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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새롭게 하소서!(애 5:1-5,19-22 요일 2:7-11 막 11:27-33)주현절 일곱째 주일(2월19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3.02.17 01:23

1. 토끼와 사자

오늘은 주현절 일곱째주일로 주현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주현절기는 예수님께서 현현하시어 공생애 사역을 펼치시는 절기입니다. 이제 ‘재의 수요일’인 2월 22일을 기점으로 부활절(4월 9일) 전날까지 주일을 뺀 40일 동안 사순절기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신묘년, 토끼 이야기도 오늘이 마지막 시간입니다. 그동안 토끼의 좋은 점을 소개했는데, 오늘은 관점을 바꿔 토끼의 어리석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토끼와 사자

먼 옛날 인도의 범여왕이 바라나시를 다스리던 시절, 바라나시 근처 숲속에 토끼 한 마리가 큰 열매가 열리는 나무 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토끼는 나무 밑에 누워서, “만약 이 대지가 무너지면 나는 어디로 갈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토끼 옆에서 “쿵”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식겁한 토끼는 ‘세상이 지금 무너지고 있다’라고 생각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토끼가 죽을힘을 다하여 어디론가 달려가는 것을 본 다른 토끼가 “얘, 너 어디로 그리 뛰어가니?”라고 물었고, 토끼는 “빨리 도망쳐야 해! 지금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고!”라고 말하곤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도망을 갔습니다. 이에 다른 토끼들도 “뭔가 큰일이 일어났구나”라고 생각하고 더는 묻지도 않고 앞의 토끼만을 따라 달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토끼가 들판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토끼들이 떼지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사슴이 따라 달렸고, 그 뒤를 이어 돼지, 소, 물소, 코뿔소, 호랑이, 사자, 그리고 코끼리까지도 내달렸습니다. 그리하여 숲속의 모든 짐승이 뛰기 시작하자 어느새 숲속은 천지가 무너지는 것처럼 요란해졌습니다.

숲을 다스리던 사자 왕이 이 모습을 보고 “너희들,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냐?”라고 물어도 짐승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지금 세상이 무너지고 있답니다.”라고 대답하며 바닷가 쪽으로 뛰어가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이러다 단체로 바다에 뛰어들겠다고 생각한 사자는 그대로 짐승들 앞으로 달려가서 강제로 짐승들을 멈춰 서게 했습니다. 그리고 동물들에게 “대체 세상이 무너진다는 말을 어디서 누구한테 들었느냐?”라며 캐묻기 시작했습니다.

맨 먼저 코끼리들은 “우리가 본 것이 아니라, 사자에게 들었습니다.” 사자들도 “우리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호랑이한테 들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호랑이, 코뿔소, 물소, 소, 돼지, 사슴들이 저마다 자신도 눈으로 본 게 아니라, 누구누구에게 들었다고 책임을 돌리는 가운데 드디어 맨 처음에 놀라서 달아났던 토끼에게 이르렀습니다.

사자 왕이 토끼에게 “네가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봤다고?”라고 묻자, 그 토끼는 “제가 보았습니다. 큰 나무 밑에 누워 ‘세상이 무너지면 나는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쿵’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자는 토끼에게 “네가 본 것을 내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으니 앞장서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토끼와 함께 그 나무가 있는 근처 숲에 이르러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한 곳이 어디냐?”라고 물었더니, 토끼는 겁이 나서 더 이상 나무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뒤로 숨으면서 “저기가 ‘쿵’ 소리가 난 곳입니다.”라고만 할 뿐이었습니다.

사자가 그 앞으로 가보니 토끼가 누워있던 곳에 커다란 나무 열매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즉 처음에 토끼가 들었던 “쿵”하는 소리는 나무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였고 겁 많은 토끼가 그 소리를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인 줄 착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사자 왕은 돌아와 자신이 본 것을 동물들에게 들려주었고, 이에 동물들은 안심하고 흩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서둘러 현장을 확인부터 하지 않고 미리 겁부터 먹고 도망간 토끼의 어리석음을 잘 보여줍니다. 최근에는 뉴스의 팩트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즉각 반응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뉴스도 팩트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이 이야기는 뜬 소문에 귀를 기울이기 좋아하는 사람은 하찮은 두려움에도 놀라 자빠지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일이 닥쳐도 두려움으로 떨지 않는다는 교훈입니다.

