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칼럼
평등의 원칙이 곧 신앙의 원칙입니다(성)소수자와 그리스도교 15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 승인 2023.03.10 15:16

1.

이 연재 칼럼의 11월 연재분에서 한 동성 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취소 처분 취소소송 이야기를 소개했었습니다. 그 칼럼에서 언급한 대로 1심에서는 동성 부부는 가족법상 부부가 아니므로 피부양자 등록을 받아줄 수 없다는 이유로 인해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달의 2심에서는 반대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습니다. 역시 11월 연재분에서 언급한 대로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을 평등의 원칙에 따라 다루겠다고 선언해서 뭔가 다른 판결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했었습니다.

판결의 내용은 건강보험공단 피부양자 제도는 자신의 노동이 없는 사람들의 건강보험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취지인데, 한 사람의 수입으로 다른 사람이 부양을 받는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을 때 부양받는 사람이 법률혼 배우자나 사실혼 배우자인 경우와 동성결합 상대방인 경우가 어떻게 달라서 전자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후자는 인정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건강보험공단이 가족법상 부부가 아니다라는 이유만 댈 뿐 다른 이유를 대지 못하기 때문에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판결이었습니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기 때문에 최종확정이 된 것도 아니고 판결 내용을 뜯어 보면 명암이 약간 교차한다 싶은 지점도 있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생활공동체의 존재를 인지하고 국가/준국가기관이 이 공동체들을 평등의 원칙에 따라 다루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만, 결국 부부와 가족이라는 범주가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어서 가능한 판결이었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입니다.

2.

위의 판결에 대해서 뜯어보자면 할 이야기가 더 많겠습니다만 이 정도로 접어 두고 위의 판결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다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이 연재칼럼의 초반부에 나왔어야 할 이야기를 뒷북친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성소수자 혐오세력들은 흔히 ‘동성애’에 대해 이런 저런 험담을 합니다. 어떤 험담은 아예 사실이 아닌 것도 있고, 어떤 험담은 티끌만한 사실을 과장한 것도 있습니다. 어떤 험담은 말 자체는 사실인데 엉뚱한 의미를 갖다붙이는 것도 있고 등등 가지각색입니다.

그들은 이런 험담을 하면서 ‘동성애’는 이렇게 나쁜 것인데 이런 동성애를 비판할 자유를 뺏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하느냐고 강변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그들이 입에 많이 담는 말이 “동성애 독재”라는 것이지요. ‘동성애’에 대해 비판을 하면 차별과 혐오라고 입을 막아 버리니 독재 아니냐 뭐 이런 이야깁니다. 이 ‘동성애’가 주로 ‘남성 동성애’에 한정된다는 점이 좀 웃기다는 건 짚고 넘어갑시다.

방금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들의 험담은 거짓과 과장과 엉뚱한 해석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남성) 동성애 = AIDS”라는 이야기를 버젓이 하고 다니면서 여전히 “동성애” 반대의 중요한 근거라도 되는 양 말하고 다닐 정도니까요. 그래서 그 거짓과 과장과 엉뚱한 해석에 대한 반박도 이미 많이 나와 있고 거기에 대해서 굳이 여기서 언급할 이유는 없을 듯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짓과 과장과 엉뚱한 해석에 대해서 반박하는 것, 즉 너희들 혐오세력의 이야기는 틀렸다 이렇게 말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란 생각이 서두에서 언급한 평등의 원칙이란 이야기를 곱씹다 보니 드는 겁니다.

3.

“(남성) 동성애 = AIDS” 이야기를 다시 해 보겠습니다. 이 등식이 틀린 등식이라는 거야 앞에서도 말한 바입니다만,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설령 저 등식이 맞다고 한들, 그래서 뭐 어쩌라구요?

AIDS에 걸렸건 걸리지 않았건, 그 사람이 (남성) 동성애자건 아니건, 그 사람이 시민이라는 점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병에 걸렸다면 치료를 받으면 되고 받아야 한다는 점도 다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남성) 동성애자가 AIDS에 많이 걸리건 적게 걸리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그 의미는 동료 시민을 혐오하는 게 맞다는 뜻이라고 말한다면 그것 이상으로 정말로 혐오스러운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혐오세력이 동성애에 대해서 여러 가지 험담을 할 때 그것이 사실은 성소수자에 대한 자격 시비라는 것입니다. 감히 동료 시민에게 너희들이 시민인지 아닌지 자격 시비를 걸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자격 시비에 맞서는 가장 정당한 대답은 그 자격 시비가 정확하다, 아니다를 따지는 것보다는 그런 자격 시비를 당장 그만두라고 하는 것일 터입니다. 그것이 “평등의 원칙”일 테니까요. 그리고 이런 자격 시비가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차이를 존중한다”는 말은 너는 그렇게 산다니까 인정해 준다는 관용의 태도를 넘어서, 그런 자격 시비를 당장 그만두라고 함께 이야기하는 연대의 태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서에 동성애는 죄라고 말했으니 그것이 “신앙의 원칙”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분이 혹시 이 글의 독자 중에 있으신가요? 그 “신앙의 원칙”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언행이 험담과 거짓과 과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런 자격 시비, 즉 성서는 물론이고 성서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저것은 죄라고 말할 언행 밖에 없다면, 그 “신앙의 원칙”이 죄를 짓게 만드는 거라는 말이 되겠지요. 그러면 그게 무슨 “신앙의 원칙”이겠습니까. 오히려 동료시민인 성소수자와 함께, 때로는 교회 안에서도 “평등의 원칙”에 따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원칙”이지 않을까요.

이번달 연재칼럼을 쓰던 도중에 고 임보라 목사님 추모제 장소였던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장소 대관을 취소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같은 기장 교단의 일부 목사들이 대관 취소 압력을 넣어서, 신학대학원 측에서 추모제 중 성소수자 공연을 축소 또는 취소하라는 조건을 내걸었고 그 조건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명색이 신학대학원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게 참담할 뿐만 아니라 그런 결정이 같은 교단의 일부 목사들의 압력으로 추동되었다는 것도 참담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참담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평등의 원칙과 신앙의 원칙에 따른 연대를 더욱 굳게 할 것을 다짐할 뿐입니다.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