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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공포와 윤석열의 오판막스 베버와 젤렌스키 (6)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 승인 2023.01.14 15:44
▲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AP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취임 이후 네 번째 외신 인터뷰다. 윤 대통령은 11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한국이나 미국이나 서로 북핵에 대한 위협에 함께 노출돼 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의 안보 공포

이런 국제적인 상황에 북핵문제로 고심하는 대한민국은 신중해야 한다. 안보공포를 조장하는 핵무장 담론은 위험천만하다. 최대한 외교협상 채널을 열어야 하고 미중이 한판 벌일지 모르는 대만의 전쟁터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럴 경우 북한과의 전면전은 피할 수가 없다. 단순히 젤렌스키의 문제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심각한 문제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대만으로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간다. 일종의 전쟁 도미노 현상이다. 북한의 7차 핵실험 준비로 여권에서 전술핵 재배치, 핵우산 강화, 핵공유 등의 주장이 나온다. 전력핵이 주로 ICBM이나 SLBM 같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이나 전력 폭격기를 이용 한다면, 전술핵은 전투기나 단거리 미사일 또는 핵배낭으로서 병사가 운반할 수도있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 주한미군에 전술핵 재배치는 미국이 원하는 정책이 아니다. 흔히 사용되는 핵우산은 핵이 없는 남한이 북한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대응해서 전쟁을 억제한다. 핵공유는 나토가 채택하는 전략인데, 전술핵을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등과 같은 곳에 미국의 전술핵을 배치해 두었다가, 전시에 폭격기들을 이용해서 공동으로 핵공격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핵무기 최종 사용권한은 미국이 갖는다.

최근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정부가 미국과 전술핵 배치 등을 논의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도 비상상태인 경우 탈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북한이 ICBM을 미대륙으로 발사할 경우 미국이 핵보복을 할 수 없을 것으로 단정한다. 그는 핵우산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핵에 대한 지나친 그의 공포담론은 외교나 안보 그리고 동맹관계에서 큰 손실을 가져온다.

이미 2022년 5월 13일 안토니 블링캔과 한국의 외교장관 박진은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로이터 통신을 유튜브에서 찾을 수가 있다). 이 자리에서 KBS 기자가 질문을 했는데, 요약하면 북한의 핵실험이나 적대행위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 비핵화 전략이나 혹시 정세가 경색될 때 윤석열 정부에서 현재의 전략을 수정하거나 바꿀 수 있는 지렛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답변에서 블링캔과 박진은 서로 일치한다. 특별한 상황에서도 한국의 전술핵배치는 전혀 언급이 없다. 동맹강화, 군사훈련을 통한 억지력강화, 외교적 채널과 대화를 열어두기, 미국의 핵우산 보호, 유엔과의 합력한 경제제재 그리고 핵위협으로부터 한국안보의 강화이다. 그러나 위협 시 미국은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지만 준비가 되어 있다. 오히려 박진 장관은 중국의 긍정적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한다.

지금 블링켄은 하버드 대학의 ‘요셉 나이’의 강한 힘과 부드러운 힘을 구사하는 이중 전략을 대변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사이버네틱 시스템 전략으로 승기를 잡은 것을 이제 한국에 적용한다는 말이다. 북한을 전방위로 고립시키고, 국제정치차원에서 제재를 더 심하게 하고,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강화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 핵공격을 준비한다.

여당의 국회의원이 이런 중차대한 두 양국의 결정을 번복하고 핵전술 배치를 자기 멋대로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국제정치논리에서 이것은 배신행위에 속한다. 미행 정부의 담론은 철저하게 시스템 방식으로 결정되고, 잘못되면 당사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게 되어 있다.

정 의원에 의하면. 우크라이나가 핵전력 세계 3위였는데 1994년 미국과 영국의 안보 약속을 믿고 체결한 부다페스트 협약으로 인해 핵전력을 포기했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했을 때 미국과 영국은 수수방관했다고 말한다. 이런 언급은 정치인으로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당대 상황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4년 2월 우쿠라이나 혁명으로 인해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츠가 러시아로 축출당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대행 대통령과 수상을 통해 유럽연합과 협정조약에 서명했다. 이 일로 인해 크림반도 점령은 푸틴의 잘 짜여진 사전 계획에 의해 20일만에 끝났다.

러시아와 합병찬반투표에서 96.6%로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60% 정도가 친러시아계 주민이었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유엔협정과 1994년 부다페스트 협약을 어긴 것이다. 이 협약에서 미국과 영국 그리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과 영토를 존중 한다고 서명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우크라이나는 1900개의 전략 핵탄두와 대륙간탄도 미사일들을 포기했다. 그러나 미국은 협약에서 우쿠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한 것이 아니라, “확신”했다. 보장과 확신은 의미의 큰 차이가 난다.

