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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 그리고 체육HS의 이야기
홍경종 교사 | 승인 2023.03.01 23:20
▲ 저출산으로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지만 빈곤 아동은 늘어나고 있다.

매사에 무기력한 HS가 있다. 키는 조금 큰 편이지만 과체중이며 가방에는 쓰레기가 가득하고, 수업시간에는 아무것도 꺼내지 않는다. 평소에 말도 잘 하지 않고 표정이 어둡다. 수업시간에 그렇게 아이들을 웃겨도 이 아이는 거의 웃지를 않는다. 진짜 웃길 경우에 살짝 피식하는 것은 몇 번 봤지만 말이다.

과제를 한 번도 수행한 적이 없으며 항상 지각을 하고 수업시간에는 엎드려 잠을 자려 한다. 부모님과는 연락이 닿지를 않으며 가정통신문도 회신이 되지 않는다. 언젠가 무슨 금전 지원 관련해서 밤 11시 넘어 연락 온 것을 제외하고는 내 쪽에서의 연락은 불가능한 상태라서 이제는 아이 전화번호를 따로 메모해두고 지각하면 내가 전화해서 깨운다.

나는 이 아이의 인생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생활의 곤란함, 그것은 옛날 내가 겪어온 것처럼 단순히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옷을 못 사 입던 것과는 다를테지만 10살짜리 아이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집안의 분위기, 부모님의 대화 속에서, 그리고 친구들의 삶과 비교하는 가운데 우리 집이 처한 상황과 내 위치를 파악한다. 그 무게는 아이 혼자 오롯이 짊어지기에 상당히 버거운 것이다. 아이는 결국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고, 인스턴트 식품으로 끼니를 때울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독한’ 마음을 먹고 공부에 전념했던 내 모습이 그려진다. 누군가는 가난은 결국 ‘노력’을 하지 않은 개인의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이야기인지는 그것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심리적, 정서적 지지가 없이 그저 홀로 세상에 내던져진 것만 같은 아이는 세상에 대해 거친 분노나 폭력성을 보이든지, 아니면 외부세계와 자신을 단절시키고 스스로 고립의 길을 택한다.

이런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마음의 부담을 느낀다. 그리고 그 부담은 언제나 슬픔으로 다가온다. 내가 이 아이의 그 ‘무게’를 대신 짊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이 아이가 지금의 현실을 스스로 이겨나가려는 의지를 가지길 원했다. 적어도 이런 무기력한 모습이 아니라 뭔가 의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 아니, 최소한 이 아이가 웃는 모습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가 참여하는 활동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체육이다. 뒤뚱거리면서도 뭔가 집중하고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그래도 눈여겨보고 있었다.

하루는 이 아이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제아무리 좋은 말로 타이르고 도와주려고 해도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따로 남겨서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훈계를 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일까?’

물론 알고 있다. 이 아이가 이럴 수밖에 없는 배경을. 그리고 이 아이의 삶의 무게는 내가 절대 감당해줄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더더욱 큰 소리를 내며 아이를 몰아붙인 것 같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차분하게 아이에게 물었다.

“HS야, 그러면 네가 학교 와서 가장 좋은 것은 뭐니?”
“... 체육이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체육’을 말하는 아이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알겠다. 그럼 체육 시간만이라도 지금처럼 열심히 해보자. 나도 좀 더 노력해볼게.”

이후로 주 3시간 하던 체육을 자체 재구성을 통해 주 5~6시간으로 편성했다. 내가 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배려라는 게 고작 이 정도뿐인 것이 아쉽지만, 적어도 HS는 좋아하는 활동에 집중하고 친구들과 대화하며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2학기가 되어서는 조금씩 행동의 변화를 보였는데,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수업시간에 교과서와 연필을 꺼내놓고 익힘책이나 교과서에 답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2학기 교과서는 이 친구의 경우 집으로 안 보내고 사물함에 보관하게 했던 것도 이유겠지만, 그전에는 교과서가 사물함에 있어도 꺼내지 않고 엎드려 잠만 자려고 했기 때문에 이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수업 중간중간에 아이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칭찬하며 격려해주니 아이의 얼굴에도 약간씩 밝은 빛이 돈다.

의욕이 없는 아이, 삶의 무게에 찌들린 아이에게 학교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아이의 무게를 같이 짊어질 수 있는 상담이나 정서적인 지원이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이것은 먼저 아이의 마음을 얻어야지만 접근 가능한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삶에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뭔가 즐겁고 성공적인 경험을 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데 ‘체육’은 바로 아이의 삶과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육적 결과를 이어주는 다리, 혹은 막힌 문을 열어주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홍경종 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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