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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경계하며 의를 지키는 사람의로운 파수꾼(에스겔 3:17-19)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3.01.08 03:12
▲ Edward Gooch 「Ezekiel's Vision」 ⓒGetty Images
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들어가는 말

지난주 금요일은 주현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순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현일로부터 저희는 주현절 절기를 지키며 이번 주일은 주현절 첫째 주일입니다.

예수님 공생애의 핵심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말씀의 선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모든 말씀과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회개하는 삶이 무엇인지, 천국이 무엇인지에 대한 모든 것이 예수님의 공생애였습니다.

오늘 에스겔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와 연결시킬 수 있는 본문으로 보입니다. 예언자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나타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이 되라 명령하십니다. 이 파수꾼은 악을 경계하며 악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파수꾼입니다.

저희는 오늘 에스겔에 나타난 말씀을 통해 에스겔은 왜 이런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또 마지막으로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복으로 연결되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악인과 의인

오늘 본문은 1장에서 이어진 에스겔 소명 설화 다음 이야기입니다.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언자로 부름받은 에스겔은 그로부터 7일 뒤에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를 파수꾼에 비유하는 것은 다른 예언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수꾼의 이미지를 가장 먼저 사용한 예언자는 호세아이며(호9:8), 예레미야나 이사야도 파수꾼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렘6:17, 사56:10). 다만 이사야의 경우 눈먼 파수꾼이라고 말하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했던 말이라고는 하지만 출처가 불명확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없다” 전쟁 중에 적의 침입을 경계하는 일은 가장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적의 침입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면 우리 군 모두를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에게 주어진 파수꾼의 임무도 마찬가지의 역할입니다. 예언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에 대비하도록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선을 행하지 않고 악을 일삼을 때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모두가 멸망으로 향하지 않도록 외치는 이들이 예언자입니다.

에스겔 3장 17-21절에는 이러한 예언자의 사명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악인과 의인입니다. 예언자는 악인과 의인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포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예언자는 그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악인과 의인 두 집단의 사람에게 예언이 선포되는 상황은 똑같은 말이 병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두 구문은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21절을 보면, 의인이 죄를 짓지 않도록 경고를 듣고 죄를 짓지 않는다면 반드시 살 것이고, 예언자도 함께 목숨을 보존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악인의 경우 그들이 살 것이라는 선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언자가 악인들에게 그 악함과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지 않으면 예언자는 악인의 죽음에 책임을 지게 됩니다. 악인이 예언자의 경고를 듣지 않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을 때는 예언자에게 책임이 돌아가지 않고 악인만이 죄로 인해 죽게 됩니다.

또 의인에 관해서도 잘 살펴봐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의인이 자신의 의를 돌이켜 악을 행했을 때, 의인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의인이 과거에 행한 의로운 행실을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의인이 생명을 부지하는 경우는 그가 처음부터 죄를 깨닫고 죄의 길을 걷지 않았을 때입니다.

파수꾼에 관한 이 본문은 33장 2-9절에 거의 똑같은 형태로 반복됩니다. 보통 이에 대해서 에스겔 전체 본문의 앞뒤를 연결해주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33장에는 10절 이후에 추가적으로 붙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악을 행한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 의로운 삶을 살다가 잠시 악을 행했다면 그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박탈되는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에스겔의 선포를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악인의 죽음이 아니라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가 어찌 죽고자 하느냐?”라며 반문하십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확정된 심판

일반적으로 오늘 본문과 33장에 나타난 본문은 수미쌍관 구조라고 말합니다. 동일한 본문이 앞뒤에 놓임으로 인해서 에스겔 전체 본문의 구성을 만들고 있으며, 파수꾼으로의 예언자 역할을 강조한다고 말합니다.

