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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양들의 침묵’과 영화예배설교와 이미지 (4)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3.03.07 14:56
▲ 영화 《양들의 침묵》

티스 군드라흐가 영화 ‘양들의 침묵’을 가지고 영화예배를 드린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예배에의 초대와 인사: 영화예배에 대한 간단한 주제설명
☑ 성서봉독: 롬 7, 14-24
☑ 찬송
☑ 영화에 대한 소개
☑ 영화보기: 첫 번째 영화장면/ 두 번째 영화장면/ 세 번째 영화장면(전체 영화상영 시간은 40분을 넘기지 않는다. 생략한 부분은 설명으로 보충한다)
☑ 영화에 대한 설교
☑ 찬송
☑ 공동기도
☑ 주기도문과 축도

악은 거기에 그냥 있다

티스 군드라흐는 영화 <양들의 침묵>이야말로 ‘현대인은 무엇으로부터 절망하는가?’, ‘악은 무엇이며, 악은 어떻게 극복되는가’라는 매우 종교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다시 말해 현대세계에서 하느님을 증명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한다.(1) 조나단 뎀(Jonathan Demme)의 영화, ‘양들의 침묵’에 숨겨진 종교적 중심주제는 악의 차원에 대한 질문이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악에 대한 오해, 곧 악은 단지 도덕적 문제라는 악에 대한 가시적 오해를 거부한다. 악은 선한 의지와 노력을 통하여 제어될 수 있다는 그런 오해를 거부한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악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라는 것을 언제나 알고 있었다. 선에 호소해도 건널 수 없는 심연, 이해와 분석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심연, 그것이 악이다.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우리는 먼저 미국 연방수사국 특수수사요원인 클라리스 스탈링(조디 포스터 역)을 주목해야 한다. 그녀는 남자도 견디기 어려운 강인한 훈련을 거친 매우 투쟁적이고 명예욕에 사로잡힌 수사관이다. 그런데 어느 날, 클라리스 스탈링은 잭 크로포드(스콧트 글랜 역)라는 지휘관의 부름을 받는다. 크로포드는 연방수사국에 있는 행태연구소의 소장으로 병적인 연쇄 살인자를 추적하고 있다.

크로포드의 사무실에서 클라리스는 처음으로 그녀의 적대자인 연쇄살인범 버팔로 빌(Buffalo Bill)을 만난다. 그가 버팔로 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그가 뚱뚱한 여자만을 골라 살해하고 그 여자들의 피부를 벗겨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라리스의 첫 번째 가제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심인물인 한니발 렉터 박사(안소니 홉킨스 역)와 심리학적인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렉터 박사는 교양있는 식인종이다. 그는 살해한 사람의 간을 포도주와 콩을 곁들여 먹어치운 인물이기도 하다. 렉터 박사는 버팔로 빌을 알고 있고, 그를 찾는 일은 일종의 대화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마치 글자 맞추기 게임을 하는 것처럼 그는 젊은 수사관 클라리스의 내면세계의 비밀을 꿰뚫어 본다.

렉터 박사는 클라리스를 돕는다. 그녀는 게임과 같은 렉터의 암시를 이해할 수 있지만 곧바로 버팔로 빌을 체포하지는 못한다. 그 사이 버팔로 빌은 상원의원의 딸을 납치하고, 또 다른 희생자는 시체로 발견된다. 피부가 벗겨진 희생자의 목에서 클라리스는 어쩌면 의도적으로 집어넣어진 고치를 발견한다. 이 나비의 누에는 - 영화가 진전되면서 후에 드러나는 것처럼 - 살인자가 버팔로 빌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유일한 흔적이다.

이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렉터 박사를 찾은 클라리스는 막연하지만 정확한 암시를 얻는다. 그러나 클라리스가 이 정보를 얻기 전에 먼저 그녀는 렉터 박살 하여금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의 세계를 보게 해야 했다. 클라리스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은 충격적인 경험을 렉터 박사에게 - 살인자를 체포하는 대가로 - 맡겨야 한다.

렉터 박사와 헤어진 후, 클라리스는 첫 번째 희생자의 부모를 방문한다. 그것은 렉터가 살인자는 매일 보는 것을 제일 탐낸다는 암시를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클라리스는 희생당한 여인의 옷장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옷을 발견한다. 그런데 바로 그 옷에 꿰매진 옷감의 모양이 살해당한 사람들의 도려내진 피부의 모양과 같은 것이 아닌가! 그는 죽은 여인들의 피부로 옷을 만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기가 증오하는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마치 나비가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듯이.

클라리스는 한 여자 재단사의 건너편 집에서 마침내 버팔로 빌을 찾는다. 범인의 집 어두운 지하실에서 전개되는 사건은 우리를 압도한다. 야간에도 볼 수 있는 안경을 쓴 범인이 점점 클라리스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아주 작은 실수, 곧 그의 권총의 방아쇠울을 당기는 소리는 그의 마지막 운명이 된다.

