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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자체를 위한 신앙 행위에서 벗어나자이미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31-33)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3.02.12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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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들어가는 말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나타나진 않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복의 기본이 되는 말씀을 함께 나누고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간구를 들어주신다는 신앙의 밑바탕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몇년전에 오늘 본문으로 말씀을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마태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보다는 누가복음과 비교하고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던 상황을 살펴보면서, 실제로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전하셨을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당시 말씀을 듣고 있던 이들의 근심을 덜어주시기 위해 오늘의 말씀을 전하셨을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고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모든 염려를 내려놓으라는 뜻의 말씀을 전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복음의 경우 예수님께서 전하신 말씀의 핵심이 재산 축적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재물과 관련된 예수님의 말씀들을 오늘 본문과 함께 모아놨습니다. 마태복음 안에서도 그런 맥락이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청중 대부분이 재산을 축적하기는커녕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들었던 일반 대중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재산 축적이 핵심이라기보다 위로가 핵심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저희는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전하고자 하셨는가 보다는 마태복음이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떤 의미를 전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이 우리의 염려와 간구라는 의미 속에서 그 의미를 어떻게 확장시켜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염려하지 말라

우선 마태복음 안에서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부분, 25-34절만을 떼어서 봤을 때, 그 핵심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염려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씀이 됩니다. 25절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시작되어 오늘 본문인 31절에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또한 34절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니 오늘의 괴로움은 오늘로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내일이 염려한다는 말씀은 내일의 걱정은 내일 하라는 말씀일 수도 있지만, 내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걱정을 맡아주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하루는 우리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영과 육신을 위해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성경에 목숨으로 번역된 단어의 본래 뜻은 영혼입니다. 영과 육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이 둘의 깊은 의미까지 말할 수 있긴 하겠지만, 온전한 사람을 구성하는 두 가지로 간단히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을 포함해서 자신의 생명을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은 본질적인 영육의 문제보다는 외연적인 부분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영을 살찌우기 위해, 육체의 건강을 위해 살기보다는 무엇을 먹어야 할지, 무엇을 입어야 할지에 치우져진 걱정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염려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보십니다. 우리의 생명이 소중한 것이라면, 무엇을 먹을지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를 걱정하기보다 참된 생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는 자신의 몸을 치장하기 위해 염려하지 않습니다. 어떤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할지 염려하지 않고 자라갑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염려하는 문제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본질적인 영육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영육의 강건함은 자연을 돌보시듯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가운데 채워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세상적인 염려를 떠나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참된 생명을 얻은 사람은 이제 걱정과 염려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아신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부분만 떼어놓고 보았을 때, 예수님의 말씀은 염려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위로의 말씀이 됩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6장의 흐름을 보면서 생각한다면, 그 의미는 조금 더 넓게 확장됩니다.

먼저 19-24절은 재물을 향한 경계의 말씀입니다. 땅에 쌓은 보물에 관한 말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맥락에서 보자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먹거리와 의복을 향한 우리의 사치를 경고하는 말씀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본래 중요한 것은 생명 그 자체이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연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무리 값비싸고 뛰어난 음식을 먹는다 하더라도, 아무리 좋은 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생명 자체가 연약하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 없다는 말씀이 됩니다.

재물에 관한 말씀과 함께 마태복음 6장이 강조하고 있는 점은 ‘은밀하게’입니다. 마태복음 6장 1-18절에는 은밀하게 행해야 할 항목 세 가지가 나타납니다. 구제, 기도, 금식을 할 때는 사람에게 보이도록 하지 말고 은밀히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유명한 말씀도 3절에 나타납니다.

어쩌면 1-18절의 말씀과 19-34절의 말씀은 서로 다른 이야기로 보입니다. 은밀한 신앙생활과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개별적인 이야기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는 앞선 1-18절의 말씀과 연결되는 단어가 나타납니다. 바로 ‘이방인’입니다.

32절에는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나타납니다. 누가복음은 이를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는 표현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고, 이방인들의 삶은 잘못된 삶이라고 규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방인이라는 표현은 앞선 7절에도 나타납니다. 여기에서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방인’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7절에 나타난 이방인과 1-18절 말씀의 의미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은밀하게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라는 말씀은 반대로 말해서 이러한 행위를 드러내며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반대편에 이방인이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그들은 이 세 가지 항목, 특히 기도를 드러내며 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인들도 자신들의 신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자신들의 신을 향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때로 예수님께서도 지속적인 기도, 끊이지 않는 간구를 강조하시긴 했습니다만, 로마인들이 강조하던 기도도 끊임없는 기도였습니다.

이런 끊임없는 기도는 신 앞에서 공적이 됩니다. 이는 지금 많은 교회에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도 아침에 기도하고 저녁에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루에 몇 번 횟수를 정하고 기도하라고 말하는 분이 계실진 모르겠지만, 끊임없는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로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끊임없이 두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점을 비판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쌓을 공적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를 여러번 오래 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더 잘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 오늘 본문 32절입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이미 다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의 대화

마태복음 6장은 두 가지로 나뉘어진 개별 본문이 그저 한 장 안에 엮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공적을 쌓기 위해, 신앙의 공로를 쌓기 위해 이를 드러내는 노력을 하기보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며 마음의 평안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어쩌면 신앙생활이라는 압박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져가는 사람들을 향한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이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압박, 지금 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내 기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압박이 신앙을 키워주기보다 오히려 떨어뜨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이미 다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끊임없이 두드리려는 행위가 아니라 그저 아버지와의 대화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때가 있습니다. 내 삶이 어렵고 힘들 때면, 하나님께서 내 삶을 돌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할 때면 하나님과 멀어져갑니다. 그리고 이럴 때는 기도도 못 합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신앙이 굳게 자리잡고 있을 때는 기도할 수 있지만, 삶으로 인해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기도를 할 수도 없습니다. 기도하는 일조차도 힘겹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안 들어주실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는 실제 부모와 자녀의 대화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서로 상대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부모와 자녀의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 한번 대화가 단절되고나면 다시 대화의 상황을 만들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간구할지 다 알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그렇기에 어떤 신앙행위로써의 기도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깝게 이어가기 위한 대화를 나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될 때, 우리가 간구하려 했던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모두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생명 뿐만 아니라 우리가 헛되게 고민하고 있던 먹거리와 의복의 문제까지도 우리에게 더해 주신다 말씀하십니다.

신앙이라는 것을 키우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시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날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한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부모 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간구하는 바를 이미 아시기에 모두 들어 응답해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귀한 복과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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