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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을 위해‘노다 마사아키’의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를 읽으며 세월호와 10.29참사를 생각해 본다
정리연 | 승인 2023.02.13 14:43
▲ 지난 2월4일 10.29참사 발생 100일 앞두고 녹사평역을 출발한 유가족과 종교인,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을 진행했다. 행진 중 오열하는 유가족의 모습이다. ⓒ정리연

여느 날처럼 시작한 하루였다. 곳곳에 피기 시작한 벚꽃이 환했고 집 안을 가득 채우는 따스한 봄볕이 아까워서 밖으로 나가야지 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찬란하던 봄날이 잔인한 날로 바뀐 건 순식간이었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배가 가라앉는 것을 생중계로 보았다. 무수한 생명이 바다 밑으로 사라지는 걸 목도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했을 것이다. ‘구조되겠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라고 말이다.

그런데 웬걸. 적극적으로 구조해도 급박한데 리더십을 발휘해서 온 힘을 쏟아야 할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고 구조 행동은 느리기만 했다. 참사 이후 대통령의 태도와 무능력에 실망한 우리는 점점 드러난 배의 불법적이고 비정상적인 운항, 그런 걸 알고서도 눈 감아 온 정부의 행정, 경제적인 이익만을 최고라고 여긴 그들의 만행에 아연실색했다.

‘대체, 국가는 무엇인가’, ‘왜 존재하는가’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또다시 대참사를 겪었다. 무수한 젊은 생명이 압사당해 세상을 떠났다. 국가는, 대통령은 8년 전의 모습을 되풀이했다. 행사 전 미리 준비했다면, 신고를 무시하지 않고 귀 기울였다면 아주 경미한 사고로 끝났을 것이다. 아니, 사고 없이 즐거운 축제로 마무리되었을지도 모른다.

일으킬 기운조차 없지만, 멈출 수 없는 남은 가족의 걸음

2023년 2월 4일 ‘이태원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두고 추모 행진이 있었다. 모임 시간은 10시 30분이었지만, 훨씬 전부터 유가족들과 많은 종교인, 시민들이 녹사평역으로 모였다. 우리는 밝은 웃음 대신 합장한 두 손과 눈맞춤으로 서로 인사를 건넸다. 그것만으로도 연대와 애통하는 마음을 서로 전하기에 충분했다. 159명의 영정을 안고 녹사평역을 출발하는 이들의 무거운 침묵과 발걸음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전날까지 매섭던 겨울바람도 그날만큼은 사그라졌다. 마치, 추모에 동참한다는 듯이.

“참사의 공식 책임자 행정안전부 장관을 파면하라”,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해 독립적 조사기구를 설치하라” 구호를 외치며,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걷고 또 걸었다.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 도착했을 때는 대통령 집무실을 향해 “윤석열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라”고 외쳤다. 유가족들이 그동안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외쳐왔을 문장들이 허공에서 사라지지 않고 완전하게 이루어질 날은 언제일까.

삼각지역, 서울역을 지나면서 시민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고 그만큼 더 든든하고 단단해지는 마음이었다. 서울시청 앞에 다다랐을 때, 주최 측은 기습적으로 시청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원래는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해서 분향소를 설치하려고 했었는데 서울시가 이를 거부했고 경찰은 광화문광장에 차벽을 설치했기 때문이었다.

서울도서관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동안 경찰들이 몰려왔고 시민들은 몸으로 막았다. 분향소 설치와 집회는 불법이라는 경찰서장의 경고 방송이 계속됐지만, 영정을 올려 둘 분향대를 만드는 뚝딱뚝딱 못질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 있었어야 할, 경찰들의 침입 시도가 계속 있었으나 온몸으로 막아서는 이들을 향해 대담하게 뭔가 시도하지는 못했다. 시민의 힘, 민중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 건지 그들도 알았으리라.

드디어, 희생자들의 영정이 불법적으로나마(?) 온전하게 자리를 잡았다. 하나하나 모두 귀한 생명을 추모하는 마음들이 이어졌다. 서울시의 강제 철거에 대비해서 유가족들은 목에 둘렀던 빨간 목도리를 모두 풀어서 하나로 엮었다.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손에 감은 채 분향소 앞에 앉았다. 그 뒤로는 ‘미안해요’ ‘함께 우는 것 말고 해줄 게 없네요’, ‘반드시 규명할게요’라는 피켓을 든 시민들이 함께 했다.

