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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중요한 것은 알지도 못하고서(사무엘하 18:19-33)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02.14 01:29
▲ Corrado Giaquinto, 「Death of Absalom」 (1762) ⓒWikipedia

1.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반역을 일으켜서 스스로 왕위에 오릅니다. 다윗은 아들을 피해 예루살렘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갑니다. 압살롬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 왕위를 차지합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권력 쟁탈전이 시작됩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셋째 아들입니다. 이복 형인 암논인 자기 누이인 다말을 욕보이자 2년 동안이나 칼을 갈며 치밀하게 복수를 준비해서 결국 암논을 죽이고 맙니다. 이 일로 다윗과 사이가 멀어져 그술 지방으로 도망갑니다.

그술은 자기 외가집이 있는 곳입니다. 어머니가 바로 그술 왕의 딸입니다. 그술에 숨어 살다가 3년 만에 요압 장군의 중재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다윗과의 사이가 완전히 화해되지는 않아서, 예루살렘에 들어와서도 이년 넘게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합니다.

압살롬은 아마도 아버지 다윗과의 관계가 악화되어가면서 자기가 왕위에 오르는 길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력으로라도 그 자리를 차지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 다윗이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골리앗과의 흥미진진한 싸움 이야기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무엘이 다른 형들을 제치고 막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가 아니고 세상적인 능력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훌륭한 사람을 말하는 성서의 표현이 바로 준수한 겉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꽃미남 같이 얼마나 얼굴이 잘생겼는지가 아니라, 세상적인 기준으로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성서는 준수한 외모와 큰 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형들을 말할 때도 그렇고, 사울 왕도 그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을 ‘다른 사람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을 만큼 키가 컸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무엘하 14장을 보면 압살롬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세상의 평가가 나와 있습니다. 압살롬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는 미남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머리숱이 많고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아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압살롬이, 전혀 소유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의 중심입니다.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는 일이 그에게는 빠져 있었습니다. 성서 어디를 보아도 그가 작은 일이건 큰일이건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세상적인 능력을 키워가고 세상의 평가를 얻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아는 힘을 키우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평가를 얻느냐 하는 것입니다. 압살롬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나라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은 세상적인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혜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압살롬은 자기 능력의 뛰어남만을 믿고 이제 왕이 되어보겠다고 반역을 일으킨 것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하는 오늘의 첫 번째 주인공입니다.

2.

오늘 읽은 말씀은 압살롬의 결국 반역에 실패하고 죽임을 당하는 장면입니다. 압살롬은 자기가 자랑하던 풍성한 머리숱이 나뭇가지에 걸려 대롱대롱 달리게 됩니다. 그것을 보고 요압 장군의 부하들이 장군에게 보고를 합니다. ‘저기 압살롬이 매달려 있습니다.’ ‘어서 죽여 없애지 않고 그냥 왔느냐? 압살롬을 죽이고 왔으면 내가 큰 상을 내렸을 텐데.’

그러자 그 부하가 말합니다. ‘아이고, 장군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다윗 왕이 군대를 내보내면서 자기를 반역한 놈이지만, 압살롬을 죽이지 말고 너그럽게 대해달라고 직접 온 군대에게 말씀하셨는데, 제가 무슨 화를 당하려고 왕의 아들을 죽입니까? 저는 못합니다.’ 요압 장군은 직접 압살롬이 매달린 곳에 찾아가 투창 세 자루를 던져서 압살롬의 심장을 꿰뚫어버립니다. 압살롬이 죽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다 도망가 버립니다.

