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영이 가난해진 사람들에게하나님 나라의 복(마태복음 5:3-10)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3.01.29 05:49
▲ Cosimo Rosselli, 「Sermon on the Mount」 (1481-1482) ⓒWikipedia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들어가는 말

올해 저희 교회의 표어는 ‘축복하고 복 받는 성도’입니다. 1년 내내 복 받으시라는 말씀을 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관한 말씀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복에 관해서 말씀을 나눌 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흔히 팔복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 따르자면 산상수훈의 첫 번째 말씀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6장에는 팔복과 거의 유사한 말씀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저희가 사용하는 개역개정 성경의 소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누가복음에 나타난 말씀에는 ‘팔복’이 아닌 ‘복과 화를 선포하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물론 마태복음에도 ‘팔복’이 아닌 ‘복 있는 사람’이라고 소제목이 달려있긴 합니다.

마태복음은 어떠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만이 선포되고 있다면, 누가복음은 그 반대의 사람들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복이 아닌 화를 면치 못할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서로 차이가 있는 두 본문 중에서 무엇이 예수님의 본래 말씀에 가까울지를 생각해본다면, 누가복음의 말씀이 조금 더 예수님의 본래 말씀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말씀이 마태복음의 말씀보다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일반 대중에게 말씀을 선포하셨다면, 복잡하거나 어려운 표현을 섞어서 말씀을 전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일반 대중들 역시 예수님의 말씀이 어려운 표현들로 가득차 있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누가복음의 본문에는 위로의 말씀과 함께 경고의 말씀이 엮여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회개를 강조하셨다는 점을 본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복의 선포에서 그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태복음의 말씀이 잘못되었다는 의미도 아니고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본래 말씀을 온전히 간직해서 전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복음도 자신들의 상황에 맞춰 약간은 말씀을 각색한 흔적이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 저희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차이를 살펴보며 예수님께서 본래 하셨던 말씀을 찾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마태복음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팔복이 어떤 것인지,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전하려 하셨던 말씀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천국에 합당한 사람

마태복음이 예수님께서 처음 선포하셨던 말씀을 확장시켜 놓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구약성경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팔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경은 ‘어떤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번역해놓았지만, 헬라어로 보면 ‘복이 있어라’라는 선포입니다. 이는 시편 1편 1절과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1편 1절도 ‘복있는 사람은’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어로 보면 복의 선포입니다.

여덟가지 각각의 항목에 있어서도 구약성경과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5절에 나타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의 경우, 시편 37편 11절에 나타난 ‘겸손한 사람들이 오히려 땅을 차지할 것이며’와 연결됩니다.

마태복음에서 첫 번째 항복에서 제시된 복과 여덟 번째 항목에서 제시된 복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로 똑같습니다. 이는 여덟 복이 하나의 틀로 엮여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여덟 가지 복을 엮고 있는 틀은 ‘천국’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전하셨던 말씀을 구약성경과 연결시키면서 확장시켜놓았고, 그러면서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말합니다. 즉 이러한 행동을 했을 때에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며 신앙인의 지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이 결과적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10-12절에 나타납니다. 박해의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지키며 따르는 이들에게 복이 내릴 것이며, 그들이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은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내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사람, 마음이 겸손한 사람, 정의와 공의를 지키려는 사람,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며 돕는 사람,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복이 내린다고 말합니다.

이들에게 허락된 복은 천국입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항목에서만 천국이라는 표현이 나타나지만, 다른 복의 조항들도 결국에는 천국의 백성이 되어 천국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이것이 실제 박해 시기를 반영하고 있는 말씀이라면, 이들이 바라본 천국은 마태복음의 표현 그대로 ‘하늘에 있는 나라’였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박해의 시기에 조용히 숨어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팔복에 이어서 나오는 말씀은 ‘소금과 빛’입니다. 맛을 내는 소금이 되어야 하며 등경 위에서 빛을 비추는 빛이 되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은 어떤 어려움의 순간에도, 설령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순간에도 믿음을 잃지 말라고 격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순간에 더욱 믿음을 드러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면서 믿음을 드러내라 말합니다.

이러한 행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들이야말로 천국에 합당한 이들이며 천국을 누릴 수 있는 이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마태복음이 말하는 신앙 지침은 참으로 엄격한 지침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위로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과 같은 의미의 복을 말씀하셨을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들을 살펴보면, ‘하늘에 있는 나라’보다는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쉬운 예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은 이 땅에서 누리게 될 복이 됩니다. 만약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3절에 나타난 표현 중에 ‘심령이’라는 말은 마태복음을 기록한 공동체가 첨가했다고 말합니다. 누가복음의 경우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서 선포하신 복을 그대로 기록했지만, 마태복음을 기록한 공동체에는 가난한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심령이’라는 말을 덧붙여서 의미를 바꿔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영이 공허하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이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참된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영으로 채워집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너희는 심령이 가난하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않았다는 비판과 경고의 말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이들에게 복을 선포하셨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의에 의해서 영을 잃은 이들이 아닙니다.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자신의 영을 잃게 된 이들입니다. 즉 그들을 온전히 하나님의 뜻으로 인도할 사람이 없기에, 또는 세상에 의해 잘못된 마음을 품을 수 밖에 없게 되었기에 영이 가난해진 이들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대중들을 위로하기 위한 초대의 말이 될 수도 있고, 이들을 바르게 이끌지 못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복을 선포하고 부유한 이들에게는 화가 미치리라는 경고로 나타나 있는데, 예수님께서 본래 경고하셨던 대상은 단순히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끌지 못했던 종교 지도자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이들,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영을 잃어가고 있던 이들을 하나님의 복으로 초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팔복의 전체적인 본문에는 복음서 특유의 사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정확히 어디부터 어디까지 선포하셨는지 꼭 찝어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큰 의미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 세상에 의해 지쳐가고 있는 이들을 향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그들이 그곳에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며 위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복

팔복의 말씀에 나타난 사람들이 받게 되는 복 중에서 현실적 혹은 물질적인 복의 내용은 땅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의 땅도 부동산을 얻게 되리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이 외쳤던 것처럼, 자신이 경작할 수 있는 땅에서 자신의 소산을 누리게 되리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6절에 나타난 ‘배부름’도 음식을 먹어서 배부른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이 의를 행하며 살아갈 수 있기에 배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배가 아니라 영이 채워짐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물질적인 무엇인가를 받아야 그것이 복 받은 삶이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면 물질적으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현실에서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고 물질적 보상이 당장 내 앞에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위로이고 평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의해 지친 영혼을 회복시키시며 그 영혼이 충만히 채워지도록 자신의 영을 불어넣어주십니다.

누군가를 위해 슬퍼하는 이들,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며 돕는 이들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에게도 똑같은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십니다.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아주시고, 정직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하나님의 산에 오르게 하셔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십니다.

세상의 압박으로 인해 우리의 심령이 가난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가시기에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이들이 되시고, 그 나라를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 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일궈낸 모든 결실들을 빼앗김 없이 온전히 거두고 누리며 살아가게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복을 여러분께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