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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리와 보편적 가치 공유하는 협력파트너인가국권을 강탈하고 조선 민족을 말살해도 한반도 근대화만 이루면 되는가
허호익(전 대전신대 교수) | 승인 2023.03.06 14:31
ⓒ화면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고 하였다.

이웃나라가 세계사의 변화를 제대로 준비 하지 못한다 해서 강제로 국권을 강탈하고, 재화를 수탈하고, 문화를 말살하고, 이웃 나라 백성을 강제 징역과 징병에 동원하고, 목숨을 빼앗고 학살을 하는 등 전 방위적 민족 말살이 과연 정당한가? 강도가 피해자에게 문단속을 잘 못한 것을 탓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못나서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매국노 이완용의 논리를 되풀이 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일제강점기” 항목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일제강점기는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에 의하여 식민통치를 당한 35년간(1910∼1945)의 시대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에 그치지 않고 민족의 말살까지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가장 폭압적이고 무단적이었으며 악랄한 것이었다. 일제는 역사왜곡을 통한 정신문화의 개조, 한국어 사용 억제, 민족문화유산 파괴를 서슴지 않았다. 이에 맞선 항일독립투쟁은 전세계 약소민족의 모범이 될 정도로 완강하고 줄기차게 전개되어 광복을 이루어냈다. 일제강점이 우리 역사에 끼친 해독은 참으로 심대한 것이어서 남북분단까지 초래했다.”

이어서 일제의 만행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다.

“일제는 조선을 무장 해제시키고 5만여 명의 일본 군인과 헌병 순사를 전국에 배치하여 총검과 태형으로 다스리는 식민지 무단폭압통치체제를 만들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순사 온다”고 할 정도로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1910∼1918년간에 걸쳐 토지소유권을 재조사하고 토지가격과 지형을 조사한다는 이른바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여 국토의 64%를 약탈해 갔다. 일제는 1911년 8월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여 민족말살과 식민지교육을 위한 첫 조처를 자행하였다. 1910년 총독부 안에 ‘고적조사반’을 만들어서 수많은 고분과 산성, 고적을 파괴하고 수많은 출토품들을 약탈하여 일본으로 실어갔다. 일제는 한국을 일본공업발전을 위한 원료공급지와 독점 상품시장으로 착취하기 위하여 1910년 12월 29일 이른바 「회사령」을 제정 공포하였다. 1918년까지 일본인에게는 289개 회사설립을 허가해주면서 한국인에게는 일본인보다 훨씬 많은 설립신청을 하였는데도 63개 회사밖에 허가해주지 않았다. 1915년 12월 24일에 「조선광업령」을 제정한 결과 1918년에 가서는 일본인 소유의 광산 수입액은 한국인 소유의 300배에 달하였다.“

일본의 조선인 학살하면 간토 대지진 때 학살된 약 2만 3,058명을 떠 올리지만(<연합뉴스>, 2013.08.21.).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은 “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라는 글에서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국내외에서 한국인 5백여만 명이 목숨을 빼앗겼고 1천여만 명이 중경상을 입거나 실종되었다고 한다.

국가기록원은 일제시대 강제동원자 명부에 따르면 조선 국내지역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남양군도(현 미크로네시아) 등에 총 7,879,708명(국내 6,126,180명, 국외 1,390,063명, 군인·군속 363,465명)이 동원되었다. 강제동원은 노무동원(노동자, 군속, 근로보국대, 근로정신대 등), 병력동원(군인) 외에도 성동원에 해당하는 “일본군 ‘위안부’, 10만 명 이상”이 포함된다고 적고 있다. 원폭피해자와 사할린 등에 유배된 동포는 아직 숫자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피해 집계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 직후 직감적으로 위협을 느낀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은행이었다. 밤늦게까지 예금을 찾으려는 일본인들로 북새통이었다. 8월 17일 부산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배 한 척이 되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조선총독부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부인(전 아베 신조 총리의 할머니) 일행이 타고 일본으로 가던 이 배는 다대포항에서 남쪽으로 약 4.8km 떨어진 목도(木島) 인근에서 과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조선에서 모은 귀중품을 최대한 가져가려다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짐을 절반 정도 버린 뒤에야 항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군정은 본토로 돌아가는 일본인이 1000엔 이상의 현금을 가질 수 없도록 했으며, 소지품도 휴대가 가능한 보따리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부동산을 팔고 귀금속이나 비싼 문화재로 바꿔가기도 했다. 12월엔 일본 유력자들이 주식, 채권, 보험증서 등을 자전거 바퀴 튜브에 숨겨서 일본으로 밀항하려다 해안 경찰에 붙잡히는 일도 있었다.(<중앙일보> 2020.08.16.) 이처럼 한국인들은 36년 동안 자신들을 괴롭힌 일본인들을 순순히 보내 주었다.

