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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 지혜와 사랑으로 위의 것을 찾으라!(아 8:5-7 골 3:1-11 막 6:14-29)주현절 여섯째 주일/신학교육주일(2월12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3.02.10 15:03

1. 판소리 <수궁가>와 판소리 소설 <토끼전>

▲ 토끼전 등장인물

신묘년 토끼 이야기 여섯 번째는 판소리 <수궁가>로 유명한 판소리 소설 <토끼전>입니다. 판소리 열두 마당 중 현재까지 불리고 있는 다섯 개의 작품이 있는데,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적벽가>, <수궁가>입니다. <수궁가>는 ‘토별가’, ‘별주부 타령’, ‘토끼 타령’ 등의 명칭으로도 익히 알려진 국악으로 옛날부터 선조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를 판소리로 각색한 작품인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북해 용왕이 우연히 병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병을 낫게 해줄 약을 백방으로 찾았지만, 효험이 있는 약은 어느 곳에도 없고 용왕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한 도사가 나타나 용왕의 병에는 토끼의 간이 특효약임을 알려 줍니다. 용왕은 육지로 나가 토끼를 잡아 올 신하를 찾습니다. 그때 별주부(자라)가 앞으로 나서며 자기가 토끼를 잡아 올 것임을 아뢰자, 용왕은 크게 기뻐하며 그의 충성심을 칭찬합니다.

육지에 올라온 별주부는 토끼를 만나, 아름다운 용궁의 경치와 풍성한 먹거리를 자랑하기도 하고, 육지에서 살다가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고 협박도 하면서, 자기와 함께 용궁으로 가자고 꼬드깁니다. 결국, 토끼는 별주부의 꼬임에 넘어가 용궁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토끼는 용궁 문을 지나며 문을 지키는 병사에게 용궁의 사정을 물어봅니다. 평생 물속에서만 살아 토끼의 생김새를 몰랐던 문지기는 “용왕이 병에 걸렸으며, 토끼의 간을 먹어야 나을 수 있다.”라는 말을 전합니다. 이 말을 들은 토끼는 어떻게든 살아서 육지로 돌아갈 궁리를 합니다.

마침내 별주부와 함께 용왕 앞으로 불려 나간 토끼는 육지에 간을 놓고 왔다며 육지로 돌려 보내주면 자신의 간도 가져오고 소나무에 걸려 있는 다른 토끼의 간도 가지고 오겠다고 합니다. 별주부는 이 말을 믿지 않지만, 용왕은 토끼의 말을 믿고 성대한 잔치를 열어준 후, 육지로 다시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결국 토끼는 용궁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은 후, 육지로 돌아옵니다. 별주부보다 더 지혜로웠던 토끼는 꾀를 발휘해 용왕을 속이고, 살아서 용궁을 나서게 된 것입니다.

<별주부전>이라고도 불리는 이 이야기는 토끼와 자라를 의인화한 판소리 우화 소설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있는 ‘구토 설화’로부터 유래되어 판소리로 불리기 시작했고,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소설로 기록되었습니다. <토끼전>은 서민 의식을 바탕으로 해학과 풍자를 동화적인 이야기로 그려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권력층, 지배층에 저항하는 민중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사실 <토끼전>이 최초로 쓰인 17~18세기 조선 시대는 몇 가문이 정권을 잡아 권력을 유지했으나, 무능함과 부패함으로 나라가 망해가는 시기였습니다. 힘없는 농민, 약한 서민들을 착취하는 지배층과 뇌물로 관직을 얻고, 돈으로 양반 신분을 사고파는 상인들이 사회에 들끓었습니다. 이런 혼란한 사회 속에서 저항 의식을 표현할 방법을 찾던 서민들은 우화 소설, 판소리 등의 수단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토끼전>은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안겨 주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살펴볼까요?