생존자,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자식을 잃은 그 마음이 어떨지, 얼마나 지옥 같을지, 자식이 있으면서도 전혀 상상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다. 그들도 여느 날처럼 집을 나서는 아이를 웃으며 배웅했을 거다.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의심하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대형 참사가 일어난 현장에 내 아이가 있다면. 생사를 알 수 없다면.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는다면? 친구들과 즐거운 여행길에 설렌 발걸음으로 집을 나선 아이가 탄 배가 침몰하는 걸 모니터로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또 어떤가. 혹시라도 하는 마음으로 한달음에 현장을 찾았는데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체조차 찾을 수 없다면. 그 모든 게 눈앞에서 이뤄지고 있다면 말이다.

2022년 12월 23일 416가족과 함께하는 성탄예배 중 “저도 아이를 잃었지만, 당신의 마음을 전부 이해한다고 하지는 못하겠습니다”(박은희 님의 ‘4월의 엄마가 10월의 엄마에게’)라는 말에서 진심어린 애도와 슬픔을 느꼈는데 그건 같은 사건을 겪었으니 ‘다 이해해. 네가 어떤 마음일지 알아’라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위로였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당사자가 아닌, 곁에서 지켜보는 우리가 과연 남겨진 이들에게 어떤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들의 울부짖음과 눈물에 함께 하면서 진정한 추모를 할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속한 공동체에서 다가오는 세월호 9주기와 이태원 참사에 함께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로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슬픔의 치유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노다 마사아키의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펜타그램, 2015)이다.

개인의 정신병을 사회적 맥락에서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1985년 8월 12일 520명의 목숨을 앗아간 JAL 추락사고와 수학여행 중인 일본인 학생 수십명이 희생당한 상하이 열차 사고 등 수많은 대형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과 극복 과정을 기록했다. 남편을, 아내를 잃은 배우자, 자식을 상실한 부모, 형제와 부모를 잃어버린 자녀, 가족을 모두 빼앗긴 노년이 겪는 절절한 슬픔, 그 슬픔을 넘어서려는 살아남은 자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렇다고 해서 깊은 슬픔의 지평선까지 내려가 절망과 고통의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그걸 극복해야 한다는 식의 강요나 재촉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길을 걸어갔던, 걸어가고 있는 이들이 당신 곁에 함께 있다는 다독임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 그 후로도 연이어 일어나는 대형 사고나 대형 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계속해서 내 책을 읽었다. 그분들은 이 책에서 다른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체험했는가 하는 것을 읽으면서, 뒤를 따라 죽고 싶을 정도의 슬픔을 겪은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만의 것이었던 슬픔을 아주 조금은 대상화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14쪽)

일상에서 비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현대 사회는 위험한 사회이다. 특히 대형 사고는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사회적 산물이다. 아무도 이것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사회적 준비가 절실하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과제이자 심리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대형 참사 유족들의 슬픔의 성격과 고통의 크기, 그들이 겪어야 할 애도의 과정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이 책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생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소중한 경험과 조언이 담겨 있다.

“슬픔이란 함께 체험하는 것이지 지식으로 아는 대상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모순된 존재지만 어쨌든 유족에게 말을 걸어 보려 한다. 유족도 역시 일상 세계와 슬픔 사이를 왕복해야 하는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유족의 집회는 일상 세계에서 진행되는데,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죽은 이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시간이 정지된 비일상이다. 나는 일상 세계에서 축적된 슬픔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슬픔이라는 비일상 속에 있는 유족을 향해 얘기하다가 어느 지점에선가 슬픔에 민감한 나의 숨겨진 성격을 들킬지도 모른다.”(23쪽)

“대형 참사로 찢어진 유족의 마음은 이 사회 시스템에 의해 한 번 더 상처를 받지만, 그럼에도 유족들이 ‘이승’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는 것은 결국 사고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통해서라는 것이다.”(25쪽)

이 책의 전반부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슬픔에 잠긴 유족의 심리 상태 분석과 치유 과정을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유족들은 왜 시신 수습에 안간힘을 쓰는 걸까? 잘못된 보상의 과정은 어떤 고통을 야기하는가? '유족의 시간'과 '관계자의 시간'은 어떻게 다르게 흘러가는가? 급성 슬픔은 어떤 정신적, 육체적 증상을 유발하는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들의 답을 찾는 과정을 통해 충격, 부정, 분노, 우울, 용서, 수용, 재가동 등 슬픔의 시간학을 통해 마음의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실타래 같은 방법을 제시한다.

