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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이뤄주시는 복복을 이루는 방식(사무엘하 7:27-29)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3.02.05 06:30
▲ Luigi Ademollo, 「King David brings the Ark into Jerusalem」 (1816) ⓒWikimediaCommons
27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28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
29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들어가는 말

주현절 다섯째 주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으며 그분의 삶을 따라 살아감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전하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이 운영하시는 식당이나 개인 사업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보통 사무엘하 7장 29절의 말씀 중 마지막 부분인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라는 구절이 많이 적혀있습니다.

예전에 이렇게 식당이나 사업장에 붙어 있던 문구 중에 욥기 8장 7절의 말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문구가 붙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본문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욥의 친구 빌닷이 했던 이야기라는 점이 부각 되어서 이 본문은 잘 사용하지 않는 듯 합니다.

사무엘하에 나타난 본문도 욥기와 마찬가지로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드릴 것은 아닙니다. 또 반대로 이런 문구를 사업장에 걸어놔야 사업이 잘 된다는 그런 미신적인 이야기를 드릴 것도 아닙니다.

다윗의 이야기 속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받기로 했던 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 복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 갔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복을 이루어 가시는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다윗의 성전 봉헌

오늘 본문은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에 되찾은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블레셋에서 법궤를 되찾은 다윗은 이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다 웃사가 죽는 모습을 보고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 방치해 둡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오벧에돔의 집과 소유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셨음을 들을 다윗은 법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앞선 6장은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에 들여올 때에 자신의 신체가 드러날 정도로 기뻐 뛰었다고 말합니다.

법궤를 예루살렘에 옮겨온 다윗은 이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예언자 나단을 불러 이에 관해 상의하게 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밤중에 예언자 나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성전을 건축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성전은 다윗이 아닌 그의 후손이 건축하게 될 것이며, 다윗의 나라와 왕위는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들은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아마도 오늘 본문의 말씀과 앞선 성전 건축 계획에 관한 이야기는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했다는 표현은 올바른 표현은 아닌 듯 합니다.

본래 예루살렘에는 여부스족이 사용하던 성전이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곳에는 사제도 있었고 예언자도 있었습니다. 다윗 시대에 이미 성전이 있었다는 점은 사무엘하 12장 20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 솔로몬의 성전 건축 이야기를 살펴봐도 성전 신축이 아니라 개축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다윗의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가 심하게 앓게 되었고 이로 인해 다윗은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를 치셨고,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돌아옵니다. 이후에 밧세바는 다시 아들을 낳았고 그 아이가 솔로몬입니다.

사제나 예언자에 관해서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후 갑자기 등장한 예언자 나단이나 제사장 사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독이라는 이름이 여부스족의 이름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갑자기 등장해서 종교 지도자의 위치에 서있게 됩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는 본래 여부스족의 성전이 있었고 다윗은 이를 하나님의 전으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사무엘하 7장의 본래 이야기는 이 성전에 법궤를 옮겨놓은 후에 다윗이 그곳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공표하는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초기의 이야기로 보이는 다윗의 성전 봉헌 이야기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세웠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을 세워주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과 다윗 사이의 영원한 언약으로 남게 됩니다.

다윗언약이 이루어지기까지

그런데 하나님과 다윗의 이 언약이 성취되었는가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그 언약은 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바벨론 포로기 때에도 다윗의 혈통이 남아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포로 귀환 공동체가 왕정 체제를 수립하지 않았던 순간에 그 언약이 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까지도 언약이 이어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마카베오 혁명 이후 하스몬 왕조가 수립되었을 때 그 언약이 깨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시대에서 몇 천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다윗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나, 과거 하스몬 왕조가 수립될 때에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과 다윗의 언약을 기억하고 다윗 왕조를 수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점을 본다면, 그 언약이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예수님을 다윗의 혈통이라 받아들이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는 점을 본다면, 다윗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실제 다윗의 자손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그렇게 믿으면서 다윗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윗의 복, 하나님과의 언약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면, 그 언약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역사적으로는 그 언약이 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아합 이후 북왕국 이스라엘의 국력이 강했던 시절, 남왕국 유다는 북왕국 이스라엘에 편입될 수도 있었습니다. 예후 혁명이 일어났을 때, 남왕국 유다는 아합의 딸 아달랴가 통치하게 됩니다. 이때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지켜내지 않았다면 다윗 왕조는 생각보다 빨리 사라졌을 것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패망했을 때, 성경이 그토록 악하다고 말하는 므낫세가 아시리아에 철저하게 굴복하지 않았더라면, 남왕국 유다도 북왕국 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국가가 사라지진 않았을지라도 왕조는 바뀌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유대인들 신앙의 대전환이 일어났던 바벨론 포로기가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책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바벨론이 총독으로 세운 서기관 사반의 아들 그달리야와 그의 자손들이 남왕국 지역을 잘 다스리고 있었더라면, 포로 귀환 공동체가 다윗 왕조 정통성을 주장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잘못된 왕이라고 말하는 그런 왕으로 인해서, 성경이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왕으로 인해서 다윗 왕조의 이름은 계속 남을 수 있었고 유다 백성들은 다윗 왕조 정통성을 지켜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의 시대에 예수님에게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이루는 방식

올해 들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복에 관한 말씀을 전해드리고 있는 가운데, 결론은 언제나 이렇게 맺게 되는 듯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방식, 하나님께서 복을 이루시는 방식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선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안된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라는 것은 그저 허울 뿐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님들을 붙잡기 위해 말하는 허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의 삶이 암울해 보일 때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 나 자신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의 힘들고 어려운 모습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것이 결국 하나님의 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 쉽게 보이는 방식으로 이 땅에 섭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깨닫지 못할 방식으로 우리 삶에 복을 내리시고 우리가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된 삶이란 날마다 행복하고 즐거운 그런 삶은 아닌 듯 합니다. 다윗 왕조와 맺으신 언약을 보더라고 언제나 위태롭고 끊어질듯한 언약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 그 언약은 이루어져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된 삶은 때로는 굴곡이 있을지라도, 때로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어떠한 방식으로건 역경을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도록 이끄시는, 힘이 있는 삶입니다. 포기하고 쓰러지지 않는 힘과 희망이 있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그 복된 삶의 길을 걸어가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약속하셨던 바를 언제나 지키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복된 삶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귀한 복을 누리며 살아가시는 우리가 되길 바라며, 그 복을 세상 사람들에게도 삶으로 전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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