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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은 보이는데 왜 장애인은 안 보일까백정연의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유유, 2022)을 통해 다양한 몸 사의 경계 허물기를 배운다
정리연 | 승인 2023.03.05 05:31
▲ ‘소소한 소통’의 백정연 대표가 겪은 일상의 풍경을 그린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을 발간했다. ⓒ소소한 소통 제공

아마도 여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고, 우리는 운동장에 학년별로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선생님이 마이크에 대고 한 아이 이름을 불렀다. 단상에서는 교장 선생님과 낯선 사람이 웃으면서 아이를 맞이했다. 그들 옆에는 전동 휠체어가 있었고,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걸 기증하는 날이었다.

그 친구는 학교가 있는 읍내가 아니라 버스를 타고 40분 넘게 가야 하는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집에서 버스를 타러 나가는 거리는 모르겠지만, 버스에서 내려 학교까지는 보통 걸음으로 30분은 족히 걸렸으니 목발을 짚고 학교에 오갔던 그 친구에게는 상당히 버거웠을 거다. 아침과 오후, 매일 두 번씩.

그날 이후로 그 친구는 전동 휠체어를 사용해서 학교에 다녔다. 학교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계단만 있었는데, 3층에 있던 교실까지 어떻게 오르내렸는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버스 대신 휠체어에 몸을 싣고 찻길을 오갔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짐작만 할 뿐.

다양한 존재에 대한 이해

시민들의 출근으로 복잡한 아침 8시 지하철역, 일부러 욕먹고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벌써 두 해를 넘겼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소속 장애인들과 비장애인 활동가들이다. 부정적인 시선도 많다. 당연하다. 하필이면 일분일초가 급한 출근 시간에 도대체 왜!!!

“차라리 욕을 먹는 게 나아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연착시키지만, 이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알잖아요. 욕하면서도 우리가 이러는 이유를 알게 되었잖아요. 무관심보다는 욕먹는 게 나아요. 물론 욕이 좋지는 않지만요. 전에도 제가 아침 8시에 지하철을 타곤 했어요. 그러면 난리나요. 어떤 청년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왜 하필 출근 시간에 타서 복잡하게 하냐, 9시 넘어서 타라고요. 제가 대답했죠. 나도 출근한다!”

전장연 이형숙 공동대표를 인터뷰할 때 들었던 말이다. 장애인도 직장인이 있고 출퇴근하며 살아가는데, 마치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안이나 시설에만 있는 무능력자로 생각해왔기 때문에 혐오 발언을 함부로 하는 게 아닐까?

장애 있는 친구와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었다. 그 친구가 체육 시간에 운동장 구석에 앉아만 있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돌계단이나 교실 턱을 자연스럽게 오르고 넘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그런 것들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다양한 존재 혹은 가능성에 교육받고 이해가 있었다면, 적어도 지하철의 청년처럼은 반응하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는 과연, ‘장애’라는 세계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소한 소통

​우리나라에는 약 263만 명의 장애인이 있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약 5%이다. 즉 20명 중 1명은 장애인이라는 의미다.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생 인구 또한 전체 인구의 약 5%이다. 길을 걸으면서 초등학생은 자주 마주쳐도 장애인은 거의 볼 수 없는 걸까? 장애인의 약 99%가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낸다고 하는데,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아직 구축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은 사회적 기업 ‘소소한 소통’의 백정연 대표가 사회복지사로서 만났던 발달장애인들과 척수장애인인 남편과 생활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묶은 책이다. 그렇다고 모든 장애인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저자도 결국 비장애인이고 장애인 당사자라도 모든 장애인을 이해하긴 어렵다. 장애 요소는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같은 장애라도 정도가 달라서 사는 방법에 차이가 난다.

저자는 복지 활동을 하면서 가깝게 지내는 발달장애인과 배우자인 척수장애인의 불편함을 솔직하게, 그들이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한 길을 담백하게 들려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더 자주 만나며 서로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집마다 장애인이 있으면 좋겠어(99쪽).

저자는 남편에게 농담처럼 말한다. 물론 진심은 아니다. 하지만 ‘집집마다 장애인이 있다면 우리 사회의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바르게 변하리라는 생각’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건 사회복지사로서, 장애인 가족으로서 마주치는 사회가 장애인에게 차별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장애 인권과 감수성보다는, 아무리 입장을 바꾸려 해도 그려지지 않았을 장애인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장애인 가족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장애인 친구와 여행을 가거나 식사 약속을 잡을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직장에서 장애인 동료와 함께 일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일깨워준다.

