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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역사를 이끌어가는 믿음(출애굽기 6,2-9; 마가복음 6,1-6)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3.02.16 00:52
▲ Levantine Asiatics making bricks (Illustration from N. D. G. Davies, Paintings from the Tomb of Rekh-Mi-Rēˁ [New York: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35], pl. 17)

우리는 역사에 개입하시고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파란을 겪을 때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냐며 그 고백에 바탕해 하나님께 원망 섞인 질문을 던지고 탄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개입은 사람과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한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하나님과 맞서며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왕정을 세울 때도 그랬고,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에덴 밖으로 나오게 될 때도 그랬습니다.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이스라엘을 제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토록 애를 쓰셨음에도 이스라엘은 그 길을 끝까지 갔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직접 이 땅에 오셨을 때도 사람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일하시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리시는 세상의 모습을 거북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 보다 권력과 부의 달콤함이 더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사탄이 예수를 시험할 때 사용했던 것들이 바로 권력과 부였던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한데 예수를 섬긴다는 목회자들조차 권력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을 우리는 우리 역사 속에서 너무 자주 봐왔고 지금도 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외경하지 않고 결국 사탄에 굴복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에 대한 사랑의 끈을 결코 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와 평등의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 이 땅에 들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이스라엘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위해 해방을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수차례의 설득 끝에 하나님은 모세를 이집트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모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멘 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문제는 모세가 바로를 만날 때부터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라는 모세의 말에 바로는 야훼가 누구냐고 조롱하며 이스라엘의 노동 강도를 한층 강화시켰습니다. 모세의 말을 듣고 해방을 기대하며 마음 설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떠했을까요?

기대가 어그러진 현실 앞에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실망했습니다. 어찌 안 그렇겠습니까? 모세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실망이 오히려 더 컸습니다. 하나님께 그는 항변합니다. 안가겠다고 했던 그를 억지로 가게 만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을 모세는 따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그에게 또다시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처음보다 훨씬 강력하고 한층 구체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으나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자신을 다 알려주지 않았는데, 이스라엘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보여주신 셈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과 그만큼 가깝고 이스라엘을 소중하게 여기고 계심을 알려주십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자기를 다 보여주시는 하나님에게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은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조상들에게 약속했던 땅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했던 오랜 약속을 지키기 위함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말한 것을 지키시는 분임을 이렇게 보여주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에게 그의 능력을 행사하고 그들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속량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민족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을 그의 백성으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종살이 하고 신음하며 미래란 전혀 없는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은 말 그대로 복음이 아닐런지요? 그러나 한번의 실패로 인한 실망과 강화된 노동으로 닫혀진 이스라엘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바로와의 대결로 노동 조건이 더 악화되고 더 고달픈 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그의 능력 보다도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이라는 말이 더 크게 들렸을 지도 모릅니다. 이에서 비롯될 현실이 어떤 것일지 쉽게 상상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과 거리를 둔 이스라엘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모세의 개입으로 궁지에 몰린 이스라엘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있을 수 있는 이스라엘의 반응이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하나님의 해방계획을 중단시킬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의 행동이 시작됩니다. 이처럼 목표를 향한 하나님의 행진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좌초될 수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이후에도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기도 하고 거부되기도 했지만 변함없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예수에게서 자기를 나타내신 하나님은 그 예수를 통해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예수도 그의 고향에서 예전 하나님과 모세가 겪었던 일을 겪습니다. 예수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향 사람들 때문에 고향에서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셨습니다. 이번에는 고향 사람들이 자신들과 함께 한 마을에서 살았었다는 이유로 예수를 무시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를 안다는 것이 그 전부를 아는 것이 아닌데도 그랬습니다.

그에게서 나오는 말씀과 능력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말씀과 능력임에도 그들은 이를 볼 수 없고 또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한정된 예수 경험이 그를 거부하게 했습니다. 예수는 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미래를 열어주고 하나님의 구원을 알리는 예수와 하나님이었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얕은 지식 때문에 예수와 하나님에게 눈과 귀를 닫았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역사를 통해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를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그의 말씀을 삶으로써 그의 사랑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음으로 그의 백성이 된 사람들을 통해 그의 목표를 향해 역사를 한걸음 한걸음 진전시키십니다.

우리 모두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빕니다. 어둡고 거꾸로 가는 것처럼만 보이는 우리의 역사가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우리의 믿음이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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