<양들의 침묵>에 대한 신학적 이해

티스 군드라흐는 범죄영화, 공포영화인 ‘양들의 침묵’에서 아래와 같은 신학적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째, 덴마크 출신의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죄렌 키에르케고르(Soeren Kierkegaard)는 ‘자기가 되고 싶은 것이 되지 못하는데서 오는 절망’과 ‘자기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 되는 데서 오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규정했다. 티스 군드라흐는 특수수사관 클라리스와 연쇄살인범 버팔로 빌이 사실 정신적으로는 자매관계에 있다고 본다. 이 두 사람은 키에르케고르가 지적한 각각의 절망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클라리스는 명예욕에 사로잡혀 뛰어난 경찰관이 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티스 군드라흐는 클라리스의 이런 모습을 ‘되고 싶은 자기가 되지 못하는데서 오는 절망’의 형식에 포함시킨다. 까닭은 그녀의 경찰로서의 참여의식, 질투와 명예욕은 - 렉터 박사의 분석에 의하면 - 영혼의 깊은 곳에 있는 양들의 침묵에 도달하려는 시도에서 입증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상원의원의 딸을 구출해낸다면 양들이 침묵할 것이라고 당신은 생각합니까?’라고 렉터는 질문한다. 클라리스는 갑자기 모든 것을 투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성공에 대한 동경과 명예욕을 납득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경험에 의해서 내적으로 자신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렉터 박사는 버팔로 빌이 클라리스와 정신적으로 자매관계에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말에서 암시한다:

“빌리는 처음부터 살인자로 세상에 온 것이 아닙니다. 그가 살인자가 되기 전에 그는 내면에 끝없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클라리스는 렉터 박사의 도움을 이해할 때 비로소 살인자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버팔로 빌은 자기 방식대로 양들의 외침소리를 침묵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버팔로 빌의 변신, 나비를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변신은 끔찍한 시도이다. 되고 싶지 않은 자기가 되는 데서 오는 절망을 그는 다른 사람의 피부로 만든 옷을 입음으로써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클라리스와 빌은 자매이다. 한 사람은 절망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한다. 성공과 선한 행동을 통해서 양들의 외침에서 해방되려고 한다. 다른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지 않으려는 절망에서 악을 행한다.

둘째, 죄렌 키에르케고르는 하느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이 세계에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 악이 들어오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악은 악을 통하여 이 세상에 들어온다.”

다시 말해 악은 아무런 원인도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악은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출처도 없이 그냥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악의 바로 이런 차원을 한니발 렉터라는 인물이 보여준다. 렉터는 천재적인 심리학자로, 그 영역에서는 가장 성공한 지도자로 존경받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 방임, 동작은 모두 하나의 게임일 뿐이다.

렉터는 자기 영혼의 깊은 곳에서 소리치는 양들의 외침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절망하지 않는 인간이다. 그는 자기를 변화시키고 싶은 아무런 욕구가 없는 사람이다. 렉터는 냉혹하고 잔인한 악마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고통과 고난과 충격을 가지고 논다. 그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살인하지도 않는다. 렉터는 순수한 악, 본래부터 존재하는 악의 양식이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도대체 렉터가 누구인지 또 무엇인지를 묻지만 대답을 주지 못한다. 렉터는 보이지 않는 악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악에 사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악이 이 세상에서 그에 대적할 다른 세력을 만나지 않는 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알고 있었다. 악에 대적하는 세력, 그것은 바로 악의 정반대 세력일 것이다. 그것은 순수하게 본래적으로 선하며, 아무런 의도도 없이 은혜를 베푸는 선이며, 내적인 고통이나 근거도 없이, 내부에서 들려오는 양들의 외침도 없이 생명을 사랑하는 힘,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 ‘양들의 침묵’은 현대세계에서 하느님을 증명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티스 군드라흐는 말한다.

신학과 설교의 풍요를 위해

그리스도교는 신의 형상화를 금지하는 유대교 전통을 수용했다. 신의 형상화 금지는 신을 인간적 표상 안에 가두려는 인간의 욕구로부터 신을 자유케 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인간의 자유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신의 형상화 금지는 결과적으로 신에 대한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을 자극했고, 그것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과 종교예술의 풍요로운 발전에 기여했다.

나는 신학과 설교의 보다 풍요로운 발전을 위해서 비언어적인 표현양식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일 때가 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미술, 건축, 영화 등 시각예술과의 대화가 가능한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는 현실적 공간에서만이 아니라 가상공간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다. 어쩌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이미지의 세계는 신학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신학적 도전일 것이다.

미주

(1) 티스 군드라흐, “영상-신화-영화: 영화예배를 위한 한 시도”, 「신학사상」 90호, 88.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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