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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계속되는 헤겔 철학의 흐름헤겔의 인정투쟁: 알제리와 인도 그리고 너머에 (1)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 승인 2023.02.18 02:40
▲ 신학자로 출발해 철학자로 생애를 마감한 헤겔에게서 신학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Getty Image
정승훈 교수는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미네소타 루터신학대학원 부교수를 거쳐 시카고 루터교신학대학원 석학교수로 있다. Historians’ Debate–Public Theology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헤겔 철학의 난해함은 악명높다. 어려운 철학을 읽어야할 이유가 있는가? 나는 헤겔의 인정철학을 후기 식민지시대에 시민사회론과 민주주의 기초를 놓기 위해 쉽게 읽는 방법을 취한다. 헤겔의 인정철학은 알제리 해방운동에서 프란츠 파농에 의해 부각되었다. 헤겔은 포스트콜로니얼 이론의 시작을 알린다.

헤겔의 인정철학은 그의 《정신현상학》 전체를 꿰뚫는 주요 멜로디로 나타난다. 헤겔은 당대 프랑스 혁명을 주인과 노예의 인정투쟁이라는 변증법 이론을 통해 역사 사회학적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정신현상학》의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절대지에서 인정원리로 끝을 맺는다.

나는 헤겔주의자가 아니지만, 그의 인정철학은 시민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헤겔은 스스로를 리얼리스트로 불렀다. 왜나하면 그는 하나님과 신문을 동시대적으로 파악한 철학자였다. 마치 칼 바르트가 성서와 신문 사이에 유기적 연관성을 주장한 것처럼, 헤겔도 이에 앞서 하나님과 신문의 연관성에 사회철학적으로 주목했다.

헤겔의 인정원리는 그리스도의 화해의 사건에 기초한다. 그러나 당대 쉴라이에르마허의 절대 의존감정이나 신비주의자들은 영혼의 내면적인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화해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헤겔은 이러한 신학을 “아름다운 영혼”으로 불렀지만, 이러한 신학이 그리스도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살았고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아름다운 영혼에 매몰된 신학과는 달리 헤겔이 의도한 것은 십자가와 화해의 사건을 철학적 개념인 인정을 통해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하나의 사회를 지향하는 공공선 철학에 있었다. 헤겔의 인정철학은 그리스도의 화해의 사건을 기초로 하며, 당대 기독교 신학의 내면화나 경건주의화를 비판한다. 이것을 헤겔은 아름다운 영혼으로 비판한다.

헤겔의 영향사는 엄청나다

헤겔의 인정투쟁은 마르크스에게서 지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마르크스의 노동소외와 착취문제는 이미 헤겔의 시민사회론에서 경제문제를 둘러싼 계급투쟁과 더불어 잘 표현된다. 마르크스는 1844년 《파리초고》에서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일전을 벌였다. 그 이전에 마르크스는 헤겔의 《법철학》을 면밀하게 주석하면서 미완성으로 남기기도했다.

그러나 헤겔의 변증법이 마르크스에게 이어진다고 해도, 마치 물구나무서기를 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헤겔이 관념론자이고 거꾸로 읽어야 유물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헤겔을 리얼리스트로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지점에서 헤겔과 마르크스를 접합시키고 같이 읽는다. 헤겔의 인정투쟁은 마르크스가 1848년 전 유럽의 혁명을 파악하고 거기에 관여했던 실천에서도 볼 수가 있다. 1848년 유럽의 혁명은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그리고 민족국가로 요약된다. 서구에서 민족개념은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와 더불어 시작된다. 물론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에서 고난받는 민족은 정치적으로 민중개념으로 부각된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이나 이후 유럽의 1848혁명을 면밀하게 검토해보면, 고난받는 민중은 정치주체로서 시민개념으로 전환되고, 가톨릭의 신성로마 제국으로부터 고난받던 민족이 독립국가를 향한 혁명적 열망으로 채워진다. 식민지배를 경험한 나라들에서 민족은 인종과 결부되고, 반식민지 해방투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인정투쟁이 계급투쟁의 계보학이 된다. 이러한 측면은 프란츠 파농을 통해 알제리 해방투쟁에서도 본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관련성은 게오르그 루카치의 《청년 헤겔》에서 잘 분석된다. 루카치에게서 청년 헤겔은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의 선구자로 그려진다. 루카치는 마르크스의 1844 《파리초고》를 높게 평가했다.

