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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어서는 안 되는 일“늘 깨어 있기를 갈망하십시오”(마태복음 25:1-13)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1.08 21:29
▲ 고통 당하는 사람들 곁에 서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 때문일까. ⓒ이상중 목사 페이스북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언제, 어디서나 누릴 수 있는 성도가 마땅히 누려야 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실 많은 성도가 이미 주어진 평안은 외면한 채, 다른 곳에서 평안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밤낮 일하고, 근심하며 수고는 하지만 정작 스스로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전도서는 하늘 아래 일어나는 모든 일은 헛되며, 바람을 잡으려 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허무하고, 어리석은 삶을 반복한다는 표현입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주어진 평안을 선택하며, 누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헛되이 시간과 힘을 낭비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얻고, 누리고자 하는 평안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소유해야만 하는 것에서 평안을 찾지 않고 나의 마음 안에 있는 평안을 다시 선택하며 주어진 삶을 살게 되시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주 다니엘과 세 친구에 관한 말씀을 나누면서 2023년에는 우리도 이들과 같은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늘 그렇듯’ 반복하는 신앙생활이 있어야 단호하게 하나님을 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나의 필요를 위해 말하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침묵하며 듣는 기도, 내 이익만을 위해 필요한 말씀 구절을 찾는 말씀 묵상이 아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시려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한 말씀 묵상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쩌면 성도님들에게는 낯선 기도 방식과 말씀 묵상을 2023년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젖을 먹는 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더 성숙한 성도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함께 깨닫고 결단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그런데,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하늘나라에 관한 이야기는 세례 요한의 선포 속에 처음 나타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3:2) 여기서 하늘나라는 하늘 위에 있는 공간적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적용되는 세상을 뜻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를 맞기 위해 세례 요한이 선포한 회개는 근래에 설교를 통해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어긋난 방향의 삶에서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방향으로 삶을 돌이키고, 자신의 욕망과 목적, 세속적인 뜻을 꺾고 하나님이 자리할 수 있도록 마음을 비우는 행위를 말합니다.

세례 요한이 말한 하늘나라, 하나님 나라는 회개한 성도가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동안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될 삶을 의미했습니다. 죽어서 경험한다거나, 특별한 누군가만 경험할 수 있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다른 길, 다른 차원의 삶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선포했던 하늘나라에 대해 다시 선포하십니다. “1 그런데,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어리석은 다섯 여성과 슬기로운 다섯 여성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2 그 가운데서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불은 가졌으나, 기름은 갖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들의 등불과 함께 통에 기름도 마련하였다.”

오늘 본문에서 혼인 잔치는 하늘나라를, 신랑은 예수님을, 열 명의 여성은 제자들을 말합니다. 신랑이 언제 올지 알 수 없기에, 등불과 함께 통에 기름을 넉넉하게 준비한 여성을 예수님은 슬기롭다고 표현하셨는데, 앞으로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하늘나라는 이미 왔기도 하지만(마3:2) 장차 도래하기도 합니다.(마25:13) 그래서 성도는 호흡이 있는 동안에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경험해야 하고, 장차 올 하늘나라를 대비하기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경험하는 것과 장차 올 하늘나라를 대비하는 방법은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 회개했던 삶과 마음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태도가 이미 도래한 하늘나라를 그리고 앞으로 올 하늘나라를 경험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장차 올 하늘나라는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5 신랑이 늦어지니,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보아라, 신랑이다. 나와서 맞이하여라.’ 7 그 때에 그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서, 제 등불을 손질하였다. 8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의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이 대답을 하였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나 너희에게나 다 모자랄 터이니, 안 된다. 차라리 기름 장수들에게 가서, 사서 써라.’ 10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특이한 점은 비유에서 어리석은 여성들도 뒤늦게라도 기름을 마련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어떤 말씀을 전하십니까? “11 그 뒤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12 그러나 신랑이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였다.”

참으로 매정한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그래도 흉내라도 내면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했는데,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기름을 준비했는데 문을 걸어 잠근 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단호한 말씀을 통해 제자들이 앞으로 하늘나라를 경험하고 맞이하는 준비가 결코 소홀하면 안 된다는 중요성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매정한 말씀이지만, 오히려 이런 단호함이 제자들을 향한 배려가 됩니다.

