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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코로나19 문명 전환기의 생명망 목회와 돌봄 마을』 (나눔사, 2022) (28)
이원돈 목사(부천새롬교회) | 승인 2023.03.21 01:26
▲ Richard Parkes Bonington, 「Christ preaching」 (c.1800) ⓒWikimediaCommons

지금 한국교회는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산업화 시대의 성장 신화가 붕괴됨으로 인해 탈성장 시대의 도래와 함께 교회 성장의 둔화 및 위축을 경험하고 있다. 그간 한국교회의 산업화 시대의 결과물인 대형교회 생태계의 독주, 이에 따른 여러 위기는 동시에 작은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의 태동을 불러오고 있다.

이에 한국 사회와 교회 생태계의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써, 한국 교계의 진보 진영에서 2010년 한국교회 생명 평화 선언과 함께 일련의 새로운 교회 생태계에 대한 신학적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신학적 반성들은 지역 에큐메니즘의 새로운 목회 신학적 주제와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지역 에큐메니즘에 기초한 생명망 목회의 가능성을 보이면서 2013년 건강하고 대안적인 “작은 교회 박람회”로 그 꽃을 피우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한국사회 생태계의 변화와 교회 생태계의 변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은 한국 사회의 작은 교회의 등장과 작은 교회 운동의 지역적 표현으로서의 ‘마을교회’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생태계의 등장을 더욱 분명하게 주목하고 연구하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되었다.

예수의 마을 사역

우리는 예수의 마을 사역의 성서적 출발점을 마가복음의 말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막 2장 22)의 의미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하려 한다. 예수가 요한의 광야에서 갈릴리 마을로 들어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일성은 예수가 이 헬라 시대 유대와 로마로 대표되는 맘몬적 세상에 대한 대안을 바로 갈릴리 마을 운동에서 찾은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헬라 시대 유대와 로마 탈출의 핵심이 바로 갈릴리 마을이라는 것이다. 우선 예수의 갈릴리 사역은 근본적으로 마을 사역이다. 예수의 최초의 선교 사역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대교 회당에서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은 예수는 회당에서 나와 베드로의 장모의 집이 있는 마을로 들어갔는데 (마가 1;21)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막 1:33)라는 것이다. 

이는 지금 새로운 공동체가 마을의 베드로의 집을 중심으로 탄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회당이 아니라 회당 밖 갈릴리 가버나움 마을의 베드로의 장모의 집이 바로 예수의 선교 사역의 새로운 선교의 베이스캠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가복음 1장에서 베드로의 장모의 집이 갈릴리 가버나움이라는 마을에서 새로운 선교적 거점이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마가복음 2장에 이르러서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베드로의 장모 집 앞이 회당의 대안으로 새로운 치유장소로 등장하였다면 이어서 2장 13절에 베드로의 장모의 집에 이어 새로운 공간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알패오의 아들 레위의 집이 새로운 밥상공동체와 하나님 나라 잔치의 거점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막 2:16)

이처럼 예수의 새로운 하나님 나라 마을 생명 운동은 우선은 회당에서 나와 베드로의 장모의 집에서 각색 병든 자를 고치며 그 마을을 선교의 베이스캠프로 삼으시고, 알패오의 집 앞에서 죄인들과 세리와 밥상공동체를 만들며 사회적으로 차별 고립 배제된 문둥병자를 고치면서 시작되고 일어나게 된다.

예수는 갈릴리 마을에서 문둥병자와 중풍 병자와 같은 고립되고 마비된 심령들을 치유하시고, 세리와 죄인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차별과 배제를 치유하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의 불안 증폭과 공포를 날려버리시며 마을에서 하나님 나라의 치유와 잔치를 일으키시며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던 마을을 생명과 잔치의 생태계로 만든 마을의 새로운 생태계의 중심이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2장 22절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라는 말씀은 회당에 갇힌 유대교를 향하여 이제 마을로 나와 베드로 장모의 집을 온 동네가 모이는 치유의 중심으로 삼고, 알패오의 아들 세리의 집을 밥상공동체로 삼으면서, 이제 다른 마을로 가자는 선교적 마을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예수의 마을 운동은 마을 한복판에서 낡은 지배의 판과 규정을 하나님 나라의 협동과 자립과 생명이라는 새로운 신앙의 상상력으로 갈아엎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그림과 지도와 대본을 만들어낸 일종의 마을 협동과 자립과 공생의 생명 운동이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도 갈릴리의 마을 한복판에서 귀신을 내쫓고 치유하신 예수, 고립을 뚫고 협동과 연대하신 예수, 젊고 유쾌한 밥상공동체를 만드시면서 불안 공포마케팅을 날려버린 춤의 왕 잔치꾼 예수를 이제 마을에서부터 다시 만나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교회사에 나타난 작은 교회 운동

우리가 잘 알다시피 초대교회는 30에서 50명 규모의 작은 가정교회 혹은 지역교회이었다. 이 초대교회의 작은 교회의 특징을 이정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AD 4세기 이전까지 로마 곳곳에 자리한 교회들은 하나로 획일한 표준 신조(성서)를 갖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예수의 삶을 근거로 다양하게 발전되었을 뿐이다. 역사적 형태는 다양(분열)하나 예수 삶에 중심을 둔 까닭에 언제든 지향점이 같았고 풍요로웠다. 다음으로 참된 신앙의 시대(H. 콕스)로 불리는 초대교회 시기 오늘날 통용되는 사도직이란 개념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주어진 은사(카리스마)들만이 존재할 뿐 수직적 성직 제도는 아주 후대의 산물이다.”

