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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습니까상실, 그 후(수1:10-18, 롬13:11-14, 마4:18-22)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03.21 01:24
▲ Christoffer Wilhelm Eckersberg, 「The Israelites Resting after the Crossing of the Red Sea」 (1815) ⓒPublic Domain

1. 떠나야 삽니다

모세의 인도 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떠나 광야에 들어섭니다. 비록 노예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집트는 풍요의 땅이었습니다. 힘들고 고달프고 핍박당하고 마음아프지만, 먹고 마시는 것 몸의 양식은 풍부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광야로 나온 겁니다. 힘든 길을 선택합니다. 눈앞의 풍요로운 물질보다, 자유와 해방이 더 높은 가치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모세를 통해 자신들을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더 귀한 기쁨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 생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그물과 배를 던져버렸습니다. 세금 계산을 위해 알을 튕기던 주판도 던져버렸습니다. 가족도 버리고 나섰습니다. 비록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식민지의 평민들이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나름대로의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백성들이 생업을 버려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겁니다. 더 힘든 길을 선택합니다. 핍박의 길을 선택합니다.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복음이 더 아름다운 가치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개인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보다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것이 더욱 귀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아는 온갖 풍부한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아무 부족함 없이 잘 살고 있지만, 그렇게 영원히 뱃속에만 있을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아이는 엄마 뱃속을 벗어나야만 합니다. 때가 되었음에도 자궁을 벗어나지 않으면 아이는 오히려 그 곳에서 죽게 됩니다.

이집트가 그렇습니다. 이집트는 한때 안락하고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요셉이라는 통로로 이집트에 들어온 이스라엘을 이집트는 포근하고 편안하게 감싸 안아 보살펴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장성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나야 할 때가 되자, 이집트는 산고를 겪는 어머니와도 같이 온갖 진통을 하며 이스라엘을 토해냅니다. 모세가 그 길을 열자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터뜨리고 광야로 나옵니다.

이스라엘도 그렇습니다. 가나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온 이스라엘 민족의 보금자리였습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때가 가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복음의 시대가 열리게 되자, 예루살렘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벗어나야 할 옛 고향이 되어버립니다.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면, 율법을 탈피하지 못하면, 옛 계약을 초월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때가 찼다고 선포하시자, 갈릴리 바닷가를 시작으로 그 보금자리를 박차고 나오기 시작합니다.

천국인 것만 같았던 곳을 벗어나야 비로소, 사실은 그곳이 나를 제한하고 가둬두던 곳임을 깨닫게 됩니다. 떠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떠나야 비로소 깊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이제야 알았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떠나야 비로소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2. 인도해줘야 삽니다

그러나 그렇게 떠나야만 하는 그들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떨치고 나오지 못합니다. 그들을 깨닫게 하고 깨우치게 하고 선뜻 일어서서 따라 나서게 한 사람, 인도자가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겐 모세요, 제자들에겐 예수님입니다.

이집트에서의 삶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동시에 풍요롭고 부요한 곳이기도 해서 그들은 갈팡질팡합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고난과,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풍요가 공존하는 곳에서 그들은 혼란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를 죽이는 것과 나를 살리는 것이 공존하는 곳에서, 나를 살리는 것이 무엇이고 나를 죽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구분해 내어야 하는데, 그 깨달음이 그 지혜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그냥 놔두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도자를 주시는 겁니다. 인도자를 통해서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머물러 있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떠나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을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아요. 하나님께서는 친히 인도자를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그 인도자를 통해 새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따라나섰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삶은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인도해주지 않으면, 가르침을 주지 않으면, 아이는 결코 어른이 되지 못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는커녕, 하나님을 자기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자기의 욕심을 욕망을 채워주는 보조자 취급을 합니다. 자기 자신과 세상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은 고사하고, 목소리를 높여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고 욕망을 충족하며 자기 배를 불리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선과 악이 혼동되는, 생명과 죽음이 혼동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죄 많은 삶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이집트 같은 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지한 죄에 사로잡혀 종노릇 하면서, 나는 풍요롭다고, 나는 안전하다고, 나는 위대하다고, 나는 성공했노라고, 공허한 자랑을 외쳐대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는 인도자가 필요합니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애굽 땅을 떠나 광야로 들어가야야 한다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이끌어 줄 모세가 필요합니다. ‘갈릴리 호수를 벗어나 배와 그물을 던져버려야만 하나님의 복음을 살아갈 수 있다고, 십자가를 지고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만 하나님의 구원의 끝을 경험하게 된다고’ 그렇게 인도해 줄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에 인도자가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해 달라고 가나안으로 인도해 달라고 우리의 십자가를 질 수 있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도 중에 만나주시고,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고, 성령으로 계시해 주십니다. 모세를 보내시고 예수님을 보내셨던 바로 그 똑같은 사랑으로, 우리도 인도해 주시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구원의 길입니다.

기도는 바로 그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내 소원 말하는 게 기도 아닙니다. 내 욕심 부탁하는 건 기도가 아닙니다. 물론 그런 간절한 나의 소망을 주님 앞에 다 토로하는 것도 맞는 것이지만, 그것이 기도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소망의 토로를 뒤로 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온전한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엎드리게 되는 것, 그것이 진짜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를 우리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잃어야 삽니다

자, 그런데요. 성서를 좀 더 읽어보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주시고 해피앤딩이 아니에요. 모든 것이 다 잘 끝났다가 아니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모세와 아론을 잃게 됩니다. 사십년 동안이나 이끌어준 인도자를 잃은 겁니다. 눈앞에 가나안 땅이 펼쳐져 있는데,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기 직전인데, 덜컥 인도자를 잃은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절망에 빠집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온백성이 호산나 반기면서 예루살렘에 당당하게 입성하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새 세상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는데, 웬걸 덜컥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셔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실 것이라고 믿었는데, 예수님을 잃은 겁니다. 제자들은 절망에 빠집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게 됩니다.