15년 넘게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일터에서 수많은 장애인을 만나고, 장애인의 삶을 다 알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8년 전 척수장애인 남편과 결혼하며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 시절 내가 직접 경험해서 쌓은 모든 지식을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이 아니라 비장애인의 태도로 장애인을 돕는 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남편과 함께 살며 너무나 당연해서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고, 비장애인의 무지가 장애인의 일상 유지를 얼마나 방해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동시에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사회는 모두에게 더 좋은 사회라는 사실도 깨달았다(들어가는 말 중에서).

저자의 목소리는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고, 호소나 비난도 아니며, 슬픔과 고통을 묘사하지도 않는다. 알기만 해도 무엇이 의미가 있을지 담담하게 보여주고 멀게만 느껴졌던 장애인들의 삶을 가까이 가져와 준다.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건 언제나 공부보다는 소통이며, 작은 것으로 소통을 더 자주 할 때 몸이 만들어내는 경계가 무의미해진다고 말한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장애인의 삶을 공감하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사회적 차별에 반대하면서도 장애인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왔거나, 무지가 무관심으로 비칠까 봐 장애인과 소통하는 게 조심스러웠던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악의 없는 차별

“아이고! 이런 천사 같은 색시가 다 있나.”
하시며 내 손을 연신 쓰다듬는다. 남편 옆에 서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렇게 갑자기 천사가 되었다. 물론 한두 번 겪은 일은 아니다. 어느 날은 지하철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느 날은 동네에서 가끔 뵈었던 어르신께 비슷한 말을 들었다. 그날 그들의 표정과 말투에 악의는 없었으나 차별받은 사람은 분명히 있다. 남편과의 연애 소식을 주변에 알렸을 때, 축하보다는 염려의 말을 많이 들었다. 부모님 마음을 걱정하는 사람부터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까지 정말 단 한 명도 나의 연애를 온전히 기뻐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남편이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첫 번째 장애인 (가족) 차별이었다. 어떻게 만났는지, 그 사람의 어떤 면이 좋은지, 결혼 생각은 있는지 같은 질문을 예상하고 준비해 간 대답들은 쓸모없게 돼 버렸다(86쪽).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건강을 염려하는 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당장 아프지 않아도 다가올 질병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장애가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화나 질병과 달리 장애는 여전히 삶의 예외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장애인의 약 90%는 사고, 질병 또는 알려지지 않은 원인으로 인해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이 된 경우이다. 장애는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는 비극이고 가족의 고통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학교나 직장에서 장애인들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장애에 대한 논의의 기회도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따라서 장애인이 되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때는 조언을 구할 가이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장애가 무의미하게 되는 사회로

휠체어 사용자인 남편과 외출할 때와 나 혼자 외출할 때는 경로를 포함해 많은 것이 다르다. 목적지까지의 교통편이 다양하거나 자유롭지 않으며, 이동 시간도 평균 두 배 가까이 걸린다. 결혼 전 지하철은 충분히 훌륭한 대중교통이었으나 결혼 후 그 생각이 바뀌었다. 집에서 가까운 대림역은 2, 7호선 환승역이다. 사람들의 동선을 따라 환승 통로가 설계되어 있고, 비장애인은 역내 어디서든 쉽게 환승하며 두 개 호선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휠체어 사용자가 환승하려면 역 밖으로 한참을 이동해야 하며, 그 길에서 혼자서는 가기 어려운 경사로를 마주친다(93쪽).

주유소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서 휠체어를 꺼내 앉은 다음 차와 주유기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 주유 호스를 주유구에 꽂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앉는다고 해도 주유기의 버튼을 조작할 수 없다. 휠체어 사용자 기준으로는 너무 높이 있으니 손에 닿기는커녕 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 주유소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점점 ‘셀프공화국’이 되어 가고 있다. 영화관, 식당, 카페 등 키오스크로만 주문을 받는 곳이 점점 늘어난다. 남편은 키오스크 사용이 어렵다. 대부분의 키오스크가 서 있는 성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휠체어에 앉아서는 화면을 보기 어렵고(118~119쪽)

동료와 가족들의 이야기에는 장애인의 삶을 먼저 살아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녹아 있다. 장애인들의 직장과 가정은 어떤 모습인지, 어떤 문제에 직면했는지, 어떻게 해결했는지, 어떻게 지원이 필요한지,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새롭게 관계를 형성했는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등을 꼼꼼히 설명한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을 시작으로 누구에게도 불평하지 않고 버텨온 ‘하찮은’ 불편이 수면 위로 떠 올라 함께 해결해야 할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 많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이웃이 되어 같은 동네에서 함께 살고, 학교에서 같은 교육을 받으며, ‘턱’ 없이 자유롭게 일터를 오가는 사회, 경계를 허물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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