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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히 투명하게“주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 됩니다”(이사야 30:8-18)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2.13 00:38
▲ 히밀라야 산맥 랑탕 계곡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지만, 행하지 않으면 바로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 말씀입니다. 듣고 묵상하고 행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 믿음 가운데 날마다 바로 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또는 우리가 경험한 것 보다 더 추악하고 폭력적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8-9절 말씀입니다. “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선지자 이사야가 살던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금 모습을 서판에 기록을 하라고 합니다. 기록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패역하고, 거짓말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어서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가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배경이 있습니다. 1-3절의 말씀인데요.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2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3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이스라엘의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또 하나님께 길을 묻지 않고 보여지는 군대와 힘 그리고 바로의 세력을 의지했기 때문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사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11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우리 역시도 우리의 삶을 바로잡을 수 있는 충고는 듣고 싶지 않을지 모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이제 그런 말은 그만 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들려줘!”라고 말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12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을 의지하니 13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 14 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

이사야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버린 이스라엘은 무너질 것이라 말합니다. 마치 배가 불룩 튀어나온 담벼락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듯, 토기장이의 항아리가 깨져 산산조각 나듯이 무너지고 깨질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쉽게 눈에 보여 지는 것을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어려움을 겪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고 추구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힘은 없고, 파멸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앉아서 당하라는 말입니까? 불안에 떨고 있는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사야는 선포합니다.

“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새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15 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회개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이며,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우리는 마음이 늘 조급합니다. 그래서 이 조급함이 일을 그르치게 합니다. 구원의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만을 위한 욕망과 목적으로 걸어온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잠히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본문에 사데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데 교회는 겉모습은 화려했으나, 내면의 신앙은 죽은 교회였습니다. 교통의 요충지이며, 금광으로 유명한 지역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아시아 다른 교회들보다 부유한 교회였습니다.

아쉬울 것 없는 사데교회는 예수를 믿고 예배를 드렸지만, 삶의 모습은 형편없었습니다. 화려한 옷과 명품가방, 자동차와 값비싼 음식, 세상의 유흥거리가 이들의 기쁨이었고 소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질책합니다.

요한계시록 3:1-2의 말씀입니다.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고 성경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회개라는 것은 단순히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고백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삶의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무엇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가, 어디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고 있는가를 묻고 돌이키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의 말을 들었음에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그래서 이사야는 결국 우리는 망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17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는 절망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혼란의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는 자, 기다리는 자는 결국 은혜의 때가 오고 만다고 말합니다. 혼란의 시대에 우리가 깨어 말씀을 간직하고 있으면 어둠은 지나가고 결국 해가 솟아오를 것이라고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로 하여금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이것을 의지해라. 저것을 의지해라.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저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지금 너 같이 사는 건 불행한 삶이다. 그렇게 살아서 어떻게 할래라고 비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련 속에서 우리의 마음과 살을 지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여행객이 있었습니다. 네팔의 랑탕 지역에 오를 계획을 세웠고 1월에 이 지역을 오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침 이 지역에서 등반 전문가인 네팔인 친구를 만나 트레킹 일정을 설명했습니다. 해발 3800미터를 올랐다 내리는 일주일간의 코스였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여행객은 지난번에는 셀파족 가이드와 함게 많은 짐을 지고 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홀가분하게 배낭도 최소한으로 줄여 혼자 떠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미 몇 번의 트레킹 경험이 있었기에 자신감도 넘쳐 흘렀습니다.

슬리핑백도 없이 단출하게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친구는 약간 염려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이 트레킹은 이 여행객에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트레킹이 되었다고 합니다. 

산길은 상상한 것보다 훨씬 험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안내자가 없으니 수시로 길을 잘 못 들었고, 일주일 코스가 열흘 코스로 바뀌었으며, 산악 주민들도 그저 뒷동산에 놀러온 듯한 차림에 보고 놀라서 쳐다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출발할 때의 세련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게 열흘 뒤 카트만두로 돌아왔을 때는 장발의 유목민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여행객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그통스럽기만 했는가? 그 후 스무 번 넘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여정이 랑탕 트레킹이다. 입술은 부르트고 몸은 녹초가 되어 돌아왔지만, 정신은 어느 때 보다 싱그럽고 눈빛은 맑게 되었다.”

돌아와서 네팔 친구를 다시 만나 이렇게 질문합니다. “왜 나한테 말해 주지 않았지? 랑탕 지역의 환경을 잘 알면서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 왜 조언해 주지 않았어?” 친구가 말합니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너에게 더 좋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트레킹을 할 테니까 말야. 도중에서 필요한 장비와 도구들을 구할 수 있으리란 걸 난 알고 있었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으리란 것도.”

이 글 끝에 여행객은 이렇게 적습니다. “만약 그 친구가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면 랑탕 트레킹은 내 혼에 그토록 깊이 각인되지 않았을 것이다.”

-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또한 기어코 우리 스스로가 깨닫고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잘 못 된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회복하기도 한 것이죠.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환난 속에서 세상을 쫓지 않고 인내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라틴어로 ‘코람데오’(Coram Deo)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인간관계처럼 눈을 피해 ‘적당히’ 죄를 범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궤뚫어 보는 전지전능한 하나님 앞에서 투명하게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고난과 환란, 세상의 유혹 속에서 비뚤어지지 않고 주님을 기다리면 반드시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3-4에서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은혜의 때는 오고야 맙니다. 인내하며 기다림으로 은혜의 때를 경험하고 또한 미리 주어질 것을 소망하며 매일의 삶이 은혜로 충만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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