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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삶의 신화 ‘엄석대’ 해체하기와 체육학년 짱 JH의 이야기
홍경종 교사 | 승인 2023.04.13 02:24
▲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 역을 맡은 배우 홍경인 ⓒ(주)대동흥업

JH는 우리 학년의 엄석대 같은 인물로 이전 학년부터 담임선생님의 골치를 썩이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키는 조금 큰 편이고 다부진 체형이며 외모도 남자다운 멋을 강하게 풍긴다. 활발한 성격이고 자기표현을 잘하는 친구이며 유머 감각도 있다. 지역 야구 클럽에 다니고 있는데 주전 멤버로 뽑혀 시합에 나가고 있으며 신체 밸런스나 스피드, 몸의 감각이 매우 좋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학급의 규칙을 늘 어기고 다른 아이들에게 물리적, 언어적인 폭력을 행사하며 모든 놀이의 규칙을 ‘자신에 맞게끔’ 만들어버린다. 문제는 이런 행동을 보이고 있는데도 또래 아이들에게, 특히 남자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학급 임원에 부회장으로 당선이 되었고 그를 추종하며 따르는 열성 지지자가 2명이 있다.

한 번은 JH가 아이들과 단톡방을 만들어서 대화하던 중 친구 한 녀석이 자기의 지시를 듣지 않는다고 거의 협박성 욕을 써놓은 사건이 있었다. 같은 방에 있던 여학생 중 하나가 불편하다고 그만하라 제지했는데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욕을 해서 여학생이 내게 신고를 해왔다. 다음날 JH와 협박성 욕을 들은 친구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듣고, 잘잘못을 따져 훈계했다.

JH는 일단 잘못을 인지시키면 언제나 차분하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대답한다. 아마 운동부를 다니면서 최소한 지도자의 권위에는 복종하는 법을 배웠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그 뒤에 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후 욕을 들은 학생에게 따로 물어봤다. 그는 JH의 열성 지지자 중의 1명이었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인데 한 명이 계속 욕하고 뭔가를 요구하면 한쪽은 계속 들어주는 관계는 건강한 관계가 아닌 것 같다.”
“...”
“왜 너는 그 친구에게 서운한 지점이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다고 이야기하지 못하니? 계속 이런 식이면 너도 그 친구와 계속 관계를 맺기가 어렵지 않을까”
“그런데 걔는 멋있어요, 재미도 있고요.”

이것이 아이들의 세상이라는 것을 느꼈다.

보통 이런 경우 부모님들이 내리는 조치는 아마도 “그 애랑 놀지마”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아를 찾고 갈등을 조율하면서 배워 나가기 때문에, 강제로 그들을 ‘떼어 놓는’ 행위는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는 덮어버릴 수 있겠지만 절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 외려 아이가 관계 속에서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단단한 관계 구조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JH뿐만 아니라 우리 반 전체 아이들에게도 뭔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반은 1년 동안 팀별로 스포츠리그를 운영한다. 종목은 월별로 하나씩 바꿔가면서 하는데 학급에서 편성한 모둠이 스포츠리그 팀 단위가 된다. JH는 운동기능이 뛰어나고 운동장에서 또래들에게 지시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구이기 때문에 나는 두 가지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했다. 먼저 JH의 욕구를 수용하고 이것을 발산할 수 있도록 어떤 공식적인 루트를 만들어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면서 JH와 심리적으로 평등한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일단은 JH가 가진 신체기능의 우수함을 인정해주고 이 친구에게 수업에서 시범을 보일 수 있는 기회들을 ‘조공’으로 바쳤다. 물론 구체적인 피드백과 함께 반드시 칭찬을 넣었다. 남들 앞에서 드러나고 싶은 욕구가 충족됨으로써 심리적인 만족 상태가 되니, 또래들에게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빈도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동학년 선생님들은 ‘체육으로 기운을 좀 빼니’ 아이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고 말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타당한 말이다. 충분한 체육활동과 본인이 자신 있어 하는 부분에 대한 타인의 인정으로 마음속의 불만족과 분노가 조금은 빠졌을지도 모른다.

다음으로는 우리 반 아이들이 체육에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리그가 진행되면서 대부분 JH의 팀이 가장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막상 그의 팀이 부진한 것을 보며 의아해했다. 스포츠리그의 규정은 절대 뛰어난 개인이 모든 것을 혼자서 할 수 없게끔 제한하기 때문에 기회의 평등을 강제한다. 즉 협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팀의 승리라는 결과를 얻을 수가 없게끔 되어 있다.

리그가 진행되면서 아이들은 더 많은 활동시간과 기능 연마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리그의 규정 내에서 우수한 플레이를 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즉 우리 스포츠리그라는 제한된 영역 안에서 기본적인 신체기능의 차이와 상관없는 능력의 평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는 아이들이 JH에게 가지고 있는 어떤 신화적인 환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감과 적극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처음에는 JH도 이러한 현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는데 ‘협력을 통한 승리’라는 공식을 깨닫고 나서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소리치거나 핀잔 주는 행위가 줄어들고 승리를 위한 건설적인 전략을 제안하며 친구들과 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다른 아이들의 표정도 살아나게 되었다.

학년이 끝나갈 무렵, JH는 여전히 수업 시간에 딴짓하고 친구들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친구들에게 화를 내고 윽박지르는 행위는 현저하게 감소하였으며 그를 따르는 지지자들의 표정도 이전처럼 약간 주눅이 든 표정이 아닌 보다 밝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어울리는 것이 보인다.

점심 시간에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다. 지배와 복종의 관계인지, 평등한 가운데서 존경을 하고 따르는 관계인지. 적어도 그 아이들의 표정이 변하고 관계가 회복된 중심에는 내면에서 형성된 만족감과 자신감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가능하도록 풀어준 열쇠가 바로 ‘체육’임을 나는 확고하게 믿는다. 

홍경종 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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