<토끼전>에는 용왕, 자라, 토끼가 핵심 인물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용왕은 밤낮 안 가리고 잔치를 열다 병을 얻고, 병을 낫게 할 방법을 찾지 못해 토끼를 죽여 간을 얻으려는 한심하고 악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런 묘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민을 착취하는 지배층과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자라는 토끼의 간을 구하기 위해 육지로 나가 토끼를 데려오는 인물로, 우직한 성정을 지녔지만, 토끼의 꾀에 넘어갈 만큼 어리석은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지배 계층에 충성하는 신하의 모습을 자라를 통해서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토끼는 자라의 손에 이끌려 간 용궁에서 위기를 겪는 인물입니다. 서민들을 뜻합니다. 그러나 지혜를 발휘해 위기를 헤쳐나갑니다. 이야기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 권력자와 맞서는 민중을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토끼전>에 등장하는 배경도 살펴볼까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용왕과 용왕의 대신들이 머무는 바닷속과 토끼와 각종 짐승이 사는 산으로 나뉩니다. 바다라는 공간은 부패한 권력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서민을 착취하는 공간을 상징하며, 짐승들과 토끼가 사는 산은 그 당시 백성들의 삶의 공간을 나타냅니다. 이 시기에 백성들이 모여 살던 공간에는 환란과 핍박의 그림자가 드리우기도 했지만, 백성들은 해학과 풍자로 이러한 곤경을 헤쳐나가고자 했습니다. 이런 시대상을 산이라는 배경과 토끼라는 지혜로운 동물을 등장인물로 표현한 것입니다.

특히 토끼가 ‘간을 육지에 널고 왔다.’라며 번뜩이는 지혜를 발휘해 용궁에서 빠져 나올 때는 박수가 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토끼는 판소리와 소설 속에서 사회적 약자이고 힘없는 민중들을 대변합니다. 지배층에 대한 저항과 비판 의식, 그리고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입니다.

2. 세례 요한의 최후

오늘 세 본문 말씀은 <토끼전>에 나오는 용왕과 같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헤롯왕입니다. 복음서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 소식을 듣고 헤롯왕은 세례 요한이 부활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요한은 헤롯이 죽였는데, 이렇게 불의한 권력은 판소리에도, 성경에도, 그리고 오늘 이 땅에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용왕에 의해 토끼가 죽지 않았던 것처럼, 불의한 권력에 의해 진리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죽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토끼의 지혜가 용왕의 불의를 이기듯이, 불의한 권력은 이렇게 부활한 진리와 참 지혜에 의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사랑이 이긴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아가서 말씀에 의하면, 많은 물도 이 사랑의 불을 끄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이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막 6:14-16)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으로 그 이름이 드러납니다. 그러자 헤롯왕이 그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 부활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세례 요한은 헤롯이 죽였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요한의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막 6:17-20)

용궁의 용왕이 토끼의 간을 빼먹으려 하듯, 민중을 수탈한 헤롯은 요한을 죽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때가 왔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막 6:21-23)

그러자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에게 묻습니다.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막 6:24-29)

▲ 세례 요한의 죽음

요한은 이렇게 헤롯의 폭압 통치와 헤로디아와 그녀 딸의 간계로 죽임을 당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을 보는 듯합니다. 이렇게 불의한 권력은 참 진리를 억압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바통을 이어받아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 나라를 부르짖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부활시키시고 오늘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이제는 ‘위의 것’을 찾으라고 권면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3.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골 3:1-4)

그렇습니다. 불의한 권력과 싸워 비록 죽임을 당해도 결국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부활 승리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사람은 위의 것을 사모하고 죄악 된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바울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이러한 새 사람이 갖추어야 할 영적 덕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골 3:5-9a)

이 말씀은 비단 골로새 교회 교인들뿐만이 아니라, 헤롯과 헤로디아와 그녀의 딸, 그리고 용왕과 그의 충실한 신하 별주부에게 하는 말이자,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창조하셨으니 모든 피조물은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명령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오.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9b-11)

이렇게 만유이시자 만유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헤롯은 물론, 저 바다 용왕과 별주부까지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합니다. 아가서 말씀이 이러한 사랑의 본질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4.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리라!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5-7)

▲ 아가서, 사랑 노래

물론, 아가서의 이 노래는 사랑의 관계가 유지되기를 갈망하는 신부의 노래와 신랑의 화답송입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완성하는 아름다운 하모니입니다. 그러나 아가서는 신랑과 신부의 사랑 노래를 넘어,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 노래,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과 모든 피조물과의 사랑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위의 것’인 하나님의 사랑이 온 누리에 퍼져야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이 불의한 땅에 다시 희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 용왕과 같은 불의한 권력과 별주부같이 간교한 그의 앞잡이들이 민중을 수탈하고 억압하지만,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과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토끼전의 토끼와 같은 지혜와 아가서의 사랑, 그리고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우리는 반드시 위의 것을 찾았기 때문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이 신학교육주일인데, 이렇게 제대로 된 신앙, 신학 교육이 신학교에서 가르쳐지고, 또 목사후보생들이 교회 현장에 나와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말씀을 올바로, 또 제대로 증거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지혜와 사랑으로 위의 것을 찾고 새 세상을 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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