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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과 공의가 만나는 자리구원받는 백성(스가랴 2:1-13, 누가복음 19:37-40)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01.31 15:23
▲ Anthony van Dyck, 「Entry of Christ into Jerusalem」 (1617) ⓒWikipedia

도성 시온아, 기뻐하며 노래를 불러라. 내가 간다. 내가 네 안에 머무르면서 살겠다. 나 주의 말이다.(스가랴 2:10)

예수께서 어느덧 올리브 산의 내리막길에 이르셨을 때에, 제자의 온 무리가 기뻐하며,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을 두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말하였다.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 그런데 무리 가운데 섞여 있는 바리새파 사람 몇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의 제자들을 꾸짖으십시오.” 그러나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누가복음 19:37-40)

1.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환상(幻想)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무려 여덟 개의 환상들이 그에게 주어졌지요.

환상은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통로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소망을 표현하는 통로입니다. 우리들의 소망, 그러나 이 땅에서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인간의 소망을, 하나님이 주신 환상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보아라. 우리가 외치는 것은 헛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너희들 제발 이렇게 살아라’ 하고 하나님도 권유하시는 것이다.’

선지자, 예언자들은 환상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이루어져야만 하는 우리의 소망을 말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환상은 기이한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간절한 소망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뜻이 만나는 현장인 것입니다.

오늘 스가랴에게 보여진 환상은 ‘측량줄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천사 하나가 손에 측량줄을 들고 스가랴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 성의 너비와 길이를 재러 간다며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런데 다른 천사가 금방 또 나타나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예루살렘을 재 봐야 소용없다. 예루살렘은 금방 지금의 크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지고 커질 것이다. 그리고 돌로 된 성벽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불타는 성벽이 되어서 보호해 주실 것이다. 온 성읍을 찬란한 영광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지금 스가랴의 환상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냐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현실은 처참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전혀 희망도 소망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예루살렘이 찬란한 영광으로 가득찰 것이라는 이야기는 어쩌면 허무맹랑한 소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소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한 하나님 신앙의 위대함입니다.

역사의 대변혁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역사는 힘 있는 사람들이 그 권세를 과시하는 장입니다.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상이고, 철저한 승부의 세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 그런 처절한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자비, 평화... 하는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것을 좀처럼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랑하고 평화롭게 살려고 하다가 뒤통수만 얻어맞은 사람들입니다. 풍전등화 같은 멸망의 순간에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붙들었지만 냉혹한 역사 앞에서 패배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배신하고 하나님을 등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다시 그들에게 진부한 옛날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입니다. 이미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이야기, 사라져버린 것 같은 이야기, 폐기된 것 같은 이야기, 그래서 다시는 듣기도 싫은 그 이야기, 정의, 평화, 사랑, 인내, 자비… 그것만 붙들고 있다가 망해버렸던 바로 그 이야기. 이 이야기를 다시 듣는 백성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절망일까요? 실망일까요?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똑같은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오늘 스가랴가 들고 온 환상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너희들 정의롭게 살아라. 사랑하며 살아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라.” 여기까지는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 강조점이 달라집니다. “당신들의 실패가 어디에 있는 줄 압니까? 사랑하고 살고, 정의롭게 살고, 평화롭게 살고… 다 좋은데, 문제는 당신들의 힘으로만 하려고 하니까 실패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뭡니까?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스가랴의 환상의 핵심은 바로 10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간다. 내가 네 안에 머무르면서 살겠다. 나 주의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역사요 힘이며 빛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곳은 어둠이며 패망이고 혼돈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잘 하느냐? 우리가 얼마나 어떻게 잘 사는가?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구체적인 성과를 제쳐 놓고, 우리가 과연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느냐?” 이것이 역사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스가랴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결코 옛 이야기의 반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핵심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우리가 우리 힘으로만 하려고 했던 어리석음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직접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무엇이든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스가랴의 말씀이 주현절의 의미이고, 성육신의 의미이고,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2.

