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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비명억울함이 없는 세상을 향해(사무엘하 21,1-7; 마태복음 21,16-18)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3.01.12 00:51
▲ The famine in Samaria was one of many depicted in the Bible. ⓒPHAS/Universal Images Group via Getty Images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뭄이 계속된다는 것은 권력자들보다는 일반 대중에게 훨씬 더 심각한 위기입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재난이 이들의 생존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고 가정의 해체를 초래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들은 이들의 삶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들이 봉기하는 것을 막고 권력의 안위와 보전을 위해 재난에 보다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동시에 가뭄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으려고 갖가지 시도를 합니다. 우리의 기우제도 그러한 시도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삼년 가뭄이란 것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 얼른 상상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가뭄 첫해는 이전에 거둔 것으로 억지로나마 겨우겨우 버틸 수 있겠지만, 둘째 해부터는 정말 막막하기만 합니다. 먹거리는 고사하고 물 찾는 것도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셋째 해에도 가뭄이 계속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삼년이 되자 다윗도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 것도 안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정의와 공의를 시행한 왕으로 평가되고 있으니 아마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이 시점에 그가 하나님의 얼굴을 찾았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장합니다. 이것은 그가 지금까지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시도했을 때 온전히 자기 힘으로 하고 하나님을 전혀 찾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인력으로 할 수 있는게 더이상 없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찾았다면, 이것은 이제 하나님께 완전히 맡긴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일하고 기도하라'는 오랜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뜻밖에도 재난의 원인이 사울의 기브온족 학살에 있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것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비정치적으로 읽고자 합니다. 기브온족은 본래 가나안의 한 부족이었는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에 투항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와 족장들은 그들의 위장에 속아 평화협정을 맺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집을 위해 나무를 하고 물을 긷는 일을 맡겼습니다(수 9장). 이 때문에 나중에 그 지역을 점령할 수 없게 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와 족장들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사울이 그들을 학살한 것에 대한 보도가 없어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르고 여기서 그에 대해 처음 듣습니다. 혹시라도 사울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스라엘 안에 사는 다른 부족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이를 위해 사울은 그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적대하게 합니다. 옛일을 끄집어내고 다름을 강조하고 이제까지의 포용과 상생을 저버립니다. 그래야 학살이 가능해집니다.

사울은 오늘날의 극우라고 할 수 있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의 국수주의적 열심이 무고한 자들의 피를 부릅니다. 잘못된 열심의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시편 기자는 성전에 대해 잘못된 열심을 내는 자들이 자기를 삼킨다고까지 탄식했었습니다(시 69,9; 요 2,17 참조). 잘못된 열심은 그럴 듯한 말로 잘 꾸며져 있어도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의 전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학살의 현장에서 들려온 기브온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그 날의 참사를 잊었을 때 그들을 응징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삼년 가뭄의 징벌이라면 너무하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이유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끊이지 않는 절규에 하나님은 그만큼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비극 속에 계셨습니다.

가뭄은 하나님의 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에 대한 분노이고 심판입니다. 가뭄은 모두에게 닥치는 광범위한 재난입니다. 학살에 가담하지 않았는데, 학살과 무관한데 하며 하나님께 항변할 사람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침묵은 악입니다. 가뭄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악의 침묵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기도 합니다. 그 시대는 침묵으로 악에 동조하고 동참했습니다. 가뭄은 그 시대의 악을 고발하는 하나님의 외침입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무조건 하나님 편을 드는 것처럼 생각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시대의 악에 대한 성찰이 없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가뭄으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현재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유족들이라 할 수 있는 현재의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죄의 길을 묻습니다. 다윗이라고 해도 자기 방식으로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그 조치를 받아들일 수 있고, 그래야 학살 사건이 마무리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울의 자손 7명의 목숨을 요구했고, 다윗은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허용될 수없는 것이겠습니다. 이 점을 감안하고 읽어도 학살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이로써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저 학살당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이 과정을 이끌어가시고 그와 같은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를 일깨우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와 같은 만행이 예수 탄생과 관련하여 반복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예수를 찾았던 동방의 박사들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헤롯을 피해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아마도 헤롯은 불순한 의도로 박사들에게 아기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했겠으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박사들에게 속았다고 생각한 그는 몹시 분노하고 그 지역의 두 살 이하 아이들을 모두 죽입니다. 말로 다하기 어려운 광기입니다. 권력의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찟한 학살행위입니다.

그렇게 죽은 아이들의 숫자가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권력이 광기를 만들어내고 광기가 수많은 재난들을 일으키고 무수한 생명들을 앗아갑니다. 성서는 그 이후 죽은 아이들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고 예언을 인용해 슬픔의 통곡소리가 그 지역에 가득했을 것을 암시만 합니다.

계시록 6장에서 주님을 향해 억울함을 언제 갚아주실 것이냐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나옵니다.그들 가운데 그 아기들도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이 땅의 역사에서 그렇게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울부짖음 역시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개입하셔서 반드시 갚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그러한 일이 그치는 새역사를 열어가는 우리와 새해가 되기를 빕니다. 하나님께서 새힘을 더하시며 고통의 현장을 희망의 문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희망의 문을 여는 주역으로 우뚝 세우실 것입니다. 억울함이 없는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가실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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