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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에서 한 사람의 플레이어로여학생 KY와 YS, SH의 이야기
홍경종 교사 | 승인 2023.02.16 14:47
▲ 한 중학교의 피구 경기 모습(사진은 칼럼에 등장하는 학교와 무관함을 밝힌다.)

고학년 여학생들과 처음 체육을 해나가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다. 마음속에 그리는 그림은 모든 학생들이 다 ‘적극적으로’,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인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물론 운동기능이 뛰어나고 자신감이 있는 여학생들은 주도적으로 활동에 참여하지만, 그렇지 못한 여학생 KY와 YS, SH는 한쪽 구석에 모여서 이야기만 하고 있든지, 아니면 땅을 파고(나는 이것을 석유 시추라고 부른다. 백날 파도 석유 안 나온다고) 있든지.

하지만 이 친구들이 아주 소심하고 평소에 몸을 안 쓰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방과 후 운동장을 보면 가끔씩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피구공 가지고 놀고 있다. 즉 신체활동에 대한 에너지나 욕구가 전혀 없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건데, 왜 수업 시간이 되면 소극적으로 될까.

일단 내가 판단한 문제는 기존의 체육 수업내용이 이 아이들에게 조금 생소한 것으로 느껴지니 자신감의 결여로 그런 태도가 나온다는 것이고, 만약 좀 더 긴 시간에 걸쳐 신체활동에 대한 자기 효능감을 길러주면 체육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분명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항상 siedentop이 주창한 “스포츠 교육모형”을 적용한다. 경쟁영역에 조금 더 높은 비중을 두고 한 가지 종목을 최소 4주 정도 긴 호흡으로 실시한다. 학급을 소규모 모둠, 즉 팀으로 나누고 이 팀이 어느 정도 기간 동안 돌아가면서 리그전을 치루는데, 토너먼트 방식이 아니므로 최대한 많은 경기의 경험을 가지도록 한다.

일단 여학생들과 남학생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피구’로 종목을 정해 리그를 진행했다. 경기의 규칙에는 특별히 제한을 둬서 남학생들이 활동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남학생은 여학생을 맞출 수 없다는 규정을 적용했다. 대신 상대가 던진 공을 다이렉트로 잡아내는 경우 이것을 세이브 포인트라고 해서 이미 아웃된 1명을 되살릴 수 있다는 규칙을 넣어 남학생들을 좀 더 수비적으로 기여 하게 하고 여학생들에게 좀 더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전략을 각 팀에 규정으로서 강제했다.

저학년 같은 경우는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를 맞히도록 하는데 고학년에 오면 남녀의 신체 능력 차가 확실히 드러나는 데다 활동에 소극적인 경우에도 남학생과 여학생의 온도 차는 확실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스포츠교육 모형으로 진행되는 우리들의 리그에서 KY와 YS, SH의 수업 참여 태도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단 5명 정도의 소규모 인원으로 구성된 팀에서 여학생에게 역할이 많이 부여되기 때문에 그들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이는 수업에서의 적극성과 자신감으로 나타났다.

대학원 논문을 쓸 자료도 만들 겸, 나는 이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집단 면담을 실시했는데 참 다행스럽게도 이 아이들은 긍정적인 변화들로 내게 많은 쓸거리를 주었으며 내가 가지고 있던 신념, 즉 스포츠교육 모형의 효용성을 증명하는데 아주 좋은 근거들을 마구 쏟아내 주었다.

“전에 동네 피구(일반적으로 다수의 인원이 최소의 규칙으로 하는 피구) 할 때는 그냥 병풍처럼 서 있다가 아웃 되면 나가곤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못해도 나한테 기회가 있으니까 체육 시간이 좀 더 재미있고 기대가 돼요.”

“뭔가 존재감이 생긴다고 할까, 그리고 우리 팀이 승리해야 하니까 경쟁의식도 생기고 이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이제 병풍 아니에요. 지난주에 KM이 던진 공을 제가 얼떨결에 잡은 적이 있잖아요. 그 때 애들이 박수 치고 막 좋아해 주니까 저도 기분이 좋았고, 나도 되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어요.”

“남자애들하고 같이하면 너무 세게 던지고 무서웠는데, 규칙이 조금 안전하다고 느낌이 들어서 편하고 좋아요.”

“항상 남자애들이 자기네들끼리만 하고 여자들은 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 기회가 많이 와서 좋아요.”

“저는 못하니까, 제가 공을 안 잡고 가만히 있는 것도 팀이 이기기 위한 작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팀을 위해 협동하고 있는 거죠.”

“남자애들하고 섞어서 하니까, 여자들의 비율이 적잖아요. 그래서 공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더 생긴다고 생각해요. 여자들끼리만 하면 또 잘하는 애들만 하고 못하는 애들은 가만히 있잖아요.”

물론 스포츠교육모형이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경쟁이 주는 긴장이 있기 때문에 갈등을 조율해야 하고, 끊임없이 아이들을 관찰, 면담하며 리그를 전체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분명 있다. 또 결과가 내 의도대로 정확하게 되지 않는 경우도 분명 생긴다.

하지만 큰 그림을 보면 분명 발전이 있다. 특히나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즐기는 체육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고정적인 성 역할을 뛰어 넘고 보다 건강한 남녀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스포츠교육모형은 그 가치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홍경종 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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