상실은요, 엄청난 고통과 아픔과 방황을 가져다줍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거기에 의지하고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삶의 전부가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일이 모세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삶이 모세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모세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어떻게 하면 될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간구해야겠는데, 간구하는 것도 모세가 있어야 해요. 모세가 없으니까 기도도 못해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모세가 없으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데, 아론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예배할 수도 없어요. 이제 모세를 잃고 아론을 잃고 나니까, 하나님을 잃게 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와서 하나님을 가까이 알게 된 것만 같았는데, 예수님을 잃게 되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만 의지했는데, 예수님이 없으니 나는 또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참 야속하죠? 이렇게 데려가 버리실 거면 애초에 주시지를 말던가... 그렇죠?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잃어야만 진짜로 살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시는 상실의 경험이야말로, 자라나는 어린 신앙을 완전케 하시는 마지막 시험과도 같습니다. 신앙의 인도자를 통해서 신앙이 자라나기 시작했다면, 그 인도자를 떠나야 나 홀로 설 수 있는 굳건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에게 상실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상실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신앙을 인도해주던 인도자를 떠나서 스스로 바로 서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함께 되는 기쁨을 누리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 상실을 넘어서야만 하나님을 진짜로 직면하게 됩니다. 상실을 넘어서지 못하면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하나님일 뿐입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누군가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일 뿐입니다. 나의 주님이 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누군가의 주님이신 하나님일 뿐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말 걸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하나님께 말해달라고 부탁하고서 문 밖에서 서성거릴 뿐입니다. 모세를 떠나보내야 모세의 하나님을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자기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 나라를 전해 들었지만, 내가 나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나라를 내가 살아내지 못하면 그것은 이야기 속의 환상에 불과합니다. 내게 허락된 십자가를 짊어지기는커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멀찍이서 구경만 할 뿐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보내야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보내야 나의 십자가를 질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을 떠나보내야 나의 하나님 나라를 살게 되는 것입니다.

4. 상실을 이겨내야 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상실을 잘 살아내고, 잘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 상실의 과정 속에서 성장합니다. 상실에 부딪혀서 좌절하고 포기하고 무너져 버리면 이제까지의 모든 수고가 헛되게 됩니다. 사십년을 살아온 광야가 헛되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그 시간들이 헛되게 됩니다. 상실을 아름답게 겪어내고 이겨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 속 사람들이 바로 그 상실을 아름답게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모세를 잃은 백성들이 있습니다.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스승을 잃은 여호수아가 있습니다. 성서는 그들이 이 상실을 어떻게 살아내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상실을 넘어 하나님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11절을 보니까 여호수아가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전쟁 준비를 하십시오. 사흘 안에 요단강을 건너가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차지할 것이다.” 그랬더니 백성들은 또 이렇게 대답합니다. “좋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명령을 듣겠습니다. 모세에게 복종했던 것처럼, 당신께 복종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당신과도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당신은 굳세고 용감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수아는 상실을 경험한 지도자입니다. 이스라엘은 상실을 경험한 백성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상실 앞에서 절망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잃었지만, 이제 당신이 모세 같은 지도자가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백성들이 이렇게 여호수아를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모세를 잃었지만, 당신들은 그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여호수아도 이렇게 백성들을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주던 이가 이제 없다.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앞으로 나가자. 이제 우리가 직접 하나님을 대면하자.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고 우리에게서 성취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자.’ 이렇게 결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신앙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크나큰 상실을 경험하자, 비로소 바로 서게 된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껏 배워왔던 것을 돌아보게 됩니다. 홀로 서기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자신 있는 것과 자신 없는 것,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과 도움을 받아야 할 것, 더 힘써야 할 것과 더 열심을 내야 할 것을 냉정하게 판단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백성들 앞에 선 여호수아와 같습니다. 무지한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띤 지도자입니다. 엄청난 카리스마와 지도력으로 백성들을 이끌던 전임 지도자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제 내 손으로 내 힘으로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와 같이 내 삶을 스스로 인도해가야 하는 내 삶의 인도자입니다. 내 삶을 내 몸을 내 육신을 내 이웃을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하는 주체자입니다.

또한 우리는 모두 여호수아 앞에 서 있는 백성들과 같습니다. 풋내기 지도자와 함께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무지한 백성들입니다. 여호수아를 믿고 따라야 하는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이며 백성입니다. 모세를 떠나보낸 이들입니다. 광야와 가나안 사이에 끼어있는 존재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인가, 좌절하고 무릎 꿇고 광야에 엎드러져버릴 것인가, 기로에 선 존재입니다. 상실을 초월한 백성이 될 것인가, 상실 앞에 절망한 백성이 될 것인가, 기로에 선 존재들입니다.

5. 상실에서 시작하는 신앙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신 후, 그 모든 것을 상실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또다른 은혜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던 모든 것이 사리지는 것, 그것이 옳고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왔던 것이라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처음의 가난한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로 내 스스로 나가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지막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커다란 상실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신앙에 크나큰 좌절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붙들고 있던 모든 것을 상실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것을 잃고 빈손이 되고 가난한 존재가 되어 나의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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