이제 전쟁이 끝났습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 두 번째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아히마아스입니다. 그는 특별히 달리기를 잘했던가 봅니다. 자기가 전령이 되어서 전쟁의 승리를 전하고 싶다고 요압 장군에게 간청합니다. 하지만 요압은 그를 만류하고 다른 전령을 보냅니다. 요압은 다윗 왕이 지금 가장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아들 압살롬이 비록 반역은 했어도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 아들이 죽어버렸으니 그 소식을 전해봐야 좋은 상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히마아스는 고집을 부립니다.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으니 꼭 달려가서 보고하고 싶습니다.’ 계속 요압에게 조릅니다. 그래서 요압은 할 수 없이 아히마아스를 보냅니다. 아히마아스는 과연 달리기를 잘해서 자기보다 먼저 떠난 에티오피아 사람 전령을 앞질러서 다윗 왕에게 도착합니다.

다윗 왕에게 보고하는 아히마아스의 말을 보면, 그의 속셈이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아히마아스는 분명히 압살롬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정작 알고 싶어 하는 압살롬의 소식은 짐짓 모른 체 하면서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만 보고합니다. 다윗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압살롬의 죽음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승전보를 전하는 전령이 되어 상급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히마아스가 상급을 받았는지, 아니면 상심한 다윗이 벌을 내렸는지 그 뒷이야기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히마아스의 태도 속에서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종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이 정작 원하는 소식은 빼놓고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식만을 전하기 위해 달음질쳐 달리는 아히마아스, 우리의 두 번째 주인공입니다.

3.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라는 영국의 소설가가 있습니다. 《타임머신》, 《투명인간》 같은 과학소설 100여 편을 썼습니다. 오늘날 SF소설의 창시자입니다. 그가 지은 짧은 단편 소설 중에 「무덤」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인도에 한 왕이 아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더없이 행복한 삶을 누렸지만, 왕비는 그만 1년 만에 병으로 죽고 맙니다. 왕은 슬픔을 견딜 수 없어서 왕비의 무덤을 크게 짓고는 매일 그 무덤에 가서 왕비를 생각합니다.

어느 날 왕비의 무덤에 찾아갔는데, 그 무덤이 너무나 초라합니다. 그래서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이 쪽에 내 모습을 한 동상을 커다랗게 만들어서 왕비와 함께 있게 해라.’ 다음에 또 아직도 허전한 것 같아서 다른 쪽에 커다란 호랑이 상을 세우게 합니다. 한 해, 또 한 해 호화로운 성도 짓고 웅장한 성곽도 짓습니다.

몇 해가 지나자 아주 근사한 곳이 되었습니다. 웅장한 동상들이 죽 늘어서 있고, 으리으리한 성들과 웅장한 성곽이 들어선 멋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 위에 올라가서 바라보니 한가운데 초라한 무덤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왕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저기 가운데에 보기 흉한 무덤이 있구나. 이 좋은 도시에 무덤에 웬 말이냐. 치워버려라.’

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정작 다른 것인데, 우리는 그 일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내 생각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 일에 온 삶을 집중합니다. 아히마아스처럼 달음질을 칩니다. 충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즐거워하시는 일은 정작 다른 것인데,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보고 칭찬하는 아름다운 외모와 풍성한 머릿결을 자랑합니다. 그리고는 그것들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서도 우쭐댑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중심에 놓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럴듯한 동상을 세우는 일이며, 웅장한 성곽을 세우는 일이며, 으리으리한 성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한 가운데 왕비의 무덤을 흉물스럽다고 철거합니다. 결국 우리가 만든 아름다운 도시는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 없는 도시가 되고 맙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음질칩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우리의 삶을 내던집니까? 그곳에 참된 소망이 있고 참된 진리가 있습니까?

베드로후서 3장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날이 도적같이 오는데, 그날에 모든 일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 앞에서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날에 불타 없어져 버릴 것들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하늘도 불타 없어지고 당도 불타 녹아버릴 텐데,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붙들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울 사도가 수많은 편지를 써서 가르쳐주려고 했던 것이 바로 그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 가르침을 잘 깨달아서, 불의한 유혹에 빠지지 말고 확신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중요한 것은 알지도 못하면서 헛된 달음질을 달려가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을 깨닫고, 그것만을 가슴에 품고 느리고 더디더라도 꿋꿋하게 그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발걸음이 그런 발걸음이 되길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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