안전보장인 경우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에 대항하여 군사작전을 우크라이나에서 수행할 수가 있다. 당시 보리스 엘친은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을 존중했지만, 푸틴은 오바마 정책에 대한 보복으로 헌신짝처럼 버렸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러시아에대해 자산동결과 제제로 응답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30억 달러를 지원하고, 또 다른 30억 달러를 차관보증을 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크림반도 재탈환이 시도되는 것은 이미 준비된 것이다. 이런 정치상황을 볼 때, 베버가 강조한 것처럼 개념적 명료함과 정확한 정세분석에 근거한 책임적 발언은 적어도 정치인에게는 필요한 덕목에 속한다.

카리스마 도덕 정치

불투명이 세계질서를 지배할 때 정부는 국익을 위해서 관료들과 공공 전문가들과의 효율적인 합력을 추구하고, 동시에 시민사회와 민족의 연대감정을 영토국가의 안보에 균형을 맞추어가는 이중의 과제를 마주하게 된다. 서방의 언론은 젤렌스키를 골리앗인 푸틴과 싸워 이긴 다윗과 같은 영웅으로 말한다. 젤렌스키가 이겼나? 문화적 가치와 시민/민족 연대감에서 승리를 했지만 너무나 많은 것이 파괴되었고 복구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정치 지도자로서 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카리스마적 지배와 책임윤리이다. 평화 협상을 우크라이나 시민의 권리의 이름으로 추진하고 크림반도 재탈환이라는 설욕보다는 중립국의 지위로서 안전보장을 확고히하고 건전한 민주주의를 의희제도에서 확립해 나가야 한다. 러시아와 인정정치를 펼쳐나가야 하는 대목이다.

의회 민주주의를 소수의 관료지배나 독점 카르텔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시민을 정치 주체로 인정하고 대화와 신뢰를 확장하는 태도이며, 이러한 지도자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정당성이 주어진다. 이것을 베버는 책임과 심정의 윤리의 접합으로 보고, 지도자의 덕목으로 꼽기도한다. 동시에 이러한 리더십이 민족과 인종을 구별하지 못하는 민중 선동주의나 집단주의로부터 시민사회와 생활세계를 보호한다.

카리스마는 사도 바울의 은혜의 신학에서 기인한다. 은혜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살리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을 화해하고 치유하는 정치 리더십을 발전시키는 데 공헌한다. 이것을 우리는 남아공에서 실천된 넬슨 만델라의 회복과 치유의 인정정치에서 본다.

우크라니아의 기독교가 할 수 있는 정치적 책임도-러시아의 정교회와는 달리-카리스마의 은혜와 도덕적 신실함을 시민사회 안에 심어나가는 데 있다. 보다 많은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그리고 문화적 가치인 생활세계를 향해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창조적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여기서 종교란 더 이상 민중의 아편이 아니라, 시민과 민중을 새하늘과 새땅을 향해 각성시키고 회복시키는 정의와 책임적 에토스가 된다.

책임이란 말은 반응에서 나오며, 착잡하고 복잡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 해석과 도덕적 태도에 기초된다. 정치적 신중함이 책임윤리에 담겨져있다. 이런 점에서 베버는 칸트의 제자이다. 칸트는 그의 도덕 철학에서 개혁을 하려는 정치가의 덕목과 태도를 책임과 신중함으로 말하고 도덕을 정치의 추악한 이해 관계에 종속 시키는 시도를 비판한다.

젤렌스키가 정치적 합리성을 카리스마적 지배로 가져가는 것은 그의 도덕성과 정치적 신중함 그리고 엄정한 국제정치질서를 사실주의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런 탁월한 능력은 전쟁을 치르는 그의 신중한 태도에서 보고 있다. 결국 이것이 포스트콜로니얼 시대에 우크라이나 사회를 대안 근대성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소통적인 신뢰, 정치적 신중함, 전쟁에서 공동운명이 되어 투쟁했던 민족 연대감, 우크라이나 문화와 생활세계를 존중하면서 책임과 해방을 향해 새롭게 비판적으로 재해석 해나가는 창조적 능력이 젤렌스키의 정치미래의 답이 될 것이다. 이런 기대가 공공신학과 사회과학에 헌신한 사람이 갖는 지나친 상상력에 불과 한 것일까? 어쩌면! 그래도 현실주의적으로 갈 수 있는 희망의 길이지 않은가?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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