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할 때깨닫지 못한 잘못(사무엘상 15:22-24)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3.02.26 05:25
▲Claes Moeyaert, 「Samuel and Saul」(1618-55) ⓒWikimediaCommons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들어가는 말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사랑을 보여주셨으며, 부활하심으로 사랑을 완성하셨음을 기억하는 기간입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시고, 또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크신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우리의 삶 속에서 느끼며 살아가시는 사순절 기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주에도 저희는 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며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복에 관해 명시되어 있는 본문들을 통해 하나님의 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면, 이번 주일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저희가 살펴보려고 하는 이야기는 사울 이야기입니다. 특히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된 순간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은 6년 전에도 함께 나눈적이 있습니다만, 그때와는 조금 다르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버림받은 사울

전에도 말씀드린 적 있지만,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은 어쩌면 구약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께 처참히 버려진 인물입니다. 악한 일을 해서 벌을 받은 사람들이야 성경에 자주 나오지만, 회개하려고 끝까지 발버둥쳤음에도 끝내 외면당한 인물은 사울이 유일할 것입니다.

회개해도 끝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는 문제이긴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하나님과는 거리가 있어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받지 못한 사울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성경이 사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처사는 조금 지나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지만 왕이라기보다 군사령관에 가까웠던 인물이었고, 많은 권력을 누리지도 않고 묵묵히 전쟁을 수행했던 인물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이 생기면 벌어질 안 좋은 일들을 열거했지만, 사울은 그런 악독한 왕에 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솔로몬이 그런 왕이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에서는 무능한 왕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이런 사울의 모습은 이전에 보여준 활약들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했다는 점도 훗날 다윗이 무력으로 유다의 왕위를 차지한 점을 본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파 연맹의 의견과 무관하게 유다를 점령하고, 무력으로 이스라엘의 왕위를 차지한 다윗이 잘못된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성경을 기록한 남왕국 유다 사람들의 시조인 다윗과 대척점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무능한 왕,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으로 기록된 사울을 동정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 역사에서 사울은 이런 왕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기록된 목적이 역사적 팩트의 전달이 아닌 신앙의 전달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사울이 버림받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신앙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사울이 다윗과 대적했던 악한 인물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그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조금은 새로운 말씀을 읽게 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사울의 두 가지 잘못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블레셋과 전쟁을 치를 때, 사무엘이 오지 않자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렸다는데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이런 사울의 모습이 이해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전쟁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때의 이스라엘은 상비군보다는 전쟁이 있을 때마다 각 지파에서 파병하는 수준의 군대였습니다. 전시 이들의 통솔권은 사울에게 있었지만, 이들을 강제적으로 붙들 권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쟁 개시를 위한 제사 날짜에 사무엘이 그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떤 이들에겐 이 전쟁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전쟁이라고 느끼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여있던 사람들 중 일부가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그 상황에서 사울은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왕이 제사장의 권한을 넘볼 수 없다는 점, 제정분리의 원칙이 사무엘상 13장이 말하고 싶은 바였는 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건 뒤늦게 나타난 사무엘은 스스로 번제를 드린 사울을 질책하며 떠나가 버립니다.

사울의 두 번째 잘못은 오늘 본문의 앞에 나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말렉과 전쟁을 치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의 모든 사람과 모든 짐승을 말살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지만 사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 승리한 사울은 자신의 기념비를 세웠고, 아말렉에서 양과 소를 전리품으로 끌고 옵니다. 귀환하고 있는 사울을 찾아온 사무엘은 이런 사울을 질책합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질책하는 사무엘을 향해 사울은 변명합니다. 먼저 사울은 두 번에 걸쳐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좋은 양과 소를 남겨두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사울의 변명에 대한 사무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순종을 좋아하신다고 말합니다.

사무엘이 차갑게 응답하자 사울은 대답을 고쳐 말합니다. 백성들의 목소리가 두려워서 그들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사울을 따르던 백성들은 아말렉과의 전쟁 후에 전리품을 챙기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이들의 말을 따르게 됩니다.

사울은 이 두 가지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15장의 마지막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음을 후회하셨다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그리고 16장은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이야기가 이어지게 됩니다.

사울이 깨닫지 못한 것

사울의 두 가지 잘못이라고 불리는 일들은 모두 제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왕이 직접 드렸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제사를 위한 전리품을 챙겼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모든 행동 뒤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완전히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던 각 지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이들을 규합하려 했고, 이들로부터 질타받을 일을 만들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렸고, 백성들이 끌어모은 전리품을 제사를 위한 전리품이라고 둘러댔습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을 모시는 제사를 지냈다는 점이나 백성들의 잘못된 전리품을 하나님께 돌린 점은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니었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의 전통보다는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행동에는 가장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울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는가에 그 문제가 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반발로 자신의 왕권이 무너질까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사람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무엘의 말에는 하나님께서 순종을 더 원하신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따라서 사울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사울의 가장 큰 잘못은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했다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에서 사울이 무능한 왕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도 그가 하나님이 아닌 골리앗이라는 장수를 두려워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사울은 다윗이 자신의 왕권을 노릴까봐 두려워합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시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도 합니다. 나라 안에 있는 우상을 철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끊임없이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받아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때로는 한 국가를 진멸하시기도 하고, 무시무시한 심판을 내리는 분이기도 합니다. 바벨론 포로기 등의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회개를 이끌어 내는 분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포로기에 앞선 전쟁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임당하게 만드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구약성경은 교회에서 인기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아닌 심판자 하나님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2세기 교부였던 마르시온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르다고 말하며 구약의 하나님은 폭력과 보복의 신이라고 말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그가 이단으로 규정되었더라고 그의 생각은 이어지고 있는 듯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쉽게 잘못을 저지를 수 있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우리를 용서하시리라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은 결국 용서받으리라는 생각에서 우리는 또다시 잘못을 범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사울과 같이 철저히 버림받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사극을 보다보면 어느 사극이나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천벌이 두렵지 않느냐!”라는 대사입니다. 보통 악한 인물을 향해 사용되는 대사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악한 인물들은 이런 대사에 콧방귀를 뀌며 악을 행합니다. 그들은 천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천벌을 두려워하면서 악을 행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곳에는 선함만이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함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셨던 세상과 비슷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그런 세상이 복으로 가득찬 세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천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자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악을 행합니다. 우리가 악을 행할수록 그곳에 하나님의 복은 사라져갑니다. 원망과 분노, 아픔과 슬픔만이 남아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폭력적인 신이고 보복하는 신이기에 세상에 무서운 심판이 내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악을 행하기에 그곳에 폭력과 아픔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시라 말씀드리며 시작했지만, 그 사랑과 함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됩니다. 세상에 선을 행하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세상이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런 복된 세상을 이루어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