함께 읽는 누가복음의 말씀은 뜬금없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입니다. 고난주간 종려주일에 읽는 말씀을 오늘 왜 읽었을까요? 바로 역사의 현장 속으로 하나님이 직접 들어오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어디입니까? 이스라엘의 정치경제의 중심지입니다.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그뿐입니까? 종교의 중심지, 신앙의 중심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낸 모든 것의 결정체입니다. 바로 그 안에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루어낸 그 모든 성취들이 의미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모든 인간의 업적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그 삶 속에 모시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으로도 알려주고, 예언으로도 알려줬지만 소용없어요. 하나님의 뜻을 그 삶 속에 실현하지 못합니다. 심판으로도 알려주고 구원으로도 알려줬지만, 도무지 그 뜻을 역사 속에 이루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제 참다못한 하나님께서 스스로 인간들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임마누엘의 진짜 의미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미 임마누엘하고 계셨습니다. 우리와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순간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순간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순간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내 마음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내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내 곁에 이미 임마누엘하고 계신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오십니다. 임마누엘 하십니다. 말로만, 논리로만, 교리로만 이해하던 하나님이 아니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모습으로, 함께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얼싸안을 수 있는 하나님, 내 곁에 함께 계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어디로 오십니까? 내가 자신하고 있던, 하나님 없이도 나 혼자 잘 하고 있다고, 교만하게 살고 있던 내 삶의 중심부로,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이 직접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삶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단하다고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우쭐해하면서 자랑하던 삶,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밑바닥 인생에 불과했던 바로 그 인생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땅 위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하나님, 영광보다는 비난을 선택하신 하나님,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이시고 증명하신 하나님, 하나님 없다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 뭐하시는 거냐고 하나님을 비난하고, 그렇게 돌덩이처럼 굳어져 버린 이 못난 심장을 기어이 녹여내시는 하나님, 바로 그런 하나님의 발걸음이 지금 십자가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나에게로 한 발 한 발 걸어들어오시는 예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 깊은 고요함 속에서,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뚜벅뚜벅 나에게로 다가오시는 은혜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바로 그때 비로소, 우리는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오신 것이 주님의 영광이며, 나의 참 평화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 땅으로 내려오심으로 완성되고, 우리의 평화는 그런 하나님의 임마누엘을 내 삶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 오심의 신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고대하는 그때, ‘너희들 혼자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 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외치는 그때, ‘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너희들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만질 수 있는 존재로, 함께 눈물 흘리고 기뻐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 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인도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구원입니다.

3.

그래서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외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외쳐라. 너희들이 외치지 않으면, 돌들이라도 외칠 것이다. 그러니 외쳐라.” 뭐라고 외칩니까? 무엇을 외칩니까? “하나님이 여기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십니다. 나 혼자가 아닙니다. 외톨이가 아닙니다. 세상 속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손을 붙들고 함께 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외칩니까? 목소리로만 외칩니까? 아닙니다. 행동으로 삶으로 그렇게 외칩니다. 예수처럼, 이 땅에 직접 오신 예수처럼, 그렇게 삶으로 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어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이니까 그리스도인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 이 땅에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입니다. 이천년전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 속으로 짊어지고 들어가야 하는 이 땅의 그리스도가 우리입니다. 살을 맞대고, 함께 웃고 울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정의 평화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그리스도입니다.

내 곁에 있어, 만질 수 있는,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보잘것없는 사람들, 그러나 그 안에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하나님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때로는 부족하여서 잘못된 길로 어긋나기도 하지만, 우리는 함께 있기에 서로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 세상에 일어나는 온갖 불의와 부조리에 함께 분노하는 사람들, 함께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내 곁에 오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예수가 가시관 쓰신 거룩한 모습으로 그림 속에만, 십자가 위에만 계셔서는 안 됩니다. 하늘 보좌 버리고 일부터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곁에 계셨는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그리스도를 성경 속에 가두고, 사상 속에 가두고, 그림 속에, 십자가 속에, 교리 속에, 신학 속에, 기도 속에, 찬양 속에 가두어 놓기만 합니다. 그리고는 마냥 기다리기만 합니다.

아닙니다. 이제 그리스도는 우리를 통해 이 땅에 오셔야 됩니다. 그리스도는 더 이상 기다려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 저 먼 옛날부터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 그 형상을 현실로 발현시켜야 합니다. 내 안에 이미 들어와 계신 그분이 나를 통해서 세상을 향해 일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기다리지만 말고, 나를 통해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여줘야 합니다.

“내가 간다. 내가 네 안에 머무르면서 살겠다.” 스가랴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잠잠하지 말아라. 너희가 잠잠하면 돌들이라도 소리칠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외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그리스도 주님의 말인 줄로 알고 말해야 합니다. 지금 자기 자신의 말들을 돌아보세요. 그리스도의 말인가? 그리스도께서 하실 말씀인가? 아니면 부끄러운 인간의 말인가? 내가 하는 행동 하나, 그리스도 주님의 행동인 줄로 알고 행해야 합니다. 지금 내 행동들을 돌아보세요. 그리스도의 행동인가? 주님께서 과연 이렇게 행동하실까?

오늘 우리 모두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구원을 아름다운 삶으로 이 땅에 그리스도가 되어 살아냅시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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