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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따라 동심원 그리기“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요한복음 4:19-2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2.20 01:01
▲ The Tabernacle in the camp. Collectie Nederland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에 관한 질문은 일상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힘들게 하거나 두렵게 하는 일들이 없었느냐는 질문이 아닙니다. 두렵고, 힘들고, 불편한 일과 상황은 끊임없이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한다고 해도 이런 일들을 피할 수 없습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성도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 내면에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27 “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평화를 너희에게 주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성도의 시선이 상황이나 외부로 향하지 않고 안, 내면으로 향할 수 있다면, 언제라도 이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론 외적으로 아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스스로 내면에서 지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경우가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노, 질투, 열등감, 불안, 두려움 등을 스스로 재생산하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상황이든 내면의 상황이든 상관없습니다. 성도는 언제라도 주어진 평안을 선택하기만 하면 됩니다. 간단합니다. ‘평안 누리길 원합니다.’라고 요청하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요청하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께서 생각과 마음을 환기하시고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드렸지만, 바로 이 평안이 성도가 누려야 할 가장 큰 복입니다. 어떠한 노력도 없이 성도에게 은혜로 주어진 이 평안을 언제, 어떤 상황에든지 선택하고 누리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중 새벽기도 시간에 성도님들과 민수기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4장까지 성도님들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4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출애굽 이후 가나안땅으로 가기까지 어떤 방식으로 진을 치고, 이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명령이 담겨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모든 과정과 방식을 알려주셨습니다.

먼저는 전쟁을 할 수 있는 인구를 조사하고, 성막과 성막에 있는 비품을 관리할 수 있는 레위인의 인구를 조사했습니다. 진을 칠 때는 회막을 중심으로, 회막을 향하여 지파별로 어떻게 진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이처럼 부대를 어떻게 편성하고, 행군 순서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까지 알려주셨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민수기 4:5-10의 말씀을 읽어보면, “진을 이동할 때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안으로 들어가서, 칸막이 휘장을 걷어내려, 그것으로 증거궤를 덮고, 그 위에다 돌고래 가죽 덮개를 덮고, 또 그 위에다가는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다음에 채를 꿴다. 다음에는 늘 차려 놓는 상 위에다가 청색 보자기를 펴고, 그 위에다 대접들과 종지들과 부어 드리는 제물을 담는 병과 잔들을 놓고, 늘 차려 놓는 빵도 그 위에 놓는다.

이것들은 진홍색 보자기로 덮고, 그 위에 다시 돌고래 가죽 덮개를 덮은 다음에 채를 꿴다. 그런 다음에는 청색 보자기를 가져다가, 불 켜는 등잔대와 등잔과 부집게와 불똥접시와, 그것들과 함께 쓰는 모든 기름그릇을 싸고, 그 등잔대와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를 다시 돌고래 가죽 덮개로 덮어서, 들것 위에 얹는다.”

저는 이 민수기 본문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할 일도 없으신가 이렇게까지 어떤 색깔 보자기로 덮고, 어떤 가죽을 써서 덮고, 물건을 쌓아 올리는 순서까지 알려주셔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예생활과 이방문화에 젖어 있던 오합지졸인 삶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이 가리키시고, 말씀하시는 삶의 방향으로 전환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모세가 순종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자 짧은 시간에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점점 그럴듯한 나라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동체,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고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런 세세한 명령을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법,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안전하고 평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서 사마리아 여성과 예수님의 대화를 통해 이런 하나님의 의도가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서 무너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20 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여성은 전통성에 대해 질문합니다. 통일 왕국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면서 서로 간에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북왕국에서는 그리심산을 남왕국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은 질문합니다. 어디서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입니까? 우리가 예배하는 그리심산입니까 아니면 유대인들이 예배하는 예루살렘입니까?

“2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아버지께,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22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 구원은 유대 사람들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예배하는 예루살렘이 옳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하지만 사마리아인이든, 유대인이든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헛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드리는 예배,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예배가 되어야 함을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러시면서 이렇게 첨언을 하십니다. “23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 말씀은 마치 장소도 중요하지 않고, 형식도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영이시니 어디에서나 예배드리면 된다는 식으로 오해되고 있습니다. 장소와 형식보다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면 된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네, 맞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말씀에는 아주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예배’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를 만족시키기 위한 예배, 목사가 만족하기 위한 예배, 성도의 편의를 위해 드려지는 예배, 성도의 감정을 끌어내기 위한 에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모든 예배에는 하나님은 오히려 주변부로 밀려나 계실 뿐입니다. 이런 예배를 예수님은 비판하셨습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자들과 맞서셨고, 종교지도자들과 맞서셨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모든 형식과 시간과 장소들이 어쩌면 이 말씀을 역이용해서 사람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예배드릴지라도, 예배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감정적인 폭발이 있을지라도, 또는 예전을 중심으로 한 그럴듯한 예배가 드려질지라도 이 모든 예배가 과연 하나님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때가 온다는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4:15-17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시다.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는 너희와 함께 계시고, 너희 안에 계실 것이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즉, 영과 진리로 예배드린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보혜사가 알려주시는,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드려질 예배를 말합니다. 철저하게 나의 의도가 아닌, 나를 만족시키려는 의도가 아닌 성령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향 속에서 이루어지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닐까요?

다시 처음에 말씀드렸던 민수기 말씀으로 돌아간다면 하나님은 아주 세세한 것까지도 알려주시며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의도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가리키시는 삶의 방향이 중심이 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만족할 만한 방식으로, 내가 편한 시간에, 나에게 맞는 어떤 형태의 예배들을 찾았다면 민수기 말씀은 예배는 당연히 불편한 것이고, 어려운 것이고,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다만 오늘날에는 당시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다루어야 했던 회막, 성물, 기구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 오늘날 우리의 예배, 나의 예배를 점검해야 합니다. ‘나를, 사람을 만족하게 하기 위한 예배만 드리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의 삶은 형식적인 율법을 파괴하시면서도, 율법의 실제적인 의미를 완성 시키는 여정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성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소와 형식의 파괴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일관되게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하며,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예배가 되어야 함을 깨닫도록 안내하셨습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이 자리에서 어떤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내가 만족할 만한 예배, 내가 중심이 되는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영과 진리로 드리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예배를 통해 은혜를 경험하고 삶이 바뀌는 회개와 결단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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