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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신호노다 마사아키 선생 강연 참관 후기
박상규(새길교회 사회사역위원회 위원) | 승인 2023.04.11 01:36
▲ 노다 마사아키(野田正彰)은 일본인으로 일본에서 겪은 참사를 대하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지켜보며 일본 사회와 유가족의 경험을 나누었다. ⓒ김혜은(새길교회 사회사역위원회 총무)

새길사회사역위원회는 3월의 마지막날 안산에 다녀왔습니다. 얼마 전 두 번에 걸쳐 슬픔 공부 세미나를 가졌던 책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의 저자가 안산에 강연 차 오신다는 얘기를 홍인식 원장님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연에 우연의 연속이었습니다. 참사를 겪은 이들을 위로하고 공감하기 위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과 슬픔을 겪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보자는 차원에서 이 책을 골라 읽고 세미나를 가졌는데, 마침 공부를 마치자마자 저자가 직접 한국에 오신다니요. 마치 우리의 책거리를 축하해주려고 하신 것처럼.

강연 제목은 <내 아이를 대신해서 산다: 참사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통역을 통해 전달되다 보니 내용 파악에 약간 미진한 점이 있었지만, 강연 내용을 다시 들여다보니 일맥상통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노다 선생은 세 가지 이야기를 전하셨는데, 요컨대 (1) 상(喪)을 치르는 과정이란 유족이 ‘죽은 이의 남긴 뜻(遺志)’를 생각하며 일어서는 것, (2) 경청은 유족의 처지를 깊숙이 파고들어 공감하고 ‘생각하는’ 것, (3) 유족/피해자를 잘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기에 전쟁, 대형 사고, 재해, 민주화운동 등의 희생자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간결한 텍스트로 만들어 학교에서 교육을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우리가 잊을 만하면 듣는 말이 ‘아직도 세월호 얘기냐?’, ‘이제 저 리본 좀 떼어버리면 안 되나?’입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만큼 마음에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진실규명을 위해 단식 투쟁하는 유족들 앞에서 피자나 치킨을 폭식하는 퍼포먼스를 하며 약자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하는 끔찍한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어떻습니까? 아예 정부가 나서서 교묘하게 “상을 치르는” 과정을 방해했습니다.

참사나 피해가 있을 때 ‘잊어버리자, 앞으로 나아가자’라고 하며 진정한 사과 없이 서둘러 봉합하려 하는 일본 내의 참사 후 처리 과정은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었습니다. 최근 한일간의 과거사 처리도 비슷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독일에서처럼 과거를 반성하고 피해자의 처지에서 전쟁 등을 바라보는 관점을 학교 정규교육 과정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노다 선생의 제안은, 어떻게든 빨리 갈등을 봉합하려고 참사 후 피해자를 억누르는 현실에서 신선한 생각이고 그래서 뜻깊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에서 벌어진 10.29 참사 피해자들에게 왜 손가락질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노다 선생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것은 사회적인 병폐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피해자들을 향한 비난이 있다는 것은 위험한 신호라는 겁니다. 옛날부터 권력자들이 본보기로 죽였던 사람들에게 민중도 똑같이 돌을 던지고 비방하게 함으로써 불만을 배출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유족과 슬픔을 공감하는 문제는 결국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소수자는 성소수자, 장애인, 소수 인종, 이주노동자 등입니다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미혼모, 편부모, 나아가서 채식주의자, 색맹, 탈모인 등도 소수자가 아닐까요? 어떤 기준으로 엮어도 우리가 어느 한 소수자 범주에는 속할 것 같지 않나요?

사실 강제징용피해자와 위안부 할머니들이야말로 전형적인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입니다. 이분들과 연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온갖 욕설을 퍼붓고 혐오를 조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게 똑같이 돌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 때 우리 사회에서 ‘갑질’과 갑질로 인한 피해가 큰 문제가 됐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화로 응대하는 사람들도 대표적인 약자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거 폭언을 삼가라는 안내 메시지도 쉽게 접할 정도로요.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주위의 약자에 대해 행해지는 무자비한 행동을 너무 흔하게 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참사 희생자와 유족, 소수자를 생각하면서 새길신앙고백의 마지막 부분 ‘우리는 자신을 비우고 고통받는 모든 생명의 이웃이 되어…’를 읽을 때 좀 더 힘주어 읽고 가슴에 새겨 실천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약자와 동행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따르미로서 떳떳하게 행동할 수 있을테니까요.

질의응답이 길어져서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노다 마사아키 선생님에게 같이 사진을 찍으며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청중석에 계셨던 책의 번역자 (서혜영)를 통해 노다 선생에게 우리 교회에서 이 책을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고 책을 구할 길이 없어 복사/제본해서 나누어 보았다고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노다 선생도 ‘해적판이네요’ 하고 웃으시면서 책에 서명을 해주셨습니다. 출판사에 좀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안타깝게도 한글판 책을 냈던 한국의 출판사(도서출판 펜타그램)는 문을 닫았더군요. 우리처럼 늦게 이 책을 알게 돼 읽고자 하는 사람들도 꽤 될 텐데,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 노다 마사아키(野田正彰) 선생과 새길교회 사회사역위원회. ⓒ김혜은(새길교회 사회사역위원회 총무)
책의 노다 마사아키(野田正彰) 선생은 1944년생이며 홋카이도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나가하마적십자병원 정신과 부장, 고베시외국어대학/간사이가쿠인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로 개인의 정신병리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연구하는 정신병리학자. 비교문화 정신의학, 정신병리학, 문화인류학, 사회학이 겹치는 분야를 연구하며, 의사, 평론가, 논픽션 작가, 사회활동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쟁, 재해 등의 큰 사회적 변동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조사에 기반하여 동시대와 역사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대형 참사 유족의 슬픔에 대한 기록》(2015)의 원제는 《喪の途上にて―大事故遺族の悲哀の硏究》(2014년)이고 제14회 고단샤(講談社) 논픽션상을 수상한 바 있다.

박상규(새길교회 사회사역위원회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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