주중에 한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세요. 사람들은 배워야 해요. 하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정말 진실을 말하려면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려는 기대는 내려놔야 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여야만 할 거에요. 들을 귀 있는 자만 듣게 하세요.”(120)

“뭔가를 가르쳐주려면 때로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주어서 곁에 붙잡아두기 보다는 진실을 말해주어서 어떤 이들은 당신을 떠나도록 버려두는 편이 낫습니다.”(121)

- 《우주가 사라지다》

쉬운 선택은 아니지만, 진정으로 제자들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진실을 말함으로 대충 흘려듣지 않도록, 돌아설 수 있도록 하는 충격이 때로는 필요합니다. 

하늘나라를 이 땅에서 경험하고, 또 장차 올 하늘나라를 맞이하려면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11 그 뒤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12 그러나 신랑이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였다. 13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래곤볼》이라는 일본 만화가 있습니다. 이 만화에는 외계 사이언이라는 별에서 지구로 온 ‘손오공’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나옵니다.

여러 외계 종족들과 전투를 벌이며 지구를 지키고 구하는 이야기를 가진 이 만화에서 주인공은 적과 싸우다 죽음 직전까지 갔을 때, 자신의 한계를 넘어 더 강해진 ‘초’사이언으로 일시적으로 변신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더 강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자신의 한계치를 넘어선 ‘초’사이언의 상태로 언제든지 변할 수 있도록 수련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초사이언의 상태를 일정 시간 유지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훈련 중에 강력한 초사이언으로 잠시 변신을 했다가도 다시 평범한 상태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의 훈련 방법은 강력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더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초’사이언으로 변신하면 변신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도록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도 하늘나라를 경험하기 위해서, 다가올 하늘나라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런 집중이 필요합니다. ‘회개’한 삶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아니 더 성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늘 그렇듯’ 듣기를 원하며 침묵 가운데 기도하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기 위하여 침묵 가운데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 잔치가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켤 수 없는 쓸모없는 등만 들고 있어 들어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다섯 명의 여성과 같아질 뿐입니다.

며칠 전 교단 총회 본부에 평화공동체운동본부 집행위원회 회의가 있어서 참여했다가, 다음날 이태원에 있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가서 조문했습니다. 편지를 적는 공간도 있어서, ‘책임자 처벌, 진상 규명, 생존자들의 회복, 유가족들의 건강과 일상 회복’을 위한 마음을 담아 기도하며 편지를 적었습니다.

만약 우리 초도제일교회가 합동분향소 가까이라도 있었다면, 모든 성도님과 함께 조문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사랑, 평화, 선이라는 삶의 방향과 일치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합동분향소에서 아주 괴랄한 풍경 한 가지를 보았습니다. 분향소를 향해 서 있는 한 트럭에 현수막 배경으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문구가 작게 쓰여 있었고 크게는 유가족들을 비난하는 문구가 적혀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교회를 다니는 이들이 설치했을 현수막을 보고서 참담하고, 부끄럽고, 마음에서 분노가 일기도 했습니다. 신앙이 없는 이들이라면, 이해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성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사랑, 정의, 선’은 사라지고 정치적인 색이 배경이 되어서 하나님, 예수님, 말씀보다 우선하여 정작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해야 할 성도가 저따위의 말을 할 수밖에 없는가 싶었습니다.

단호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들은 성도가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이 아닙니다.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듣게 될 이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하신 말씀처럼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정치적인 배경이, 나의 경험이, 세상 적인 가치와 지식이, 얄팍한 속삭임이 성도를 무너뜨립니다.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저와 성도님들도 쓸모없는 등을 들고 있는 제자가 될 뿐입니다.

성도는 오늘 하늘나라를 경험해야 하고, 다가올 하늘나라를 준비해야 합니다. 미룰 수 없는 일입니다. 이 길은 늘 깨어 있는 삶의 태도가 될 때 가능합니다. 닫힌 문 앞에서 뒤늦게 준비했다며 문을 두드리지 않고, 바로 오늘 삶과 마음의 회개를 통해 날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성숙한 성도,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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