 미정책을 수행하는 미디어는 벌써부터 빠르면 2024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주는 시스템 프레임 전략이 이제 사이버테틱 피드백을 통해 대만위기를 향해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 에스컬레이션은 중단되어야 한다.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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