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성서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그가 오신 까닭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3.01.07 23:44
▲ Ford Madox Brown, 「Jesus Washing Peter’s Feet」 (c. 1852-1856) ⓒWikimediaCommons
인자가 온 것은 섬김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곧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다.(마가복음 10,46)

이 구절 앞에는 크고자 하는 자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세상의 권력자들과 달리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두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권력 인식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말씀이어서 말하기는 좋을지 모르나 실천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과연 어떻게 그리 할 수 있을런지요?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억눌리던 사람들은 각종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존감은 높아지고 정의가 살아나고 삶은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출현은 권력 질서의 전복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그런 전복이 있다고 기대하기에는 그 가능성이 너무나 작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그가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 가운데 으뜸이나 큰 자가 되기 원하는 자는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런 제자들은 기존의 권력 질서를 답습하거나 거기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전복시킨 새질서의 수립자여야 합니다.

새질서의 시작은 예수 자신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제자들 가운데 주(主)로 계십니다. 따라서 섬김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고 하시며 섬기러 왔다고 잘라 말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섬겼을까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이나 마지막 유월절 식사 때 앉아서 먹는 제자들을 시중들어 주신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섬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본문에서 섬김은 새로운 차원을 획득합니다. 섬김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주는 것으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섬김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는 섬김입니다. 이 땅에 내려오시고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내어주시는 섬김은 그 누구도 대신하거나 흉내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섬김은 그의 목적입니다.

그때문에 사람은 그의 온갖 허물과 약함에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섬김은 화해 중재의 성격을 갖게 됩니다. 섬김은 새질서의 수립과 궁극적으로 화해 중재를 바탕으로 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새질서를 향한 섬김으로 충만해지는 오늘이기를.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갖게 하고 그에 따라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목사(백합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