이정배 교수의 이 말씀은 초대교회란 획일적이고 표준적인 대형교회의 물결 아니라 다양한 은사로 특이하고 창조적 마을교회로 만개 되어간 것이요 30~50명 지역 작은 교회의 다양한 카리스마 은사 사역이 꽃피운 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비밀이라는 것이다.(1)

또한 종교개혁도 성공한 루터와 칼빈 만의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12세기부터 알프스 끝자락에 숨어 지내면서 비밀 성서 출판소를 차려 인쇄하다 화형당하고 박해당한 왈도파나 얀후스와 체코 형제단 등등의 지역과 마을의 작고 다양한 종교개혁 전통이 창조적으로 통합된 사건이다.

이러한 교회사적 반성의 상황에서 <생명과 평화를 여는 2010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 이후 한국교회의 일각에서는 본격적으로 “한국교회 생태계의 위기” 문제를 생명 신학적 담론의 관점으로 성찰하기 시작하였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생명 신학적 담론은 2013년 작은 교회 박람회를 거치며 “탈성장시대, 대형교회의 신화 붕괴”와 “가나안 성도의 출현” 그리고 대형교회 생태계 이후 “작은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의 등장”을 예고하는 신학적 토론 과정을 가졌다. 그리고 다섯 번의 작은 교회 박람회를 거치며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에 이르게 된다.

특별히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에 두고 열리는 5회째 작은 교회 박람회에서는 그동안 대형교회가 주도했던 한국교회의 성장중심의 교회 성장 운동이 이제 산업화 시대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면서 탈성장 탈성직 탈성별이라는 세탈의 교회론으로(2) 진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탈성장 탈성직 탈성별의 세탈의 교회론은 무엇보다도 지금 지역과 마을에서 작은 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마을교회의 생태계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종교개혁의 교회론적 반성과 실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새로운 생태계로 열리기 시작하였다.

한국 기독교의 마을 운동

탈성장 탈성직 탈성별의 세 탈의 교회론의 구체적 전개를 위해 지금 지역과 마을에서 작은 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마을교회의 등장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 우선 한국 기독교의 역사 안에 나타난 마을 운동의 역사로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정경호 교수는 최근 영남신학교에서 열린 마을목회 세미나에서 마을 전체를 민족 교육과 살림 공동체로 만들어나가 탁월한 민족 운동가를 키우고 독립운동의 기지 역할을 했던 북간도의 명동촌이야말로 한국적 마을교회의 원형이라는 인상적 강의를 하였다.

이러한 북간도의 명동촌 이후 한국 기독교의 역사 가운데는 일제강점기 오산학교 졸업생 중 무교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1958년 충남 홍성 홍동면에서 풀무학교와 풀무공동체를 시작됐다.(3)

그리고 1968년 빈민선교실무자훈련으로 시작되어 1971년 9월 수도권 도시선교위원회의 창립과 활동으로 본격화된 연세대 도시문제 연구소의 신설동, 광주대 단지 등 20여 곳의 빈민 지역에서의 선교활동도 중요한 한국교회의 마을 운동으로 꼽을 수 있겠다. 

70년대의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의 활동은 구체적으로 성남 주민교회(이해학 목사)와 동월교회(허병섭 목사)의 도시 선교활동으로 이어지면서 한국 기독교의 귀중한 마을 운동의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이러한 도시 선교활동은 80년대의 민중교회의 탁아소 공부방 등 마을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교회와 마을 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를 연결하며 마을과 도시를 잇는 평생학습 공동체와 마을만들기의 꿈으로 이어져 나간다.

최근 이러한 마을 운동의 흐름은 수유리 지역의 아름다운 공동체와 전국적인 마을만들기 운동과 연결된 도시형 농촌형 마을교회들의 등장으로 연결되어 마을교회와 마을만들기의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2016년 3월 11일 예장 총회 지역 마을목회 컨퍼런스에 참여한 예장 마을만들기 네트워크 목회자 일동으로 마을목회 선언문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마을만들기와 같은 지역과 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 생태계가 등장하고 있고 이러한 새로운 사회 생태계에 기초한 새로운 마을교회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미주

(1) 이정배, “한국교회, 작은 교회에서 답을 찾자” (에큐메니안, 2013.09.26.).
(2) 김영철, “민중교회운동을 넘어서 작은 교회 운동으로”(미발표 원고), 7.
(3) 김건우, “무교회주의와 지역공동체” (주간동아, 2015년, 10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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