분명 에스겔의 예언들은 정확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열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래 에스겔의 예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선포되었겠지만, 후대에 에스겔의 예언을 엮어놓은 이들은 그 예언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배치해놓았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오늘 본문이 전체 에스겔 본문의 구성을 맞추기 위해 들어와 있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오늘 본문과 33장의 본문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33장 10절 이후의 선포 때문에 큰 차이를 갖게 됩니다.

에스겔 전반부에 나타난 선포들은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선언입니다. 실제로 바벨론 포로기가 시작된 이후, 에스겔을 비롯한 포로민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에스겔의 예언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이전부터 함락된 이후까지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우셨다고 해서 이것이 전체 이스라엘을 지칭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장에서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즉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는 자들에 대한 파수꾼으로 세워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파수꾼의 역할을 맡기신 이후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입을 봉해버리십니다. 파수꾼이지만 경고의 말을 전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에스겔은 실제로 예루살렘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서신을 보내면서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환상 중에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런 메시지를 전하지 않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을 위한 파수꾼으로 세워졌지만, 하나님에 의해 입이 봉해졌기에 예루살렘을 위해 어떠한 역할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이는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이 이미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악인과 의인 중에 악인이 살아남을 길은 제시되지 않고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의인도 그가 죄를 범한다면 다시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가 과거에 행한 의로운 일조차도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악을 행한 의인의 앞길에 스스로 장애물을 두셔서 그들을 넘어지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을 행한 의인과 악인 모두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이후에 이어지는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선언은 예루살렘에 더 이상 의인이 남아있지 않다는 선포가 됩니다. 마치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상태입니다(창18-19장).

예루살렘에는 이미 확정된 심판이 내려집니다. 하지만 에스겔에게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이들을 위로할 책무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에스겔은 33장에서 자신이 파수꾼으로 세워졌음을 다시 말합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돌이킴을 바라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즉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이들에게는 아직 회개와 구원의 기회가 남아있음을 선포합니다.

이러한 에스겔의 선포는 왜 예루살렘이 무너졌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됩니다. 그곳에는 의인이 남아있지 않았기에 누구도 예루살렘을 지켜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선포이기도 합니다.

파수꾼이자 의를 지키는 사람

에스겔의 이런 선포가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혹은 정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만 선포한 것인지 불명확합니다. 이런 내용은 신학의 영역에서 더 다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이 지금의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자가 맡은 사명을 똑같이 맡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이 되셔서 그들에게 회개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그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비록 예언자가 아니지만, 예언자가 맡은 사명을 동시에 맡은 사람들입니다. 악인이 돌이킬 수 있도록, 의인이 악의 길을 걷지 않도록 경고해야만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우리가 맡은 사명이 예언자적인 사명이라면, 비록 예수님께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다하지 않았을 때, 악인의 피 값을 우리에게 돌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는 예언자적 사명을 맡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한 사람의 성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 중 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도 두 가지 길이 제시됩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살아갈 것인지, 악에 물들어 살아갈 것인지 우리는 어느 한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길에는 심판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예언자적 사명을 받은 파수꾼이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의인의 길에 서야만 합니다. 즉 의로운 파수꾼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저희 교회는 올해 ‘축복하고 복을 받자’를 표어로 삼았습니다. 성도님들 간에 서로 축복하고, 세상 속에서도 선한 이들을 축복하며 우리도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삶을 살자는 내용입니다.

누군가를 축복하는 일은 그저 복을 빈다는 말로 끝나선 안 됩니다. 그가 잘못된 길을 걷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일, 그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평탄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일이 그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는 일이 됩니다. 입으로만 하는 축복이 아니라 행함 속에서 이루어지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1편의 시구처럼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선포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복 주신다 하셨습니다.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는 일은 에스겔에 나타난 선포처럼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며, 누군가의 삶을 지켜주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는 누군가를 향한 축복의 일입니다. 또 내가 의로운 삶을 지켜가는 일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 복을 주신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의로운 파수꾼이 되길 원합니다.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축복의 사람이 되시길 바라며, 의로운 삶을 살아가시기에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그 복과 은혜를 내리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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