반면에 강제징역에 동원된 조선인들이 해방이 되어 귀국할 때, 일본 전범 기업에서는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이 제공한 조선인들의 첫 번째 귀국선 우키시마호를 폭침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1945년 8월 22일 조선인 7000여 명(생존자 증언)을 태우고 일본 북동부의 아오모리현 오미나토 항을 출항해 부산항으로 향하던 이 배는, 24일 돌연 방향을 틀어 교토부 마이즈루 항으로 기항하는 중에 폭발과 함께 침몰하였고 승선한 조선인 대부분이 죽었다. 일본이 자신들의 전쟁 범죄에 관련된 조선인 강제 노역자들의 증인 제거 인멸 목적을 위해 고의적으로 폭침시켰다는 것이 우리 측의 주장이다. 2014년 일본 외무성에 의해 기록되어 보존하고 있었던 우키시마호의 탑승자가 8천여 명이 넘었다는 공식 문서가 공개 폭로되었다. 희생자와 유족들이 1992년 일본 법원에 국가의 배상청구 소송을 제소하였으나, 아직까지 이 사건의 진상조사나 일본 정부의 사과나 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위키백과 참고).

정철승 변호사의 페치스북 글에 의하면, 일본측 통계자료에 의하더라도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일본은 조선에 약 70억 엔의 자본을 투입하여 500억 엔의 재정적, 금융적, 물자적 수탈을 하였다고 한다. 이를 해방 당시의 엔 ‧ 달러 환율로 계산해보면 33억 달러가 된다. 1949년 이승만 정권이 한일협상을 위해 추산한 일제강점기의 피해액은 약 20억 달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권은 1965년 조선을 침략하고 강점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일본으로부터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금”이 아닌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3억 달러를 받고 3억 달러를 빌리는 조건으로 국교를 정상화했다. 피해 국가와 가해 국가 사이의 국교정상화의 당연한 전제인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없었던 것이다.

일제 식민지를 통해 조선의 근대화의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하는 소위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1905년 전후에 조선에 사는 조선을 사랑하는 민초라면, 국권을 찬탈하고, 토치를 강탈하고, 조선인을 노예로 삶아 5백여만 명의 목숨을 빼앗고, 8백만 명 가까이를 강제 동원하고, 약 70억 엔의 자본을 투입하여 500억 엔을 수탈하고, 한글 사용을 제한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이에 반대하는 기독교인 2000명을 투옥하고 200개의 교회를 폐쇄하고, 교회 헌금과 종각의 종을 국방헌금으로 강탈하고 마침내 조선 문화와 조선 민족을 말살해도 좋으니 한반도의 근대화를 위해 일본이 도와 달라고 요청할 것인지…

과거사는 더 들추지 않더라도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현재 일본에는 한국을 혐오하는 혐한문화가 대중문화로 자리 잡아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다. 일본의 언론의 기사 제목과 보도 내용 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노골적인 혐한 내용이 빈번하게 발견된다. 대형 서점에는 혐한 서적을 모아둔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한국이라는 병>, <문재인이라는 재액>,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야>, <망상대국 한국을 비웃다>, <뻔뻔한 한국인>, <웃길 정도로 질 나쁜 한국 이야기>, <만화 혐한류> 등. 그중 <문재인이라는 재액>,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야>는 무려 전 주한 일본대사가 쓴 책이고, <만화 혐한류>는 100만부가 팔렸으며, 친일 사관의 <반일 종족주의> 일본어판은 아마존 재팬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심지어 우익 시위대는 길거리에서 “난징대학살이 아니라 일본 내 코리아타운 대학살을 실행하자”, “한국인 여성은 성폭행해도 된다”,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다 같이 죽여라”라고 외친다(<한겨레신문>, 2019.12.06.) 이처럼 가해자가 피해자를 조롱하고 혐오하는 만행은 우리가 절대로 공유할 수 없는 가치인 것이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일본의 혐한 문화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대안 등에 관한 혐한 관련 저술이 102권이고 학술논문이 116편이나 있을 정도이다.(<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혐한’ 검색일 2023.03.05).

이처럼 과거의 잘못의 반성은 고사하고 지금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위안부 동원을 부정하고, 강제징용자의 배상도 거부하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우리에게 반도체 핵심 소재의 수출을 금지하고, 우리 바다와 수자원을 오염시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강행하면서도, 혐한을 공개적으로 부추기고 즐기는 일본은 좋은 이웃일 수 없으며, 우리와 보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좋은 협력자나 파트너가 될 수 없다. 그들의 전향적 태도 변화 없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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