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생활 칼럼
높은 것은 낮아지고, 낮은 것은 높아지는 것이 치유다한 사람에 관한 치유적 상담 이야기 (1)
한선영 박사(치유공간 느낌 대표) | 승인 2023.02.25 15:21
▲ 심리적 상처는 개인적인 것을 넘어 사회적 차원이 존재한다. ⓒGetty Image

원래는 활발하고 성격이 밝던 여학생 K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급에서 따돌림을 받은 일로 마음에 큰 상처가 생겼습니다. 따돌림은 특정 남학생이 K의 피부 트러블을 ‘더럽다’고 놀린 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후 남학생 다수가 함께 K의 외모를 놀리는 일들이 이어졌고, 여학생들도 K와 같은 모둠이 될라치면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1년간 지속적으로 겪다 보니 K는 점점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었습니다. 결국엔 자신이 ‘극혐’이기 때문에 친구들이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는 자기 비하적인 생각이 깊어져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K는 초등학교까지 엄마의 요구를 전적으로 따랐던 순응적인 아이였습니다. 공부는 물론이고, 어떤 친구를 사귈 것인지에 관해서도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K는 학급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에 아무 대응을 하지 못했고, 이 일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또래관계를 아예 회피하자 교우들 역시 혼자만 있는 K를 멀리했습니다. 이러한 또래관계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K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를 마치고 자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 위의 사례는 필자의 상담자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례를 재구성하여 각색한 내용입니다. 상담 현장의 현실성에 기반하였으나 특정한 사례는 아님을 밝힙니다.

상담은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어디 가서도 못하는 서럽고, 외롭고, 기막히고, 가슴 치며 절규하는 고통스런 경험들이 상담실에서는 가장 깊이 존중받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비밀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비밀스러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고통에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보편성이란, 상처는 힘의 억압적인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관계와 사회에 존재하는 힘들의 현상을 통찰해낸 심리학자입니다. 그는 힘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힘이 생산적 지향성을 가지고 관계망 안에서 능동적으로 발휘될 때 이를 ‘생산적 사랑’이라 부르거나, ‘합리적인 권위’라고 지칭하였습니다. 한편 힘이 비생산적인 지향성을 가질 수도 있는데, 이럴 때 힘은 권위주의나 파괴성, 순응성 등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이러한 힘이 ‘비합리적인 권위’입니다.

K의 사례에서 나타난 비생산적 지향, 즉 억압적 힘은 세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통제적인 어머니와의 관계, 그리고 학급 친구들의 폭력적이고 집단적인 따돌림에서 억압적 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모습에서 억압적 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성공중심주의에 기인한 어머니의 공부 강요와 통제, 또 외모지상주의, 남성중심주의, 집단주의에 의한 따돌림 등에서 억압적 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상처는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사회의 현실을 담지하고 있기에 심리 문제를 분석할 때는 이렇게 개인적 측면, 대인 관계적 측면, 사회문화적 측면을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서는 이러한 억압적인 힘들이 어떻게 변형되어야 하는지 안내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메시아를 묘사하는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누가3:5; 사40:3)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갈3:28)이라고 가르칩니다. 높은 것이 낮아지고, 반대로 낮은 것이 높아지는 평평(平平)한 상태가 성서가 지향하는 관계성입니다.

​이는 곧 수평적인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치유에 있어 수평적 관계성을 중요하게 여긴 가족치료학자는 버지니아 사티어입니다. 사티어는 인간이 나이, 피부색, 성별(gender)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적인 면에서는 모두 동등하며, 지배-복종의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치유가 일어나며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프롬의 '합리적인 권위'는 수평적 원리를 지닙니다. 처음에는 힘의 크기에 차이가 있더라도 점차로 힘의 높고 낮음이 동등해져서 수평적 관계로 변형되는 것이 합리적 권위의 목표입니다.

​앞서 사례에서 언급한 K의 치유 역시 세 가지 차원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자신을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고 비하하는 모습이 수정되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대인관계적인 측면에서는 강요적인 어머니와 폭력적인 친구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힘, 자신의 소망과 의견을 담은 목소리를 “Yes or No”로 분명하게 표현하는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집단적 따돌림이라는 고통을 사회문화적인 맥락 안에서 바라보는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치유는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속된 관계망의 환경을 수평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K의 상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환경은 할 부모와의 관계입니다. 부모 상담을 통해 부모님의 강요적인 태도에서 K를 존중하고 공감하는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면 치유적 관계망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사회에 수평적 관계망을 일구는 일도 중요합니다. 심리학의 대가들 중에는 사회정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행동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글에 등장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 가족치료학자 버지니아 사티어는 물론이고, 여성심리학의 기초를 닦은 카렌 호나이, 인간중심상담의 창시자 칼 로저스, 집단상담가 제프리 코틀러, 목회상담가 하워드 클라인벨 등도 그러합니다. 한 개인의 아픔에 깊이 공명한다는 것은 병리를 부추기는 사회의 현상들, 즉 권위주의, 차별, 혐오, 폭력, 가난, 기아, 교육 등의 문제들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족, 종교, 성, 나이, 사회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총체적인 실존을 만나는 것입니다.

“수평적인 응답은 그대로 하여금 머리와 가슴과 느낌들과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돕는다. 수평적인 사람(leveler)이 된다는 것은 그대가 진실함, 헌신성, 정직함, 친밀함, 숙련됨, 창조성, 그리고 사실을 사실로 다루는 능력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Virginia Satir)

목사, 심리상담, 집단상담으로 한 사람의 작지만 미세한 변화를 기적으로 여기며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한선영 박사(치유공간 느낌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선영 박사(치유공간 느낌 대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