사실, 헤겔 르네상스는 1960년대 프랑스에서 나타나는데, 그것은 알렉상드리 코제브의 기념비적인 헤겔 강연에서 시작되었다. 당대 프랑스의 지성계에 미친 코제브의 영향은 대단했다. 코제브의 해석에서 헤겔의 인정철학은 정점에 달한다. 그러나 그의 파시즘적인 투쟁 강조와 스탈린 체제와의 비밀스런 연계는 그의 헤겔 해석에 아킬레스건으로 남는다.

장 이폴리트는 그의 《정신현상학》 해설을 통해 코제브의 한계를 넘어서 헤겔과 푸코가 만나는 지점을 마련하기도 했다. 푸코는 반-헤겔적인 방향에서 니체와 더불어 움직이지만 종종 이폴리트에게서 배운 헤겔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유럽에서의 공부와는 달리, 버클리(UC Berkeley) 시절의 내게 헤겔 철학에 새로운 언어철학적 차원과 근대 사회의 연관성을 열어준 사람은 캐나다 맥길대학의 찰스 테일러였다. 테일러는 사회철학자로 헤겔의 종교적 차원을 칼 바르트와 연결짓기도 했다. 최근에 카트린 말라부는 자크 데리다의 지도로 헤겔에 관한 학위논문, <헤겔의 미래: 플라스틱. 시간성, 변증법>을 쓰기도했다.

헤겔에게서 고대 그리스의 조각은 플라스틱 예술의 가장 위대한 업적에 속한다. 플라스틱과 같은 유연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잘 나타난다. 형식과 질료는 목적을 향해 나간다. 인간의 삶 또한 잠재적인 형태에서 현실태로 완성되어가는 자기실현이다.

여기서 플라스틱과 같은 유연성은 헤겔의 인간이해와 더불어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하나님의 비움(케노시스)에서 말라부는 하나님의 보편성이 구체적인 인간이 된 그리스도의 화육에서 유연성의 정점을 보았다. 자기비움 또는 부정성은 하나님의 내적인 유연성에 속한다. 말라부는 헤겔을 상당한 정도로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철학자이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자칭하는 슬라보예 지젝도 있다. 지젝은 헤겔과 라캉을 연결하고 정신 분석가인 라캉이 수용한 헤겔의 매개개념을 지양으로 업그레이드 한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에서 지양 개념을 환원정도로 이해하고, 생존하는 것은 생활세계 (후설) 로 부터 떨어져나간 축약된 편집으로 말한다.

그러나 지젝의 이해와는 달리 헤겔의 세계정신은 보편적이고 특수와 구체적인 것과의 부단한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긴장, 갈등 대립, 부정) 매개되면서 인정의 길로 나간다. 그러나 헤겔과는 달리, 후설의 생활세계는 선험적(a priori) 존재의 일반내지 초월구조로 남는다. 이것은 의식 (노에시스;noesis)과 의미세계(노에마; noema)의 상관관계에 영향을 주는 세계지평 이지만, 헤겔처럼 절대지에 도달 하지 않는다. 그러나 후설의 생활세계와 헤겔의 절대정신은 매우 근접해있다.

어째튼 지젝의 위험한 허풍은 진지하고 사회를 변혁하려고 하는 열정에 있다. 그러나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의 서문에서 헤겔은 인간은 죽음의 질병을 가진 동물로 말한다. 인간은 욕구 총족이되지 않는 이성, 로고스, 언어에 의해 왜곡된 동물이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의 욕망과 충족의 체계변화에서 나타나는 매개개념은 주인과 노예가 생사를 걸고하는 인정투쟁과 노동을 통한 매개에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지젝은 죽음본능 (프로이트)을 급진적인 부정의 차원으로 돌출하고 소외된 사회적 조건의 표현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말한다.

죽음본능이 인간조건 자체이며 제거될 수가 없다. 라캉을 위한 지젝의 허풍에서 헤겔은 열정적으로 왜곡되고 간과된다. 헤겔의 영향사는 이 정도로 하자. 끝이 없다. 어쨋든 헤겔은 신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가교의 역할을 하는 철학자이고 기독교 신학의 깊이를 꿰뜷어 본 루터와 종교개혁의 추종자였다.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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