앞서 오늘은 주현절 일곱째주일로 주현절 마지막 주일이라고 말씀드렸죠? 주현절은 주께서 현현하시어 공생애 사역을 펼치신 절기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 본문 말씀은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 사역의 참된 의미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특히 서신서 본문에, 사랑의 사도 요한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참빛과 새 계명이라고 증언하며,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하셨던 일의 핵심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지난주 말씀도 “지혜와 사랑으로 위의 것을 사모하라!”라고 했는데, 오늘 말씀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곧 사랑을 실천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사역의 핵심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백성의 장로들입니다. 그들은 토끼와 같이 자기 생각에 빠져 다른 것을 둘러 보지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곧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죄가 심판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심판에서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랑이 식어버린 교회, 이기심과 배타성, 혐오와 차별이 가득한 교회는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심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예레미야 애가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우리의 날이 다시 새롭게 될 수 있다는 소망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우리 눈에 쓰인 거짓 욕망과 불순종의 탈을 벗어버리고 다시 참빛이신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참사랑을 실천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주현절기에,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의 본질인 사랑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예수의 권위에 관한 한 물음, “무슨 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먼저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예수님의 권위에 관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정화한 것에 관해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행위로 인해 자신들의 권위가 손상되었다고 생각하기에 분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반문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막 11:27-32)

지난주 말씀에 헤롯이 세례 요한을 죽였다고 했죠? 따라서 사람들은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요한의 권세보다 그를 통한 예수님의 권세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의 전도, 교훈, 증거 등이 모두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막 11:33).”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과 갈라지는 장면입니다. 이들은 앞서 말씀드린 토끼와 같이 자기 생각에 갇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보다 자신들의 종교적 권력, 위신, 체면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제대로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종교 장사를 하고 예수님을 팔아 먹고 살면서 자신의 지위와 권력에 안주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따라서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그 본질은 똑같습니다. 바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체이신 주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따라서 서신서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과의 교제 방법으로 형제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3.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리라!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요일 2:7-8)

이제 어둠이 지나고 참빛이 비추어졌습니다. 옛 계명이 돌판에 새겨졌다면, 이제 새 계명은 우리 마음에 쓰여졌습니다. 참빛이 우리에게 비추어짐으로 어둠이 지나갔습니다. 사랑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따라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요일 2:9-11)

오늘도 참빛이 비추어도 깨닫지 못하고 어둠에 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토끼와 같이 자기 생각에 갇혀 있는 많은 종교인이 그렇습니다. 오늘 배타성과 혐오로 똘똘 뭉친 한국교회가 그렇습니다. 따라서 심판은 이방인들이 아니라, 바로 이들에게 임합니다. 교회 안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 구원이 있고, 심판은 믿는다 말하는 이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믿는 자들이 똑바로, 제대로 믿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 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백성의 장로들이 그랬습니다. 또한 그 옛날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제사장 나라의 백성이건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불순종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 당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로 잡혀갑니다. 오늘 구약 말씀 예레미야 애가서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말씀을 볼까요? 유다의 멸망이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구원과 회복을 구하는 간절한 절규입니다.

4.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보옵소서! 우리의 기업이 외인들에게, 우리의 집들도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들이오며 우리의 어머니는 과부들 같으니,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나무들을 가져오며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우리의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기진하여 쉴 수 없나이다.”(애 5:1-5)

지금도 그렇지만 지난 3년 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모두 큰 고통에 빠졌습니다. 지구촌이 위기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끝날 줄을 모릅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2주년을 맞아 비상사태를 연장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대만을 두고 경제전쟁, 반도체 전쟁을 벌이고자 합니다. 한반도도 이제 3월 한미 군사훈련을 앞두고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휴전선에서 국지전이 일어날까 염려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특히 지난 2023년 2월 6일 튀르키예 남부 지역과 시리아 북서부 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튀르키예 역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가 있었습니다. 지구촌이 지금, 참 어렵습니다. 기후 위기, 지진 위기, 그리고 인간의 위기로 지구촌은 걱정 근심이 끊어질 날이 없습니다. 애가서의 절규가 예레미야의 절규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의 절규입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주께로 돌아가면 됩니다. 애가 말씀을 볼까요?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애 5:19-2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랑의 주님께로 돌아가 다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사랑을 다시 기억하는 것입니다. 아래 그림은 기억에 관한 아주 의미 있는 그림입니다. 국내 일러스트레이터(삽화가) 명민호 작가의 그림입니다. 먼저 왼쪽 그림을 보면,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튀르키예 군인이 전쟁고아로 보이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돌보는 모습과 오른쪽에 튀르키예 지진으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 긴급구호대(KDRT) 대원이 구조한 튀르키예 소녀에게 물을 먹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 명민호 삽화가의 그림

이렇게 기억을 통해 튀르키예를 돕고, 기억을 통해 주님께로 다시 돌아가 우리의 날들이 새롭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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