“기업은 담당자에게 피해자에 대해 정신적 지원을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담당자가 유족과 공감대를 형성해서 유족이 정신적으로 재출발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회사는 배상 교섭을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 짓고자 하기 때문이다.”(56쪽)

“유족이 가족의 시신을 직접 대하는 것은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받아들여 이후 서서히 현실감을 되찾아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돌연한 죽임이 초래하는 ‘죽음의 독침’으로부터 유족이 조금이라도 빨리 치유되기 위해서는 직접 가족의 시신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66쪽)

저자는 희생자가 죽어 가는 시간이 지나치게 짧았기 때문에 유족은 참사 이후 다시 죽음의 과정을 천천히 밟아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시신을 확인하는 과정은 억울하게 돌연사한 사람에게 죽음으로 천천히 다가갈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작업이자, 유족에게는 ‘죽은 사람을 죽이는’ 상(喪)의 작업이며 슬픔의 치유 과정인 것이다.

“합동 화장은 서둘러 진행됐다. 그것은 죽은 사람과 유족의 시간이 아니라, 일상의 업무 속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진행된 것이다.”(82쪽)

사회가 유가족의 슬픔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

후반부에서는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 사회 환경 개선과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한다. 죽음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 유족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기업 주도의 애도 매체에 대한 비판, 일본 유족의 성장 역사,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정부 주도의 합동 위령제 문제 등을 통해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일본 사회와 문화를 비판한다.

“사고로 인해 인생이 바뀌어 버린” 유가족들은 “가해자의 삶도 바뀌기를” 바란다. 고인의 죽음을 부여하기 위해, 함께 생각하고 변해가기를 제안한다. 사고 이후에서 여전히 한발도 나아가기 힘든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지, 뭘 했는지, 이제 국가가 답을 해달라”는 요구 역시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사고나 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은 쇼크, 분노, 긴 슬픔과 우울 상태의 시기를 거쳐, 드디어 죽은 사람이 남기고 간 생각, 고인의 유지를 깊이 듣는 때가 온다. 그리고 고인의 유지를 사회화하기 위해 슬픔을 가슴에 안고 앞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사고는 여러 이유가 겹겹이 겹쳐서 발생한다. 비참한 사고였지만 그 사고를 계기로 사회 전체의 자각과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희생자의 죽음은 헛되지 않게 된다. 저자는 대형 참사 유족들의 슬픔은 개인의 심리적 처방으로는 치유될 수 없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간 사건 자체의 사회적 의미가 발견돼야 하고 피해자의 사망 이유를 사회적 의미로 확대해 헛되지 않은 죽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사회적 애도의 과정에서 깊은 슬픔에 빠진 유족들이 치유되고 “슬픔을 가슴에 안고 앞을 향해 걷기 시작해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참담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참사를 당한 유가족들이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지만, 대통령은 모른 체 했고, 참사의 원인과 책임자에 대해 아무것도 밝히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는, 사회는 ‘이제 그만하라’고, ‘자식 팔아먹는 부모’라고 막말을 했다.

슬픔, 과거를 통해 우리가 배우고 나눠야 할 감정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사고로 억울하게 숨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슬퍼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광장에서, 사고가 발생한 지 반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이 정도로 큰 제단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시민 사회에는 일본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건강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시민들의 민주적 연대와 유족들의 슬픔을 충분히 발현시키는 사회만이 미래 사회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한국어판 서문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중에서)

1992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공교롭게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날 일본에서 재발간 되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한 달 앞둔 2015년 3월 16일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시대적 요구이지 싶다. 슬픔의 사회적 의미를 다루면서 개인의 트라우마와 내면의 순수 심리적 차원이 아닌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슬픔은 개인을 뛰어넘는 사회적 슬픔이므로 슬픔의 극복도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찬 바람, 거친 땅이어도 자박자박 함께 걷기를

세월호 참사가 9주년을 향해 가고 이태원 참사는 100일이 지났다. 죽은 사람과 유가족의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 다를 것이다. 9년이든 100일이든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는 지독히도 길고 참담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를 뒤로하고 일상을 회복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너무 빠른 시간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유가족들이 사건 당일에서 멈춘 채 고립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길에 함께 하겠다는 마음 한 조각을 모아본다. 이 마음이 유가족에게 닿아 인간에 대한 ‘신뢰’로 ‘이승’에서 살아갈 힘을 아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2014년 4월 16일을 통과해 ‘2022년 10월 29일’로부터 우리가 배우는 것은 슬픔 자체이다. 그 배움으로 슬픔 속에 있는 유가족들을 위로해줄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증언대로, 슬픔은 개별적인 것이지만 집합적인 슬픔으로 바꿀 수 있다면, 우리가 그 슬픔에 공감한다면 말이다.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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