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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하나님의 충만하심에 이르기를(출애굽기 40,34-35; 에베소서 3,14-19)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3.03.09 02:01
▲ 「The Tabernacle that the Israelites Built」 ⓒWikipedia

우리는 하나님을 부르며 그의 이름을 자주 입에 올립니다. 하나님을 부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현대 사회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로 전개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한계를 모르고 우주를 들여다보고 우주 소유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마치 자식이 언젠가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떠나고 그 자신이 부모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품에서 생성된 인간도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윤리적 내지 신학적 판단을 잠시 내려 놓고 사실만 본다면 그것이 에덴 동산을 나오게 된 인간의 길인 것같습니다. 부모님의 존재는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데,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리 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인간의 길은 기후변화로 근본적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 기후위기 안에서 질병과 전쟁과 자연파괴 그리고 에너지 딜렘마 등에 의한 위기가 중첩되고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인간의 길이 지속될 수 있는지 여부조차 불확실해진 현재입니다.

호세아는 일찌기 인간의 불의가 자연 파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던 적이 있습니다(호 4,1-3). 그는 불의의 원인을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재에서 찾습니다. 인간의 길이 하나님 ‘없는’ 곳에 이르렀을 때 진실과 인애는 자취를 감추고 불의가 지배하고, 그 결과는 다른 모든 생명들에까지 미칩니다. 지구적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재가 인간의 길이 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일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이길래 호세아는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창조 세계에서 인간의 위치와 책임을 아는 것이라고 오늘의 관점에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인간을 전제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인간과는 양립할 수 없는 전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인간은 이 땅의 위기를 가속시킬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에 대해 증언하는 것은 우리의 현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미래에서 새로운 인간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로 나타낸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격적일 뿐 아니라 친밀한 관계임을 뜻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와의 관계를 대표하는 말들 가운데 하나는 가부장적이란 말입니다. 그 그늘 속의 아버지라는 말은 자주 권위적이고 고집불통적인 태도를 연상시키고 때로는 언어 또는 신체적 폭력성도 함축합니다. 그런 아버지와의 관계를 좋아할 사람들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럴까요? 아닙니다. 하나님도 한편 엄격한 분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사랑입니다. 양자는 분리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의 엄격함은 사랑의 인도를 받고, 사랑은 그 엄격함 속에서 목표를 발견합니다. 새로운 존재 새로운 세상이 그 목표입니다. 그래서 엄격하신 하나님은 동시에 자비로운 아버지이며 위로의 하나님으로 일컬어지고(고후 1,3) 그의 자비를 본받으라는 권고도 가능해집니다(눅 6,36).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목표에 동의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삶이 현재의 위기들을 극복하는 단초가 된다고 감히 단언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놀라운 가능성을 일러줍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충만하심에 이르도록 충만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은 우주 전체를 충만케 하고도 남을 충만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충만케 하셔서 그의 충만하심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무엇의 그것들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과 그리스도가 함께 개입하십니다. 그 결과 우리는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 안에 터가 놓입니다. 그것들은 바로 그러한 우리를 있게 한 이 사건의 너비와 길이, 높이와 깊이가 아닐까요? 그것들을 우리는 우리의 속사람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왜소해 보여도 결코 왜소하지 않고, 힘 없어 보여도 결코 힘 없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결코 부족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보다 더 넉넉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건이 우리를 사랑 안에 뿌리박고 터잡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충만함에 초대하십니다. 그 충만함에 들어가도록 우리의 속사람을 강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우리를 위해 우리에게 일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이 온 우주에 가득함을 보고 우리는 감탄하고 외경하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그 풍성함을 따라 우리에게 일하십니다.

출애굽기 본문이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적절할 지는 모르겠으나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기 위해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자세한 모형을 알려주십니다. 모세가 성막을 완성했을 때의 일입니다.

구름이 성막을 덮고 야훼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습니다. 구름에 가린 성막을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그의 영광으로 그가 성막 안에 계심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때문에 모세조차 성막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그토록 놀라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가 그 앞에 살도록 그 성막을 채웠던 그리고 우주에 가득한 그 영광의 충만함으로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 놀라운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고 우리를 그의 충만함에 이르게 하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이고 우리 앞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지금 부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꾀하고 그 목표에 다가간 시대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사변적인 독립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와 미래를 위협하는 각종 위기에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대응할 수 있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해진 새존재로 새세상을 이루어가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해진 모든 사람들이 모여 어떤 장애물이든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위기들을 극복하기 위한 행진에 하나님이 앞장 서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을 통해 능력으로 너희 속사람이  강해지고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기를 빕니다.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모든 성도와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떤지 깨닫고 인간의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에 ‘이르도록’ 충만해지기를 빕니다(에베소서 3,16-19).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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